<저니 맨> 김학중
그는 유망주였다
공을 쥘 때마다
세계의 심장을 움켜쥐고 있다고 느꼈다
심장이 담장을 넘어갈 때마다
모자를 고쳐 썼다
자신의 삶이 실점에 대한 기록임을 지켜봐야 했지만
그는 끝까지 배트를 잡지 않았다
- 누구도 자신을 위해 타석에 설 수 없다고 낮게 얘기했을 뿐 -
그리고 긴 여행은 시작되었다
그는 이제 큼직한 여행 가방을 끌고
플랫폼에 서 있다
불쑥 내뱉고 싶던 말처럼
가방의 터진 겉감 사이로 안감이 비집고 나와 있다
그 안에 그의 여행이 온전히 담겨 있다
언제부터 입기 시작했는지 알 수 없는
바지 몇 벌과 셔츠 몇 벌
유니폼만이 새것인 채로 매번 바뀌었다
그의 짐은 매일 다시 첫장부터 쓴 낡은 일기장
몇 장을 뜯어냈는지 알 수 없는 인생
자신을 짐으로 쌀 수 있다는 것이 위안인 그가
지금 플랫폼에 서 있다
열차가 들어오면 그는 곧 떠나야 한다
한 손은 여전히 공을 쥐고 있는 듯 둥글지만
그는 곧 가방을 잡기 위해 손을 펴겠지
공 하나를 세계의 심장이라고 믿던
그는 익숙한 듯 모자를 고쳐 쓰고는
열차가 멈추는 소리를 듣는다
세계를 주무를 수 없는 그의 손은
이제 온전히 자신을 쥐고
문이 열리는 열차로 들어설 것이다
가방의 무게에 그의 팔이 살짝 떨리는 것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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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니 맨'은 팀을 자주 옮기는 사람을 지칭하는 말입니다. 사실 우리는 모두 어디로든 터전을 옮기기 마련입니다. 이사를 가든, 직장을 옮기든, 이민을 가든 말입니다.
저니 맨이기 이전에 우리는 모두 유망주였습니다. '세계의 심장'을 움켜지고 던져왔습니다. 그렇지만 때때로 타자에게 두들겨 맞기도 하죠. 새로운 환경으로 옮기고 다시 또 이동하고 옮겨가고...다시 시작하는 우리의 인생은 결국 몇 장을 뜯어냈는지 알수 없는 일기장 같은 것이기도 합니다.
언젠가 떠날수 밖에 없는 상황과 환경이 조성됩니다. 그때마다 축 처지지 말고 당찬 한걸음 내딛었으면 좋겠습니다.
유망주 시절의 다짐을 잊지 않고, 때론 홈런을 두들겨 맞더라도 모자를 고쳐 쓰고, 다시 자신감 넘치는 돌직구를 던졌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