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by 줄리언 반스)를 읽고.
* 소설의 내용이 담겨있습니다. 읽으시려는 분들은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1. 이해되지 않았던 결말
결말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아니 갑자기 결말을 위해 인물의 관계가 도약해버렸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이해한 것이 맞는지, 소설의 전개가 세부 내용과 맞는지 의문이 들었고, 중요한 순간을 다시 돌아가 짚어가며 결말을 반복해서 읽었다. 원서에 오디오북으로 읽으려고 했는데 문체나 내용이 쉽지 않아 전자책으로 번역본을 먼저 읽었다. 번역본을 읽지 않았으면 내용 자체를 이해하기 어려웠을 것 같다.
2. 줄거리는 이렇다.
주인공에게 젊은 시절 ‘에이드리안’이라는 철학적이고 사색적인 친구가 있었다. 이해하기 어렵고 종잡을 수 없는 여자 친구 '베로니카'와 1년 정도 사귀다 헤어졌고, 이후 베로니카는 에이드리안과 사귀기 시작한다. 베로니카와 결혼한 에이드리안은 얼마 후 젊은 나이에 자살한다. 세월이 흘러 주인공은 노년이 되었고, 어느 날 베로니카의 어머니가 주인공에게 유언으로 얼마의 금액과 두 개의 문서를 남긴다. 하나는 편지 그리고 에이드리안의 일기장. 그러나 일기장을 가지고 있는 베로니카는 주인공에게 넘기기를 거부한다. 자신에게 상속된 문서를 보기 위해 베로니카와 마주치면서 잊고 지냈던 자신의 과거와 마주하게 되고, 그 와중에 과거 자신이 에이드리안과 베로니카에게 보낸 저주의 편지를 보게 된다. 사소한 저주가 현실화되듯, 에이드리안과 베로니카, 그리고 베로니카의 어머니의 인생은 심하게 일그러져 버리고 만다.
3. 기억의 불완전성과 휘발성
소설은 중반까지도 철학적인 문제와 가볍지 않은 생각의 무게를 머금고 이야기를 전개한다. 역사를 어떻게 인식하는지에 관한 고찰, 진중하고 가볍지 않은 문체, 기억과 실제와의 차이 등, 툭툭 나오는 생각의 거리들을 공감하며 읽었다. 하지만 이해되지 않는 결말을 이해하려 애쓰면서 그동안의 생각거리와 공감의 소재들이 모두 묻혀버리는 경험을 했다. 소설은 기억은 흐트러지기 쉽고, 실제가 다르다는 것을 여러 차례 암시하지만, 오히려 기억은 중요한, 혹은 더 강렬한 문제에 휩쓸려 소멸될 수도 있다는 것이었다. 그간 책을 읽는 와중에 나름 서평을 쓰려고 생각하며 염두에 두었던 소설 속 글감들이 모두 홍수에 침수되어 휩쓸리듯 흘러내려가는 것 같았다.
4. 내가 보여주는 내 모습 vs 글이 보여주는 내 인격
소설은 자신이 보여주고 싶은 모습 혹은 기억하고 싶은 나의 모습과, 거침없는 저주의 말을 휘갈겨 보낸 편지에서 보여주는 진짜 자신의 모습을 극단적으로 대비한다. 주인공이 자신을 묘사하는 것은 평범하고 그리 모나지 않고 악의 없는 모습이지만, 에이드리안과 베로니카를 저주하는 글에서 드러난 인격은 매우 달랐다. 글은 사고력의 지표라고 했던가. 두 사람 모두가 보라며 동시에 폭언을 퍼부은 것은 역겨운 일이이어서 잊고 싶은 기억이었겠지만, 부인할 수 없는 증거가 자신의 실체를 증언한다. 자아란 단일한 것이 아니라 여러 모습을 가지고 있다지만, 극단적으로 다른 자신의 모습을 볼 때의 충격은 매우 유쾌하지 않은 경험이다.
5. 과연 나의 기록은 나를 어떻게 기술하는가.
일기는 나를 내 관점에서 보는 글이다. 그때그때의 생각을 활자로 잡아내리기도 하지만 은연중 나르시시즘이 글에 배어 있을지도 모른다. 기억과 생각을 활자에 묶어두기 위한 목적 외에도 글을 통해 나를 위로하는 것이기도 하다. 힘든 순간을 위로하고 내 노력을 인정하고, 내 부끄러운 모습도 괜찮다고 다독이는 것이 내 일기라는 글의 목적이다. 대부분 솔직하게 나를 기술하려고 하지만, 스스로를 공격하거나 내 단점과 치부에 대해서는 일면 눈을 감기도 한다. 무의식적으로 내가 생각하는 내가 담기고, 내 불완전한 모습까지도 감당할 수 있는 정도로 기술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먼 훗날 내가 아는 사람들이 일기를 보면 과연 어떤 평가를 내리게 될까. 있는 그대로의 모습이라고 평가할지, 아니면 글과 사람이 다른 모습이었다고 할까.
6. 기억은 정말이지 쉽게 왜곡된다.
또한 기억은 얼마나 왜곡되고 변색되기 쉬운지. 예전 현장에서의 일이 생각난다. 외자재 수입업체와 문제가 있었고, 해결을 위해 본사 구매팀에 도움을 요청했었지만 담당자가 미온적이어서 별 도움을 받진 못했다. 교착 상태에 빠져있던 어느 날 소장님의 지시로 업체 사무실을 방문해서 협상을 했었다. 그리고 한참이 지나 일이 정리되어 업체와의 계약 종결을 위해 본사 구매팀과 컨퍼런스콜을 하던 중 그 당시 상황에 대한 질문이 있었다. 당시 담당자와 같이 방문을 했다고 진술했는데, 담당자가 자기는 안 갔다고 부인하는 것이었다. 분명히 같이 갔었다고 반복해서 얘기했는데, 담당자가 당시 일이 있어서 나한테 못 간다고 전화했었다며 자기는 안 갔다고 했었다. 그제야 기억을 더듬어 보니 비 오는 날 업체 사무실 앞에서 담당자가 못 간다며 통화했던 것과, 결국 나 혼자 해야 하는 일이 되었다며 갑갑한 마음과 함께 혼자 업체 사장을 만나러 들어갔던 것이 떠올랐다. 내 기억이라는 것이 얼마나 쉽게 달라지고 왜곡되는지, 그리고 심지어 없었던 일을 있었다고 할 수도 있는지 깨달았다. 그때 느꼈던 부끄러움은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7. 기록의 소유, 공유의 두려움
기억에 대한 불신은 기록에 대한 집착으로 이어진다. 기록을 남기는 것은 순간의 정황을 언어로 고정시키는 것이다. 일기는 자신만의 기록이지만, SNS의 발달 덕분에 지금은 소통이라는 명목으로 자신의 생각을 불특정 다수가 실시간으로 읽고 의견을 표하는 시대가 되었다. SNS를 통해 글을 포스팅하고 생각을 나누고 기억을 뿌리다 보면 소통도 일어나지만 때론 그 생각, 그 글 때문에 역풍을 맞기도 한다. 내 생각을 공유하고 싶어 하면서도 SNS에 쓰는 것을 주저하는 건 문제가 생기는 상황에 대한 두려움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글을 쓰고 내 안에 가두어 두었는지도 모른다. 지금은 브런치에 생각을 정제하여 공유하고 있지만, 여전히 많은 생각이 일기에만 기록되는 것은 불완전한 생각을 공유하기 두려워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8. 마치며
이 짧은 소설은 내 글쓰기의 근원이 기억을 남기기 위함이라는 것, 그리고 기억은 기록되지 않으면 쉽게 망각되고 왜곡된다는 두려움을 일깨워줬다. Sense of an ending. 노년에 만난 내 인생의 글과 삶, 인격이, 내가 알고 있는 나의 모습과 너무 다르지 않기를, 그리고 먼 훗날 내 젊은 인격이 나에게 말을 걸 때에, 미숙함으로 인해 부끄러움을 넘는 회한에 집어삼켜지지 않기를 소망한다. 그렇기 위해 오늘도 글을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