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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IMTAE Jul 12. 2024

꿈과 현실이 만나는 도시의 미술관

빌바오 구겐하임 미술관을 다녀왔습니다.

1. 올해 초 스페인 여행을 다녀왔습니다.


올해 초 긴 휴가를 내고 아들과 스페인 여행을 다녀왔습니다. 현장 준공을 끝내고 급한 일을 마무리하고 나서, 다른 부서로 발령 전에 여행을 가기로 맘먹었습니다. 아들도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중학교에 입학하기 전 여유가 있는 시기였습니다. 그래서 꼭 가겠다는 마음으로 6개월 전에 계획을 세우고 환불 불가한 비행기 티켓과 숙소, 일정을 세팅했습니다.


유럽 여행은 처음이었는데, 꼭 스페인을 가고 싶었습니다. 대학시절 아주 잠깐 배웠던 스페인어도, 맛있기로 유명한 스페인의 음식도 좋지만, 정말 보고 싶었던 것은 스페인의 건축이었습니다. 사그라다 파밀리아가 있는 바르셀로나의 가우디 건축, 이슬람과 서구 문명의 융합으로 탄생한 그라나다의 걸작 알람브라 궁전 등, 보고 싶은 건축물이 정말 많았습니다. 그중에서도 가장 깊은 인상을 남긴 것은 건축가 프랭크 게리가 설계한 빌바오 구겐하임 미술관이었습니다.

빌바오 구겐하임 미술관 전경


2. 건축가 Frank Gerry와 “The Bilbao Effect”


프랭크 게리는 1929년 유대계 이민자 부모에서 태어난 캐나다 출신의 건축가입니다. 토론토에서 태어나 미국으로 이주했고, USC에서 건축을 전공한 후 LA 기반으로 활동을 시작합니다. 빌바오 구겐하임 미술관으로 전 세계적 명성을 얻었고, LA 월트 디즈니 콘서트홀, 파리 루이뷔통 미술관 등 건축을 설계했습니다. 1989년 건축의 노벨상이라고 불리는 프리츠커 상을 수상했죠. 활동 초기 해체주의로 알려졌지만, 그만의 독특하고 자유로운 형태와 조형미로 유명합니다.

프랭크 게리 (출처 : 구글 이미지)


"빌바오 이펙트"라는 말이 있습니다. 한 도시에 랜드마크 건축물이 생기고, 그로 인한 관광 수요를 통해 도시의 경제가 다시 살아난다는 뜻이죠. 구겐하임 미술관 프로젝트를 통해 빌바오의 지역 경제가 되살아 났기에 생겨난 조어입니다. 빌바오는 스페인 북부 바스크 지방의 공업도시입니다. 산업 경제가 쇠퇴한 빌바오의 경기를 부흥하겠다는 바스크 지방 정부의 의지와, 현대 미술 수요가 늘어나는 세계적 상황을 적극적으로 이용해 구겐하임 미술관을 국제적 브랜드로 키우겠다는 비전이 결합해서 미술관 건립계획이 시작되죠.


프랭크 게리 전기에 의하면, 빌바오 프로젝트의 원래 계획은 낡은 와인창고를 미술관으로 개조하는 것이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빌바오에 초대된 게리는 와인창고를 개조하는 대신 네르비온 강을 따라 굽어있는 다운타운 끝자락 빈 산업부지 자리에 신축을 제안했고, 결국 게리가 제안한 지금의 위치에 미술관이 건립됩니다. 전 세계적 찬사를 받은 미술관에 개관 당시 약 400만 명, 지금도 매년 100만 명이 방문합니다.


현지에서는 미술관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합니다. 미술관 건립 후 다시 살아난 지역 경제와 관광 도시로서의 위상도 느껴집니다. 빌바오로 이동하는 비행기 안에서 우연히도 옆에 앉았던 분이 빌바오 출신의 파일럿이었습니다. 빌바오 토박이로 살아왔다는 그분은 도시의 락과 부흥의 과정을 직접 다 목격한 산 증인이었습니다. 기사와 글로만 접했던 과정을 이야기 하면서 미술관에 대한 자부심과 다시 살아난 고향에 대한 애정을 한껏 표출하는 모습이 보기 좋았습니다.



3. 빌바오 구겐하임 미술관의 매력을 경험해 보세요.


1) 티타늄 패널로 감싸인 화려한 형상과 결합한 구조


빌바오 구겐하임은 재료의 물성을 직설적이고 자유롭게 사용합니다. 얇은 티타늄 패널이 접히는 이음매가 이어지는 형태의 질감, 따뜻하고도 안정감 있는 석재의 색채, 강철과 유리를 사용한 구조적 힘의 표현과 투명한 빛의 유입. 우리에겐 익숙한 유리와  형강도 건축가의 상상에 맞게 변형합니다. 유리는 보통 직사각형으쓰이지만 여기서는 삼각형 유리를 사용해 곡면에 가까운 형상을 만들어냅니다. 인상적인 것은 이렇게 다양한 재료들이 이질감 없이 하나의 형태로 자연스러운 조화를 이룬다는 것입니다.


티타늄은 황금빛 같이 보이기도 하고 은색 같이 보이기도 합니다. 햇빛에 따라, 하루의 일기에 따라 다채로운 색깔을 보여줍니다. 이른 새벽에는 로즈골드 같은 색채를, 한낮에는 황금색 빛깔을 보여주고, 밤에는 조명에 따라 다양한 색채를 반사합니다. 티타늄은 꽤나 비싼 소재인데, 인상적인 것은 시공이 시작할 즈음 티타늄 가격이 일시적으로 낮아졌다고 합니다. 덕분에 전체 공사 예산을 넘기지 않고 완성되었다고 하죠. 최근 코로나와 러-우 전쟁 등 엄청난 시황 상승과 물가 인상으로 건설업계가 힘들었던 것을 생각하면, 빌바오 구겐하임은 시공 당시 시황 하락의 운도 따라준 셈이네요.



2) 화려한 외관의 이유를 설득시키는 유려한 내부 공간


빌바오 구겐하임에 대한 많은 글들이 미술관의 매력을 화려한 외관으로 설명합니다. 하지만, 저에게 진짜 매력은 내부 공간이었습니다. 즉흥적으로 보이는 형태와 곡선들이 내부와 그대로 연결되어 있고, 내부 역시 외부와 마찬가지로 흐르는 듯한 곡선의 유려한 형태를 보여줍니다.  공간을 걷고 있으현대 미술관에 걸맞은 자유로움이 느껴집니다.


티타늄과 석재와 유리와 철이 경쟁하듯 섞여있는 입구를 들어가면 내부의 하얀 벽체가 커튼처럼 흘러내립니다. 휘어지는 강재와 유리도 자연스러운 곡면을 이루고, 그 틈과 틈 사이로 빛이 내리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외부 재료들이 내부까지 자연스럽게 이어지면서 내외부의 형태 구분 없이 융화되는 공간감을 형성합니다.



꽃과 같이 펼쳐지는 외부의 매스 형상은 내부에서야 비로소 이해하게 됩니다. 각각의 매스마다 천창 혹은 빛이 들어오는 틈새가 있고, 미술관에 필요한 내부 자연광으로 이어집니다. 흐르는 듯한 빛과 유연한 형태 사이로 나 있는 이동 통로는 공간을 거닐며 느끼는 공간감을 충분히 누릴 수 있게 합니다.



빌바오 구겐하임 항공사진 (출처 : 구글이미지)


3) 미술관의 명성에 걸맞은 현대 미술 전시


가장 유명한 작품은 리처드 세라의 “시간의 문제”입니다. 거대한 강철판을 절묘한 각도와 구조계산을 통해 자립시켜, 때로는 동심원으로, 때로는 구불구불한 곡선으로 나타내고, 그 사이 공간을 걷고 경험할 수 있는 작품이죠. 엔지니어 입장에서는 과연 이 작품을 어떻게 세웠을까, 작품을 먼저 설치하고 그 이후에 건물을 시공했을까, 이런저런 생각이 듭니다. 작품해설을 보면 작가가 미리 1/12 스케일 목업을 만들어서 형태와 공간감, 설치를 고민했던 흔적이 보입니다.


제가 방문했을 때 피카소의 조각을 테마로 한 시가 진행 중이었습니다. 피카소의 회화는 유명한 작품들이 많지만 조각은 별로 접해보지 못했는데 막상 보니 흥미로웠습니다. 조각의 면모가 피카소 회화와 연결되는 느낌도 들었습니다. 그 외에도 다양한 작품과 미디어 아트 등이 전시되어 있어 흥미롭게 관람했습니다.



4. 빌바오는 꿈과 현실이 만나는 도시입니다.


스페인 여행을 준비하면서, 빌바오에 도착한 이후 늦은 저녁 네르비온 강가에서 미술관의 실루엣을 보는 장면을 수없이 상상했었습니다. 흐르는 듯한 티타늄 외관과 조명에 비추는 따뜻한 대리석의 질감, 강가를 따라 비추는 야간 명과 흐르는 강물의 윤슬, 차가운 듯한 밤공기와 그 길을 걸으면서 빌바오 구겐하임을 하염없이 바라보는 순간을 그려왔어요.


여러 도시를 지나 빌바오에 도착해, 수없이 상상했던 경을 마주한 순간을 잊을 수 없습니다. 오랜 시간 그려왔던 순간을 현실로 마주하는 그 순간의 감동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낙후된 지역을 일으키고자 했던 바스크 인들의 강렬한 꿈과, 한 건축가의 건축적 상상력을 꿈처럼 펼칠 수 있었던 곳에,  또한 상상했던 순간을 마주한 꿈같은 여행이었습니다.


언젠가 스페인 여행을 하신다면 빌바 방문을 추천합니다. 꿈처럼 만나는 아름다운 인생의 한 장면을 꼭 누려보셨으면 좋겠습니다.



* 출처 표기 외의 사진은 직접 찍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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