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글쓰기의 여백

채워 넣는 업무 글쓰기와 비워내는 새벽 글쓰기

by KIMTAE

새벽에 일어나면 샤워를 하고 녹차를 우린다.

은은한 향긋함이 책상 위에 퍼져나간다.


글을 쓰는 공간은 맥북의 Ulysses라는 앱이다.

Markdown 기반의 글쓰기 앱이라는데,

사실 어떻게 쓰는지는 잘 모르겠다.

다만 글 자체 집중하게 하는 빈 화면의 여백이 좋다.


얼마 전 친구와 대화한 이후 새로운 자극을 받았다. 요즘 새벽에 일어나는 루틴을 만들고 있다고. 한 유튜브 채널에서 ‘미라클 모닝’ 책을 읽고 매일 새벽에 일어나서 루틴을 실천하는 사람의 영상을 보고 도전받았단다. 친구도 몇 주째 새벽에 일어나서 자신만의 루틴을 만들고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 글을 쓰고 싶던 차에 그 얘기를 들으니 새벽에 글을 쓰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새벽 글쓰기를 시작했다. 매일 하는 건 쉽지 않지만 해보려고 노력 중이다. 내가 만들고자 하는 새벽 루틴은 이렇다.


1. 새벽 5시 기상

2. 창문 환기, 샤워, 양치질

3. 녹차 마시기

4. 글쓰기 : 1,500자

5. 출근 준비 후 출근


건설업 특성상 출근이 7시로 빠른 편이다. 다행히 현장 근처에서 자취를 하고 있어 출근에 시간이 오래 걸리진 않지만, 5시에 일어난다고 해도 새벽에 두세 시간을 여유 있게 쓰긴 어렵다. 그래도 하루 한 시간씩만 확보한다면 충분히 내 이야기를 써볼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해본다.


회사에서는 보고서를 많이 써왔다. 현장 내에서 각종 이슈와 대응방안에 대한 보고서, 정기적으로 현장의 현황을 보고하고 진행 상황을 공유하기 위한 루틴 한 보고서, 누군가에게 포상을 추천할 때 필요한 공적조서. 본사에 있을 때는 더욱 많은 보고서를 써봤다. 담당하는 현장에 대한 현황 보고서부터, 손익 점검 보고서, 계약적 이슈 관련 보고서, 정산 협상 진행 현황 보고서. 전사에서 T/F를 하면서는 회사 내 개선할 점에 대한 보고서도 많이 써봤다. 현장소장 Motivation 제고 방안, 인력 양성 방안 등등.


회사에서의 글쓰기는 즐겁진 않지만 그래도 보람을 느끼는 장르는 공적조서이다. 내 주변의 동료, 혹은 아끼는 사람들에게 무언가 포상의 기회가 있을 때 이를 만들기 위해 공적을 정리하고 돋보이게 하는 글쓰기. 어렵지만 즐겁다. 내용도 필요하지만 스토리가 잘 엮이게 해야 하는 것도 중요해서, 회사에서의 글쓰기 중 가장 글 자체에 집중하게 한다. 최근에는 현장에서 품질/안전/환경 공적조서를 각 담당들과 함께 작업했다. 고민 없는 양식에 생각을 담아내느라 골치 아팠지만 마음 맞는 사람들과 함께 쓰는 보고서는 좀 더 좋은 결과물을 만들어내고 싶은 동기가 된다. (결과는 아쉽다..)


보고서를 쓰다 보면 많은 기능들이 필요하다. 일부는 강조해야 하고, 각종 숫자와 지표도 정리해야 한다. 개념을 설명할 때는 잘 정리된 다이어그램이나 도표가 들어가기도 하고, 그때그때 내용의 위계(Hierarchy)를 맞추기 위해 각종 기호들이 들어간다. (빡,찍, 땡이라고 하죠.) 부서나 사업부에 따라 스타일도 많이 다르다. 공식 폰트는 바탕체, 크기는 16이었다가 최근 14로 조정되었고, 위계에 따른 문장별 줄 간격에 대한 요구사항도 조직별로 다양하다. 우리 회사는 주로 MS Word를 쓰는데, 문서 편집을 위한 수많은 기능들이 다 쓰인다는 게 신기할 정도로 다들 화려하고 가득 채워진 보고서를 만들어낸다.


반면 새벽 글쓰기는 생각할 수 있는 여백이 중요하다. 내용을 가득 채우는 것보다는 느슨한 여백에서 출발하는 것이 좋다. 빈 공간을 응시하며 생각의 주제를 가다듬는다. 갓 우려낸 녹차의 향긋함은 여유를 찾게 도와준다. Ulysses의 빈 화면은 여러 기능을 이용하여 문서를 편집하고 만들어내는 것 대신 글쓰기의 주제와 내용 자체에 집중할 수 있게 해 준다. 일과를 시작하면 시간을 달리며 효율적으로 채워나가기 바쁜데, 새벽의 이 시간은 하루를 조용히 계획하고 준비할 수 있는 여백이 된다.


Mindfulness, 마치 명상처럼, 잡념을 비우고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하는 것은 비슷한 성격인 것 같다. 복잡한 생각을 단순하게 정리하고, 과거의 후회나 미래의 걱정이 아닌 현재의 삶을 살아가게 도와준다. 내게 글쓰기는 하루를 살아갈 수 있게 도와주는 묵상과 같은 것이 아닐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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