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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IMTAE Jun 28. 2021

정유정 작가의 창작론과 오케스트레이션의 이해

<정유정, 이야기를 이야기하다>를 읽다.

지난 화요일, 기다리던 <뮈의 음악언어배우기>'BBC Symphony Orchestra 라이브 강의'를 들었다. 숙제를 제출했던 터라 어떤 피드백이 있을지 무척 궁금했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칭찬을 받을 일이 잘 없다. 맡은 일을 제대로 해내는 것은 프로로서 당연한 책무이고, 잘 안될 경우는 응당 질책이 따라오기에 칭찬이나 인정을 받는 것은 드문 일이다. 그런데, 편곡 숙제로 칭찬을 받을 줄은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베이스 기타를 중심 주제로 잡은 편곡과 녹음의 힘에 대한 피드백을 들었다. 아직 거칠고 보완해야 할 여지가 많이 남아있음에도 좋게 들어주신 것이 매우 기뻤다. 유튜브 해당 장면을 몇 번 반복해서 봤는지 모른다.


최근 관심 있는 주제는 창작의 방법론과 그 바탕이 되는 아이디어이다. 정유정 작가의 <정유정, 이야기를 이야기하다>도 그런 맥락에서 무척이나 흥미로웠다.


신기한 점은, 글이나 미술에 관한 이야기가 곡을 쓰고 음악을 만드는 것으로 이해된다는 것이다. 여전히 음악 주기에 머물러 있는 것인지. 정유정 작가의 창작론을 통해 음악을 만드는 방법과 오케스트레이션의 편곡을 이해해보는 것도 재미난 시도가 될 것 같다. 물론 소설과 음악에는 많은 차이가 있고 접근 방식도 다르지만, 내가 이해하는 범위와 최근 뮈님의 강의를 통해 배운 것이 연결되는 지점을 중심으로 써 본다.



1. 음악을 만드는 내적 동기와 외적 동기


나는 질문에서 시작한다. 내게는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 혹은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든 사건에 ‘어떤 질문’을 던지고 답을 찾아가는 습관이 있다.


정유정 작가는 소설을 시작할 때 질문을 던지고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과정을 그린다고 설명한다. 어느 운전자가 어린이를 차로 치었는데, 음주운전이 들통날까 두려워 아이를 죽이고 시체를 유기했다. 현장 검증 과정에서 범인은 무덤덤했고, 살인범의 아들은 인터뷰에서 좋은 아빠이고 그런 일을 했을 거라고 믿어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선량한 중년의 아빠와 어린이를 살해하고 시체를 유기한 범죄자. 그 무지막지한 간극을 메울 길이 없어 던진 질문이 <7년의 밤>의 모티브가 되었다.


“사실과 진실 사이에 무엇이 있을까.”


소설을 쓰게 만드는 ‘질문’에 대한 기준은 욕망과 가치다. 욕망의 주체는 나다. 질문에 대한 답변이 가슴을 뛰게 하는가. 주인공을 생각하면 피가 끓는가. ‘그렇다’라는 답이 나와야 한다. 가치의 주체는 타자, 즉 독자다. 이것은 과연 세상에 들려줄 가치가 있는 이야기인가? 이 이야기가 세상에 나가야 할 이유가 무엇인가.


정유정 작가가 질문을 던지는 첫 번째 기준은 작가 자신이다. 그 질문에 호기심과 궁금증, 그리고 파헤치고 싶은 마음이 있어야 지난한 소설 쓰기의 긴 과정을 헤쳐나갈 수 있다. 그리고 또 다른 기준은 이 이야기를 세상에 들려줄 가치가 있는지를 판단하는 독자이다. 독자에게 경험해보지 못한 상황과 온갖 정서적 격랑을 선사하고 그 경험을 통해 내가 사는 세상을 좀 더 이해하게 하는 것.


음악을 만들고 들려주는 과정도 근원은 유사하지 않을까 싶다. 질문을 던지는 것은 아니지만, 내 안에 있는 음악을 표현하고 싶다는 생각이 오래전부터 있었다. 유치하고 어설프더라도 그것을 표현하지 않을 수는 없다는, 내 안에 있는 마음이 첫 번째 내적 동인이 되었다.


<요즘 어때>를 만들 때 들려주고 싶은 청자가 있었다. 새로운 삶을 찾아 떠나 힘겨운 모험을 하는 친구와, 부모님을 먼저 떠나보내며 아파했던 친구, 내가 이 노래를 들려주고 싶은 리스너였다. 하고 싶은 이야기를 했고 만들고 싶은 곡을 썼기에 그것만으로도 곡을 만든 것이 충분히 의미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유정 작가가 이야기처럼,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괜찮은 삶이다.


하고 싶은 이야기 대신 세상이 듣고 싶어 하는 이야기를 하는 것도 옳지 않다. 세상이 뭐라고 하든, 작가는 자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해야 한다. 그로 인해 듣게 될 비난이나 비판도 당연히 작가의 몫이다. 그래도 하고 싶은 이야기를 했으니 그게 어딘가. 세상에는 하고 싶은 말이 있어도, 하지 못하는 삶이 너무나 많다.



2. 음악은 재미있어야 한다.


우선순위는 재미다. 소설은 일단 재미가 있어야 한다. 독자를 홀려서 허구라는 낯설고 의심쩍은 세상으로 끌어들이려면.


소설은 일단 재미있어야 한다. 스티븐 킹도 <유혹하는 글쓰기>에서 ‘문학적 우수성에 이끌려 소설책을 구입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 그들이 원하는 것은 비행기에 가지고 탈 만한 재미있는 이야기다.’라고 썼다. 문학사적으로 중요하고 역사적으로 의미 있는 소설도 막상 재미가 없으면 읽어볼 엄두가 나지 않는다. (고전에 고전하는 이유가 있다.) 정유정 작가에게 그 재미란 독자를 새로운 세계와 온갖 감정을 경험하는 것이다.


나는 소설의 종류를 크게 둘로 나눈다. 하나는 생각을 하게 하는 소설, 다른 하나는 경험을 하게 하는 소설. 내 소설은 후자의 범주에 속한다. 독자를 새로운 세계로 끌어들인 후, 실제에선 경험하기 힘든 일을 실제처럼 겪게 함으로써, 삶과 세계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얻어 안전한 현실로 돌아가게 만드는 것이 주목적이다.

나는 독자가 내 소설 안에서 온갖 정서적 격랑과 만나기를 원한다. 기진맥진해서 드러누워버릴 만큼 극단의 감정을 경험하길 원한다. 분노, 절망, 슬픔, 비애, 사랑, 감동…… 독자가 주인공과 함께 절정까지 내달리기를 원한다.


<뮈의 음악언어배우기> 지난 강의에서 뮈님도 '오케스트레이션을 편곡할 때 연주하는 오케스트라와 듣는 관객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라'는 조언을 해주셨다. 각 악기별 배분을 할 때 실제로 예술의 전당에서 연주한다면 연주자들이 연주하면서 어떻게 느낄지, 그리고 듣는 관객의 입장에서 오케스트레이션에 대한 기대감과 사운드에 대한 만족감을 어떻게 충족시킬 것인지를 고민하라는 의미였다.


오케스트레이션 편곡은 그런 의미에서 3명의 청자가 있는 것이다. 편곡자 자신, 오케스트레이션 연주자, 그리고 객석의 관객들. 편곡자 자신의 귀에 재미가 있어야 하고, 오케스트레이션이 실제 연주될 때 연주자들이 자연스럽게 그 연주에 녹아들 수 있게 해야 하며, 관객의 귀에 재미가 있도록 만드는 것이다. 오케스트레이션에서는 관객이 듣고 싶은 사운드가 있다는 뮈님의 이야기처럼, 듣고 싶어 하는 사운드를 섬세하게 잘 구현해내는 것이 오케스트레이션의 재미가 아닐까.



3. ‘어떻게’도 중요하다.


작가에겐 ‘무엇을 쓸까’도 중요하지만, ‘어떻게 쓸까’도 중요하다. ‘무엇’만 있고 ‘어떻게’가 없으면 글이 조악해진다. ‘어떻게’로 가는 첫걸음은 자신의 장르라고 짐작되는 분야의 책을 많이 읽는 것이다. 그냥 읽는 게 아니라, 분석하면서, 해부학을 공부하듯 하나하나 읽어야 한다.


다이빙을 좋아하는 후배에게서 <7년의 밤>을 읽은 감상을 들은 적이 있다. 이건 작가가 다이빙을 한 사람이 아니면 나올 수 없는 이야기라고. 그 정도로 이야기의 디테일이 살아있는 작품을 쓰기 위해 정유정 작가는 철저하게 준비했다. 다이빙과 잠수, 해류, 범죄 수사과정, 댐의 운영과 구조 등 수십 권의 관련 서적을 읽고 공부하고, 전문가를 만나 인터뷰하면서 디테일을 완성했다. 심지어 모 포털의 다이빙 카페에 위장 가입해서 그들의 글을 모조리 읽어치웠고, 거기서 읽은 ‘알흠다운’ 내용을 소설 속에 이야기로 녹여냈다. 매번 소설을 쓸 때마다 소설 속의 상황과 공간과 실제를 이해하기 위한 많은 공부를 쌓았고 그 노력들이 고스란히 소설의 완성도로 연결되었다.


음악을 만든다면 역시 많이 듣고 많이 분석해보는 것이 필요하다. 음악도 ‘레퍼런스’가 필요한 것 같다. 형식에 관련된 부분이든, 전체적인 사운드의 톤과 레인지를 고민할 때이든. 오케스트레이션이라면 각각의 악기를 이해하는 데서 시작할 수 있을 것 같다. 악기의 특성도 공부하고, 많이 들으며 사운드의 질감과 색채, 레이어를 이해하는 등 많이 듣고 이해하고 공부하여 내 것으로 만드는 노력이 필요하다.


지난 강의에서 뮈님은 ‘악기 각각의 음색과 음역에서 나오는 색깔을 이해하고, 물리적인 사운드를 고려해서 만들어 보라’고 조언했다. 다른 분들의 숙제에 대한 피드백 중에 인상 깊었던 부분은 ‘섬세하고 성실한 모듈레이션’이었다. 현악기의 소리를 좀 더 실제에 가깝게 구현하기 위해 미디의 파라미터 중 모듈레이션을 사용하여 실제 현악기가 소리를 내는 메커니즘을 만드는 것이다. 한 분의 작업 파일에 그야말로 성실하고 섬세하게 만든 모듈레이션의 흔적이 있었다. 그런 노력들이 음악을 좀 더 완성도 있게 만드는 기술적인 방법이 아닐까 싶다.



마치며


그런 생각이 들 때마다 스스로 물었다. 나는 작가가 되고 싶은가, 글을 쓰고 싶은가. 여기에서 ‘작가’란 직업에 대한 질문이고 ‘글’은 자유의지에 대한 질문이다. 설령 작가로 성공하지 못하더라도 후회하지 않겠느냐는 질문. 내 대답은 한결같이 후자였다.


정유정 작가는 마흔이 넘어 등단한 작가이다. 5년의 간호사 생활, 9년의 건강보험 심사원 생활을 마치고 뒤늦게 글을 쓰기 시작했고, 11번의 공모전에서 탈락한 후에 등단했다. 이르지 않은 나이에 도전해서 글을 쓰는 사람이 되었다는 것은 참 존경스럽다.


등단할 것도 아니고 프로페셔널을 추구할 것도 아니지만, 음악을 하고 싶다는 마음만큼은 분명하다. 내 자유의지로 꾸준하게 음악을 만들고 만들어내고 싶다.


그런 의미에서 뮈님이 주신 피드백을 성실하게 반영하여 좀 더 편곡을 다듬어본다. 베이스를 주제로 다른 악기들과 대화하듯 흐름을 만들고, 다른 분들처럼 ‘섬세하고 성실하게’ 느껴질 수 있도록 모듈레이션도 만들어본다. 소소한 음악적 아이디어도 반영하여 좀 더 흐름이 자연스럽게 느껴질 수 있도록 보강해본다.


이번 작업도 무척이나 즐거웠다. 


P.S

기록 차원에서 강의 메모와 함께 영상을 만들어보았습니다. 

아래 링크에서 들어 & 읽어보세요.

 

https://youtu.be/UqRjL8gUDD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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