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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즈피아노를 배우고 있습니다.

by KIMTAE

올해 새롭게 시작한 도전은 재즈피아노를 배우는 것입니다. 늦은 나이에 다시 피아노를 배우기로 결심하는 것은 쉽지 않았습니다. 피아노는 초등학교(사실 국민학교..) 때 잠시 배워본 것이 전부였습니다. 교회에서 경험으로 익힌 반주와 대학 때 들은 화성학 수업 외 피아노를 위한 공부는 없었죠. 기본기가 없는 상태에서 피아노를 다시 시작하는 건, 그것도 재즈를 배우는 건 생각해보지 않은 일이었죠. 이번 글에서는 재즈피아노를 시작한 이야기를 풀어보겠습니다.



재즈 피아노를 도전하게 만든 두 가지 계기

두 가지 계기가 있었습니다. 하나는 3월 발매한 싱글 앨범 <Joy of the moment>였고, 또 다른 하나는 작년 말 시도한 습작 챌린지였어요.


<Joy of the moment> 발매를 위한 작업을 작년 가을부터 해왔습니다. 지금 와서 털어놓는 것이지만, 앨범의 피아노 연주는 초기 스케치의 연주가 그대로 담겨있습니다. 일부 수정과 보완을 하긴 했지만, 처음 스케치했던 연주의 원형이 최종본에 들어가 있는 셈입니다. 피아노를 잘 치지 못하고 기본기도 없어서, 연습을 해도 더 잘할 수 있을 거란 확신이 없었습니다. 곡을 완성하면서 점차 피아노에 대한 갈증이 생기더군요. 한 번은 공부를 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마음요.


비슷한 시기에 시도해 본 것이 16마디 습작 만들기였습니다. 16마디로 코드 진행을 짜고, 비트를 만들고 베이스를 입혀서 짧은 습작을 만드는 것이죠. 창작을 위한 연습의 차원으로, 많은 고민 없이 재미나게 이것저것 시도해 봤습니다. 의외로 재즈 느낌의 스케치가 많이 나오더군요. 재즈를 좋아하지만 공부를 많이 해야 하는 어려운 장르라고 생각했는데, 습작을 하면서 궁금증이 생겨서 제대로 배워보고 싶어 졌습니다.

16마디 습작 연습


재즈 피아노를 드디어 시작하다.

배울 곳을 찾다가 지금의 선생님과 전화 상담을 하면서 저의 짧은 음악 인생 이야기를 들려드렸는데, 절 궁금해하시면서 가르쳐보고 싶다는 말씀을 하시더군요. 그 호기심에 기대어 찾아뵈었고, 그렇게 선생님과의 레슨이 시작됐습니다.


초반에는 화성에 대해 배웠습니다. 대학시절 음대 수업의 백병동 화성학을 수강한 적이 있어서 클래식 화성의 기초는 알고 있었지만, 재즈 화성은 용어도 낯설었고 코드 표기도 클래식이나 CCM과는 달라서 적응에 시간이 걸렸습니다. 왼손, 오른손 보이싱과 세컨더리 도미넌트, 모드 스케일도 배웠고, 하나씩 곡을 연습하면서 스윙하는 감각도 익히고 있어요. 매주 레슨 후 받은 숙제를 연구하고 익숙해지도록 연습하다 보면, 다시 레슨날이 되는 루틴을 살고 있습니다.


재즈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한 초반에는 이곳저곳 피아노가 있는 연습실을 찾아다녔어요. 점차 언제든 연습할 수 있도록 내 피아노를 갖고 싶다는 마음이 생겼어요. 디지털피아노를 당근에서 찾아 구입하고, 용달차를 수배해 방에 들였습니다. 커다란 피아노용 조명까지 구비하니 연습하기 좋은 완벽한 스튜디오가 되었습니다. 이제는 퇴근하고 돌아와서 가장 먼저 반겨주는 피아노를 마주하는 순간이 참 좋습니다.



재즈 피아노 연습은 몸에 감각을 새기는 작업

엔지니어로 살아오면서, 필요한 정보와 지식을 머리에 넣고 이성과 논리로 사고하는 일이 익숙합니다. 엔지니어로 오래 일을 하신 분들은, 은퇴 이후에 머리를 쓰는 일이 아닌 몸을 쓰는 일을 해보고 싶다는 이야기를 종종 합니다. 머리를 쓰는 일을 오래 했으니 2의 인생에서는 하지 않은 일을 해보고 싶은 마음이겠지요.


재즈 피아노를 배우면서, 몸에 감각을 새기는 작업 같아요. 손과 팔 근육을 움직여서 소리를 만드는 건 몸의 근육을 훈련하는 운동에 가까운 느낌이고, 훈련을 통해 섬세하고 아름다운 소리의 감각을 몸으로 이해하는 것이지요. 몸으로 익히는 훈련은 시간이 오래 걸리는 과정이지만, 한번 익히면 또한 오래 가질 수 있는 것 같아요.



선생님을 통해 깊어지는 나 자신에 대한 이해

음악을 시작한 이후 그동안 혼자 배우며 작업했었습니다. 코로나 당시엔 오프라인으로 배울 기회가 잘 없었고, 가능한 기회는 주로 온라인 강의와 유튜브가 전부였었죠.


직접 피아노를 배울 수 있다는 것은 정말 큰 의미입니다. 감사하게도 선생님과 음악적 결과 성향도 잘 맞는 것 같아요. 아는 것과 모르는 것, 음악을 접근하는 방식 등 저의 특성을 이해하면서 가르쳐 주시는 것은 특별한 경험인 것 같아요. 배울 내용이 많아서 가끔은 숙제가 많긴 하지만, 매주 수업을 듣고 한 주간 숙제를 어떻게 만들지 고민하고 연습하다 보면 어느새 그다음 수업날이 되어 있습니다.


배움을 통해 저 스스로를 더 이해하게 됩니다. 저만의 강점과 약점, 독특성을 알아봐 주시는 선생님 덕분에 저도 자신에 대해서 더 잘 이해하게 됩니다. 상대음감이 매우 강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것이 곡을 쓰고 응용하는데 강점이 될 수 있다는 것도 깨닫습니다. 절대음감이 있는 분들은 음의 피치를 쉽게 확인하지만, 전조나 다양한 키로 응용을 위해서 오히려 더 많은 훈련이 필요한 듯합니다. 저 같은 상대음감은 절대적인 음을 확인하는 건 어렵지만, 다양한 키에 적용하고 응용하는 것은 좀 더 쉬운 것 같아요. 모드 스케일의 적용도 상대음감에게 좀 더 활용이 수월한 것임을 깨닫습니다.


좋은 선생님을 만나 성장할 수 있음에 감사한 마음입니다.



가보지 않은 길을 목적 없이 걷는 기쁨

곡을 쓰고 작업을 하면서는 매번 계획과 목적을 세워왔는데, 재즈피아노를 배우면서는 목적지나 최종 도착점을 생각하지 않아요. 그저 순간순간 배움과, 한 땀 한 땀 연습하며 새기는 감각이 즐겁습니다. 늦게라도 배울 수 있음에 감사합니다. 배운 것이 머리에서 손끝으로 전달될 때 그동안 보아왔던 풍경이 새로워지고, 시야도 더 넓어지는 것을 느낍니다.


재즈 피아노는 처음 가는 길이지만 그저 즐겁게 걸어도 될 것 같아요. 1년 후 쓰는 곡엔 좀 더 섬세하고 감각적인 피아노를 담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 해봅니다. 분명한 건 이 길은 곡을 쓰고 음악을 만드는 길과 맞닿아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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