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경험한 안규철 작가의 미술세계와 이면의 생각
나사못은 못의 일종이지만 못과 다르다. 망치질 한두 번으로 나무를 곧바로 뚫고 들어가는 못과 달리, 그것은 수십 차례의 회전운동으로 서서히 파고든다. 최단 거리가 아니라 완만한 우회로를 통해, 힘이 아니라 인내와 설득으로 목적을 이룬다. 나무는 비명 한 번 제대로 내지 못하고 자신의 몸에 가해지는 이 폭력을 받아들인다. 그리고 이렇게 박힌 나사못은 간단히 빠지지도 않는다. 그것을 제거하려면 나사를 시계 반대 방향으로 돌려야 한다. 들어갈 때와 똑같은 인내와 설득으로 시간을 거꾸로 돌려야 한다. - 나사못 中
우리는 이 기계들의 주인이지만 그들에 대해 아는 것이 없다. 물론 기계들도 우리가 갖고 있는 다른 걱정거리들에 아무 관심이 없다. … 이런 관계가 우리 삶 전체를 지배한다. 문제들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일어나고, 문제가 생겼을 때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다. 우리가 사물의 겉에만 관심이 있고 그 내부에 무관심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고장 난 것이나 냉장고나 세탁기가 아니라 우리 자신일 때, 우리가 속해 있는 집단일 때, 우리의 운명을 규정하는 제도 자체일 때에도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거의 없다는 것이다. - 겉과 속 中
유리잔 하나가 바닥에 떨어져 깨지는 한순간의 소리를 1분, 한 시간, 하루 또는 1년으로 늘려놓으면 어떻게 될지 상상해본다. 소리의 총량은 그대로지만 시간이 늘어남으로써 그것은 다른 차원의 일이 된다. 유리잔 스스로도 자신의 몸이 산산이 부서지고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할 것이다. 우리의 삶을, 하필이면 깨지는 유리잔에 비유하고 싶지는 않지만, 삶은 이처럼 느리게 진행되는 사건의 과정이다. … 그러나 우리가 삶이라는 사건의 무게를 견딜 수 있는 것은 바로 이렇게 연장된 시간 때문이다. 수만 분의 1초로 분할된 느린 화면이 아니라면, 우리의 삶은 유리잔처럼 순식간에 부서져버릴 것이다. - 유리잔 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