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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IMTAE Aug 04. 2021

오래도록 지적인 삶을 사는 방법

<지적생활의 방법>과<처음 나이 드는 사람들에게>를  읽다.

예전에 <술탄과 황제>라는 책을 읽고 감탄한 적이 있다. 콘스탄티노플이 이슬람에게 함락되는 과정을 그린 이 저서는 책 자체도 훌륭하지만 저자가 전직 국회의장인 김형오 씨였다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정치인으로서의 그의 성취와 업적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공직을 끝내고 그동안 소원했던 공부를 통해 한 권의 책으로 엮을 정도의 지적 성취를 이뤄낸 것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그 주제가 정치나 제도가 아니라 세계사와 전쟁사의 일부를 다룬 것도 참 신선한 점이었다. 


‘지적 생활’이라는 것은 내가 동경하는 삶의 자세이다. 예전에는 박학다식한 것이 지적인 삶이라고 생각했지만, 모든 지식을 검색으로 찾을 수 있는 지금은 꾸준히 독서하며 앎의 깊이와 넓이를 확장시켜 나가는 삶을 지적 생활이라고 부르고 싶다. 대학 시절 지적 생활에 대한 동경을 심어준 책이 와타나베 쇼이치의 <지적 생활의 방법>이란 책이었다. 앞으로의 인생에 지적 생활을 꿈꾸게 만든, 내 인생의 책 중 하나였다. 


청년에 배우면 장년에 큰일을 도모한다. 장년에 배우면 노년에 쇠하여지지 않는다. 노년에 배우면 죽더라도 썩지 않는다.  - 에도 시대 유학자 사토 잇사이 <언지만록> 中


30여 년이 지나 출간된 저자의 새로운 책을 만났다. <처음 나이 드는 사람들에게>라는 에세이다. 80세의 나이에도 기력이나 지적인 열망이 수그러지지 않은 모습으로 그동안 지적 생활을 추구하며 살아온 바를 담담하게 풀어낸다. 책을 펴낸 나이도 놀랍지만 젊은 시절 지적인 삶을 동경했던 작가가 인생의 노년에 도달하기까지 어떠한 모습으로 살아왔는지 볼 수 있었다는 점에서 인상 깊은 책이었다. 사토 잇사이의 말처럼, 노년에도 쇠하지 않고 여전히 지적인 삶을 추구하는 모습을 통해 배운 바가 많다. 



1. 자신만의 라이브러리가 지적 성취의 바탕이다. 


저자는 <지적 생활의 방법>에서 영문학자인 자신이 <독일참모본부>라는 책을 썼던 과정을 소개한 바 있다. 서양의 전쟁사에 관심이 많았던 유학 시절, 유럽 대륙 역사의 주축이 된 독일 육군의 참모본부가 생겨난 과정이 궁금해서 관련 서적을 하나 둘 수집했다고 한다. 어느 정도 책을 모으고 나니 전문가와 비교해도 좋은 수준의 장서를 많이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자신의 전공분야는 아니지만 보유한 장서와 자신감을 바탕으로 책을 쓸 수 있었다며 장서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정유정, 이야기를 이야기하다>에서 정유정 작가도 소설을 쓰기 전에 꽤 오랜 기간 자료조사를 한다고 했다. 쓰고 싶은 소설에 관련된 분야의 책을 수십 권을 구입해서 하나씩 손으로 써서 정리해나간다. 그렇게 관련 서적을 공부하고 나면 그 분야에 대한 자신감이 생기고, 이를 바탕으로 이야기를 쓰는 것이다. 


학자의 경우, 장서의 보유량이 발행한 저서와 상관관계가 있다고 한다. 시간이 지나도 지적 성취가 유지되는 학자는 자신만의 라이브러리를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다. 톨스토이는 <전쟁과 평화>를 쓸 당시 나폴레옹에 관한 자료를 작은 도서관을 만들 수 있을 정도로 수집했다. 장서의 보유로 단시간에 한 분야에 정통할 수 있어 지적 성취에 드는 시간을 압축할 수 있다는 것이다. 


장서에 관한 시각은 학자가 아닌 일반인의 경우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라이브러리는 결국 집 안에 있는 것이어서 현실적인 공간의 문제에 직면하게 된다. 나도 책을 좋아해서 오래도록 쌓았었지만, 몇 차례 이사하다 보니 현실적으로 둘 곳이 부족해 많은 책을 보내야만 했다. 그렇게 여러 차례 책을 고르고 속아내는 과정을 거치면서 정말 오래도록 보고 싶은 책들만 남게 되었다. 여전히 새로운 책을 구입하기도 하지만 이 중에서도 나중까지 살아남는 책은 몇 안될지도 모른다. 이런 과정을 통해 살아남은 책들은 나만의 고전(古典)이 된다. 오래도록 읽고 보유하고 싶은 책을 고르는 나만의 기준이 되는 것이다. 


전자책과 관련해서 <처음 나이 드는 사람들에게>에서는 밥과 간식이라는 비유로 설명한다. 간식을 먹는 것도 좋지만 매일 꾸준히 먹는 밥으로 삶이 영위되는 것처럼 지적 생활과 독서하는 두뇌를 만들려면 종이책을 읽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책도 이와 마찬가지다. 전자책만으로는 진정한 지적 생활이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지적 생활을 감당할 만한 두뇌가 만들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필요한 정보를 인터넷에서 검색해 제대로 활용하려면 우선은 서점에 가서 책을 고르고, 장정을 펼치고, 속표지를 확인하고, 마지막 페이지까지 정독하는 올바른 독서습관을 길러야 한다. 그래야 인터넷에 떠도는 정보를 최대한 효율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두뇌가 만들어진다. 


e북이 보편화되고 많은 자료가 PDF 등 전자파일 형태로 존재하는 현재에도 이 관점은 의미 있다고 생각한다. 스크린으로 보는 것과 종이에 인쇄된 활자를 보는 것은 집중도가 다르다.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소설은 e북으로도 충분하지만, 생각을 깊게 하고 지적 호기심을 만드는 것은 역시 종이책이 효과적이다. 



2. 나이가 들어도 꾸준한 지적 호기심이 필요하다. 


학계에 있는 경우 업무와 학문이 동일시될 수 있으나, 업무와 지적 호기심과는 별개의 문제라고 저자는 이야기한다. 정년퇴직과 동시에 지적 활동에서 멀어지는 이들은 대개 강의와 학사 업무에만 치중하고 자신만의 연구를 소홀히 한 사람이라고 설명한다. 업무를 열심히 하는 것으로 지적인 성취를 만들어 내긴 어렵다. 오히려 꾸준한 지적 호기심으로 자신만의 연구를 지속할 때 지적 성취를 만들어 낼 수 있다. 


그런 교수들과 비교하면 다니자와 에이이치씨는 아주 특별한 사람이다. 간사이 대학 문학부 교수였다. 다니자와 씨는 정년을 10년이나 앞두고 스스로 대학을 나왔다. 대학에 있을 때도 전공분야의 연구에 충실하며 부지런히 책을 집필했는데, 학교를 그만두고 나서는 자유로운 발상의 날개를 달고 마음껏 붓을 휘둘렀다. 그 결과 60세 이후에도 명실공히 베스트셀러 작가로 불리게 되었다. 대표작인 <인간통>도 은퇴한 이후의 작품이다. 그가 이토록 많은 책을 쓸 수 있었던 비결은 대학교수 시절에 다양한 분야를 공부하며 지식을 추적해놓았기 때문이다. 장년에 뿌렸던 씨앗이 노년이 되어서 열매를 맺은 것이다. 


일본의 전직 주한 외교관 중 한 사람은 한국에서 근무하면서 조선시대의 양반에 대한 관심을 갖게 되어, 귀국 후 ‘조선시대 양반’에 관한 책을 펴냈다고 한다. 외교관은 직업 특성상 활동의 제약이 있지만 반대로 많은 나라를 경험할 수 있다. 업무상 기회를 활용하여 관심 있는 주제를 공부하고, 이를 바탕으로 자신만의 공부를 통해 새로운 콘텐츠를 만들어 낼 수 있는 것이다. 


나이가 들면서는 두뇌활동의 유지를 위해서라도 독서를 통한 지적 생활의 추구가 중요하다. 흔히 치매를 방지하기 위해 고스톱을 친다고 한다. 머리를 써서 두뇌의 기능 저하를 방지하려는 뜻이겠지만, 고스톱과는 비교할 수 없게 많은 지적 에너지와 집중을 요구하는 것이 독서이다. 책을 읽으며 저자의 의도를 생각하고 고민하는 것은, 나이가 들면서 녹슬기 쉬운 두뇌를 더 많이 활용하는 방법이다. 


노년의 두뇌를 위해서는 이 같은 노력이 더욱 중요하다. 건강을 위해서도 책을 사서 종이를 넘겨가며 지식을 습득하는 버릇을 놓아서는 안 된다. 육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건강한 장수의 비결이 바로 여기에 있다. 



마치며

마지막 장에서 소개한 스위스의 철학자 칼 힐티의 말에 깊이 공감하게 된다. 나 역시 언젠가 죽음에 다다르기까지 신의 피조물로서 소명과 활발한 지적인 삶을 추구하고 싶다. 


“인생의 마지막 숨을 내쉴 때까지 정신적으로 활발하게 활동하고, 신의 완전한 도구로서 작업을 하다 죽는 것이 질서 있는 노년의 생활방식이며, 인생의 이상적인 종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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