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베테랑’ 재벌우선주의 비판…“잘못 지적 않는 관행 개선돼야”
최근 대한항공 조현민 전무의 ‘물벼락 갑질’이 사회적 물의를 일으켰습니다. 조씨 가문의 갑질은 하루이틀 일이 아녔습니다. 언니인 조현아는 일등석 서비스가 매뉴얼대로 이뤄지지 않았다며 항공기를 되돌리는 ‘땅콩리턴’ 사건의 주인공이었죠. 조현아는 한동안 봉사활동을 하며 자숙의 기간을 가지다 슬그머니 대한항공 호텔사업부 사장으로 복직하려다가 무산됐죠. 도대체 왜 이러는 걸까요.
잘못은 조태오…매 맞는 건 최 상무
개인적으로 영화 ‘베테랑’에서 굉장히 인상 깊은 장면이 있습니다. 재벌 3세 조태오는 용역회사의 트럭 운전기사가 임금미납 문제로 1인 시위를 하자 ‘맷값폭행’을 합니다. 이를 덮기 위해 자살시도 사고로 위장을 했지만 결국 언론에까지 의혹이 노출되는 사태가 발생했죠.
회장은 끊었던 광고를 언론사에 제공해 겨우 기사를 막았다며, 사고친 조태오를 벌하기 위해 매를 듭니다. 하지만 맞는 사람은 조태오가 아닙니다. 조태오를 보좌하는 ‘최 상무’가 맞습니다. 실제 잘못을 저지른 건 재벌 3세 조태오인데도 처벌은 최 상무가 받게 되는 셈이죠.
이런 행태는 영화가 진행되는 과정 속에서 지속적으로 등장합니다. 이후 형사를 죽여 사건을 묻으려는 시도가 실패로 돌아갔을 때도 살인교사의 죄를 최 상무에게 뒤집어 씌웁니다.
뿐만 아닙니다. 영화 초반에 서도철 형사를 초청한 회식 자리에서 조태오는 여자배우에게 얼음과 음식물을 옷 속에 집어넣는 등 도를 넘는 장난을 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회식 자리에서 조태오를 말리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습니다.
트럭 운전사를 때리는 ‘맷값폭행’을 할 때도 주변에서 말리는 사람은 단 한명도 없습니다. 오히려 사건을 축소‧은폐하기 위해 조직적이고 발 빠르게 움직입니다.
사실 우리나라 사회 전반에는 이렇게 재벌들을 감싸고도는 분위기가 팽배합니다. 재벌이 망하면 우리나라 경제가 휘청인다는 논리 때문이죠. ‘삼성이 망하면 나라가 망한다’는 말이 대표적입니다. 물론 재벌이 우리나라 경제에 차지하는 비중이 크다는 것은 인정합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재벌이 무언가 잘못을 저질렀을 때 감싸야 한다는 식으로 주장을 하면 안됩니다. 너무나도 당연한 얘기인데, 간과하고 있는 것이죠.
삼성그룹의 합병에 국민연금이 찬성을 했고, 손실액이 수천억 원에 이릅니다. 대우조선해양은 경영위기에도 불구하고 온갖 횡령과 배임이 난무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금을 걷어 대우조선해양을 살리려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정작 부실한 경영을 진행한 오너 일가 재산은 그대로인 것 같은데 말입니다. 재벌 망하라고 조장하는 건 아닙니다. 문제는 경영에 실패를 해도 정부가 나서서 살려준다는 것입니다.
이런 분위기의 지속은 결국 ‘버르장머리 없는’ 재벌 2세와 3세를 키우게 됩니다. 영화 속 조태오가 마약을 하고 난폭운전을 해도 ‘너 잘못했어’ 하고 말해주는 사람이 없듯, 현실에서도 그런 사람이 없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것도 국가가 나서서 말입니다.
영화는 해피엔딩…현실은?
영화는 결국 해피엔딩으로 끝납니다. 조태오와 최상무는 구속되고 운전기사는 깨어나게 됩니다.
이 해피엔딩은 열혈형사 조태오의 열정과 근성이 만들어낸 결과물입니다. 서도철 입장에서 운전기사는 잠시 스쳐 지나간 인연입니다. 승진도 앞두고 있는데다가 해당 사건은 관할 구역도 아닙니다. 사건을 덮으려는 최 상무는 서도철 부인에게 명품백과 현금다발을 안기려 합니다. 사실 여기서 적당히 타협했다면 서도철은 안락한 삶을 이어갔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제가 있다고 느낀 서도철은 집요하게 사건을 추적합니다. 죽을 뻔한 위기도 넘깁니다. 막판에는 조태오 체포과정에서 심하게 두들겨 맞기까지 하지요.
“우리가 돈이 없지 가오가 없냐”와 “당신들도 이상하지 않아? 사과 한마디면 끝날 일을 이렇게까지 벌리는 게”라는 대사는 서도철의 프로페셔널함을 일깨워 주는 핵심대사 입니다. 만일 우리나라의 모든 감시기능이 제대로 작동했다면, 즉 재벌에게 ‘너희 잘못했어’라고 말할 수 있었다면 사태는 이 지경까지 오지 않았다는 뜻이죠.
‘베태랑’이라는 제목은 결국 사회 곳곳에 숨은 베태랑들의 역할을 다하라는 메시지가 숨겨져 있습니다. 명동 한복판에서 튀어나오는 ‘아트박스 사장님’이 좋은 예입니다. 자신의 사업장에서 잘못된 행위를 하는 사람을 제재하는게 당연한 거죠. 급박한 상황 속에서 경찰도, 군인도 아닌 문구점 사장님이 나선 것입니다.(물론 우리 소시민은 마동석처럼 울끈불끈 근육이 없죠ㅠ) 혼자서 버겁다면, 함께 막으면 됩니다.
이 영화를 본 누군가는 모두 베태랑입니다. 누군가는 중국집 주방장으로서의 책임을 다하고, 또 다른 누군가는 초등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사이기도 합니다. 서도철 형사와 같이 각자의 위치에서 제대로 된 역할을 수행하도록 노력한다면 조태오 같은 자식들이 구속되는 세상을 맞이할지도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