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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IMTAE Feb 01. 2021

붙박이장을 떼어내고 셀프 인테리어를 하다.

셀프 인테리어와 홈레코딩, 취미와 전문성의 경계

붙박이 장을 떼어내고 셀프 인테리어로 공간을 만들다.


아들 방에 오래된 붙박이장이 있었다. 미닫이 문 2개로 열고 닫히는 수납용 붙박이장으로, 미닫이문이 낡긴 했지만 열고 닫는 데는 별 문제가 없었다. 아들의 책과 각종 장난감, 그리고 창고에 넣을 법한 온갖 잡동사니들이 자리했다.


어느 날 아내가 붙박이장을 없애고 싶다고 했다. 엥? 어떻게 하려고? 오래되었고 맘에 들지 않아 붙박이장을 떼어내고 싶다고, 그리고 넓어진 공간을 활용하면 좋을 것 같다고 했다. 떼어내는 게 가능한지, 그리고 그 공간을 쓸 수 있는지 확인해달라고 했다. 음… 어떻게 확인하면 될까.

이렇게 생긴 붙박이 장이었다.


관리사무실에 찾아가 우리 집 세대의 평면도와 붙박이 장에 대한 상세도면을 요청했다. 도면을 확인해보니 붙박이장 뒤편은 콘크리트 구조 벽체였고, 왼쪽 측면은 수직 덕트가 지나가는 공간을 만들기 위해 쌓은 조적 벽체였다. 미장 마감면이 깔끔할지가 고민이지만 뜯어내도 문제없겠다는 결론을 내렸다. 붙박이 장의 몰딩부터 떼어내고 잘 당겨서 장을 눕혀봤다. 텅 빈 공간이 모습을 드러냈다. 생각보다 깔끔해서 활용할 수 있겠다 싶었다.

장을 떼어내니 뒤편의 골조가 드러났다.


장을 잘 분해해서 폐기물로 내보내고 나니 고민이 시작되었다. 어떻게 만들면 좋을까. 처음엔 인테리어 업체를 쓸 생각을 했다. 가견적을 받아보니 간단히 석고보드로 마감하는 것만 해도 비용이 꽤 나오더라. 자재비와 인건비, 업체 이윤을 생각하면 이해할 정도이긴 하지만. 비용 대비 효율과 맡겼을 때의 최종 결과물의 퀄리티에 관해 아내와 상의를 하다가, 아내가 남편(이라고 쓰고 집요정 도비라고 읽는다.) 덕을 보자며 셀프로 해보는 건 어떠냐고 했다. 나는 기술사는 기능공이 아니라고 항변했지만, 절대반지를 낀 ‘갑’의 뜻을 거스를 수가 있으랴. 셀프 인테리어로 방향을 급 선회했다.


세 가지 작업을 해야 했다. 천장 마감, 벽체마감, 그리고 바닥 마감. 보통 현장에서는 벽체 -> 천장 -> 바닥 순으로 작업을 한다. 벽체를 천장 높이로 마감해 놓고, 몰딩 등으로 천장을 마감해서 벽체 면과 만나는 디테일을 처리한 후 바닥을 작업한다. 벽체 작업은 천장과 바닥에 간섭이 생기기 때문이기도 하고, 오염을 막기 위한 순서이기도 하다. 하지만 셀프 인테리어에서는 천장 -> 벽체 -> 바닥 순으로 작업을 했다. 순서가 다른 가장 큰 원인은 기능공이 아닌 내가 천장을 과연 제대로 마감할 수 있을지가 관건이었기 때문이다.


 가까운 건축 목재상을 방문해서 각재와 히노끼 우드 플로링을 구입했다. 벽체에 고정하기 위한 천장 틀을 만들었다. 고정은 사람 손 못질로는 하기 어려워서, 에어 컴프레서가 달린 타카 장비를 근처 공구상에서 빌렸다. 여러 차례 시도한 끝에 가까스로 천장틀을 고정시켰고, 그 위에 히노끼 우드 플로링으로 천장을 마감했다.

목재로 천장 틀을 만들었다.
히노끼 우드 플로링으로 천장을 마감했다.

아내와 여러 모로 찾아보고 자재상도 방문해서 고민한 끝에 벽체 마감은 코르크 보드로 결정했다. 코르크 보드 필요 수량을 할증까지 반영해서 주문했고, Loss가 거의 나지 않게 붙였다. 천장을 만들고 나니 벽체 붙이는 건 비교적 수월했다. 원래 마감인 도배지와 코르크 보드 사이는 각재로 몰딩을 만들어 붙였다. 바닥은 원래 있었던 모노륨과 비슷한 것을 찾아 이어 붙였다.


그렇게 만든 공간에 이케아에서 선반을 사다가 설치하고 수납장도 배치해서 아들의 레고 전시장 겸 수납공간을 조성했다. 완성된 결과를 보니 공간 자체는 일본 건축의 도꼬노마 같은 모습으로도 보였다. 나름 놀이 공간으로서의 기능도 있고 기존 방 마감과의 조화도 괜찮았다. 그간의 수고가 보람으로 다가왔다.


홈레코딩으로 음반을 내고 나니 셀프 인테리어를 했던 경험이 오버랩됐다.


요즘 셀프로 인테리어를 시도하는 사람들이 많이 늘어난 것 같다. 그런 기사나 글들이 가끔씩 눈에 뜨인다. 인테리어 전문업체에 맡길 수도 있지만 내 공간을 나 스스로 꾸민다는 것은 유의미한 일이다. 나는 건축에는 나름의 전문성이 있고 건설의 원리나 시공에 대한 이해가 있지만, 내손으로 시공을 하는 것은 처음 해본 것이었다. 셀프 인테리어는 시간은 오래 걸리긴 하지만 내 공간을 내 생각대로 만든다는 점에서 참 보람 있는 일이었다.


홈레코딩도 마찬가지이다. 과거 음반을 내는 것은 전문가의 영역이었다. 장비나 스튜디오 등 비싼 시설투자나 자본 투자 없이는 음반 제작이 불가능했기에, 소수의 전문가들만 할 수 있는 것이었다. 그러나 디지털 시대가 되면서 컴퓨터의 성능도 좋아졌고, 아날로그 장비가 있어야만 했던 작업을 디지털로 해결할 수 있게 되어 굳이 비싼 장비를 구입하지 않아도 유사한 효과를 내는 작업이 가능해졌다. 덕분에 홈레코딩을 하는 사람들이 많이 늘었다고 한다. 나 또한 이번 음반을 만들면서 맥북과 마스터키보드 등 아주 기본적인 장비로 홈레코딩을 했다. 장비는 한정적이고 시간은 오래 걸렸지만 스스로 해냈다는 기쁨과 보람은 무척 큰 것이었다.


물론 프로가 만든 결과물은 이와는 다를 것이다. 장비도, 스킬도 모두 차원이 다르고, 속도도 더 빠를 것이다. 짧은 시간에 높은 퀄리티를 확보하려면 적절한 대가를 지불하고 프로에게 맡기는 것이 좋을 것이다. 비용은 들지만 쉽고 빠르게 해결할 수 있다. 홈레코딩이나 셀프 인테리어는 둘 다 효율적인 방법은 아니다.


그럼에도 이런 시도는 즐겁다. 스스로 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도 생긴다. 하루에도 수많은 음반이 쏟아지는 음악의 세계에 나 같은 홈레코더가 하나의 음반을 낸다고 세상이 바뀌는 것도 아니다. 건설업의 수많은 일들 중에 몇몇 사람이 셀프로 인테리어를 한다고 업이 줄어드는 것도 아니다. 다만 그저 즐겁고 재미난 시도를 해볼 뿐이고 그 과정에서 좀 더 배우며 성장하는 것이다.


https://youtu.be/IHev6Lg-L3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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