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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IMTAE Jul 27. 2021

사물의 뒷모습

내가 경험한 안규철 작가의 미술세계와 이면의 생각

미술은 잘 알지 못한다. 미술 작품을 보면서 감동을 느끼는 경우는 흔치 않고, 자발적으로 미술관을 자주 찾아가는 편도 아니다. 그저 있으면 보는 정도. 깊이 관심을 가진 음악과 달리 미술은 항상 미지의 영역이었다.


그런 내게도 관심이 있는 미술작가가 있다. 최근 방탄소년단의 RM이 추천해서 유명해진 <사물의 뒷모습>을 쓴 안규철 작가이다.




대학시절 건축을 공부한다는 명목 하에 건축 외적인 영역에 관심을 가지던 때가 있었다. 인문학, 미술, 도시 등등. 그런 와중 어느 전시회에서 만난 안규철 작가의 작품은 미술을 알지 못하는 내가 관심이 갈 정도로 건축적이었다.


'건축적'이라는 표현이 잘 어울렸다. <49개의 방>이라는 작품은 거대한 프레임으로 49개의 방을 만들고 방과 방 사이에 커튼을 쳐서 미로와 같은 공간을 만들어냈다. 작품명은 기억이 나지 않지만 어느 모델하우스를 통째로 구현한 작품도 있었다. 특이한 건 모델하우스를 지상에서 1m를 잘라 상부만 만들어 매달았다는 것. 건축에서 평면도가 지상 1m 기준으로 끊어서 그 단면을 보여주는 것을 반대로 해석하고, 그것을 실제 공간에 구현하여 일상에서 보는 것과는 다른, 하부가 틔여 있는 공간을 만들어냈던 것이다. 실제 공간 같지만 그렇지 않은 이질적인 느낌이 일상에 단면을 내어 그 사이에 있는 작가의 생각을 엿보게 했다. (구글링해보니 작품명이 <바닥 없는 방>이라고 한다.)

<바닥 없는 방> (구글 이미지)


이런 건축적인 작품들 덕분에 작가에 흥미를 느꼈다. 수원대였던 것 같은데, 강연이 있어서 멀리 찾아가서 듣기도 했다. 알고 보니 그냥 학과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특강 같은 것이어서 외부인이 참여하기엔 약간 민망한 상황이었다. 그래도 찾아간 김에 열심히 들었었다. 작가의 작은 체구, 차분한 말투, 파마머리가 단편적으로 기억난다.


2015년에는 삼청동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안 보이는 사랑의 나라>라는 주제로 전시가 있었다. 주 작품인 <기억의 벽> 은 물리적인 벽면에 8,000개의 못이 박혀있는 벽을 만들고, 관객들이 자신이 잃어버려 아쉬운 것을 메모지에 적어 거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역시나 건축적이라고 느꼈던 것은 <1,000명의 책>이라는 작품이었다. 건축의 투시도처럼 멀리서 바라볼 수 있는 프레임을 가진 필사 공간을 만들고, 그 안에서는 자원한 사람들이 문학작품을 필사한다. 필사하는 이의 뒷모습을 멀리서 공간감 있게 볼 수 있고, 필사하는 손글씨는 바깥 벽의 모니터로 보이는 방식이었다. 작가의 공간적 상상력이 정말 좋다는 느낌을 받았다.


<1,000명의 책>의 공간적 상상력 (내 사진첩)




최근 RM이 추천한 책이 화제가 되었다는 기사를 보고 다시 안규철 작가를 떠올리게 되었다. 그리하여 읽게 된 책이 <사물의 뒷모습>이다.


 책은 메이킹 필름 같은 책이다. 영화를 보고 나면 어떻게 만들었는지, 어떤 고민을 하며 만들었는지 궁금할 때 메이킹 필름을 보며 궁금증을 해소하기도 한다. 선입견일 수도 있겠지만, 미술작품은 작품 자체보다는 제목과 설명으로만 이해되는 경우가 많다. 글을 쓰고 작품과 작품을 만들면서 고민한 이야기를 풀어놓는 것을 많이 보진 못했다. 작가의 이 책은 친숙한 사물을 통해 미술을 이해하게 하는 그의 작품세계처럼, 평이하고 담백한 언어로 그의 세계에 초대한다. 작가의 창작의 배경 혹은 근원이 되는 이야기, 드러나지 않지만 작품의 시작점에서의 이야기를 아름다운 드로잉과 함께 풀어낸다.


예를 들면 이런 글을 통해 늘 사용하는 나사못을 관념의 대상으로 치환한다.

나사못은 못의 일종이지만 못과 다르다. 망치질 한두 번으로 나무를 곧바로 뚫고 들어가는 못과 달리, 그것은 수십 차례의 회전운동으로 서서히 파고든다. 최단 거리가 아니라 완만한 우회로를 통해, 힘이 아니라 인내와 설득으로 목적을 이룬다. 나무는 비명 한 번 제대로 내지 못하고 자신의 몸에 가해지는 이 폭력을 받아들인다. 그리고 이렇게 박힌 나사못은 간단히 빠지지도 않는다. 그것을 제거하려면 나사를 시계 반대 방향으로 돌려야 한다. 들어갈 때와 똑같은 인내와 설득으로 시간을 거꾸로 돌려야 한다. - 나사못 中


혹은 늘 사용하는 편리한 기계가 고장 날 때 기계에 대해 알지 못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황을 통해 무관심의 문제를 이끌어낸다.

우리는 이 기계들의 주인이지만 그들에 대해 아는 것이 없다. 물론 기계들도 우리가 갖고 있는 다른 걱정거리들에 아무 관심이 없다. … 이런 관계가 우리 삶 전체를 지배한다. 문제들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일어나고, 문제가 생겼을 때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다. 우리가 사물의 겉에만 관심이 있고 그 내부에 무관심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고장 난 것이나 냉장고나 세탁기가 아니라 우리 자신일 때, 우리가 속해 있는 집단일 때, 우리의 운명을 규정하는 제도 자체일 때에도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거의 없다는 것이다. - 겉과 속 中


또는 유리잔이 떨어져 깨지는 모습과 한없이 느리게 연장된 시간이라는 상상력으로 삶의 본질을 이해하게 한다.

유리잔 하나가 바닥에 떨어져 깨지는 한순간의 소리를 1분, 한 시간, 하루 또는 1년으로 늘려놓으면 어떻게 될지 상상해본다. 소리의 총량은 그대로지만 시간이 늘어남으로써 그것은 다른 차원의 일이 된다. 유리잔 스스로도 자신의 몸이 산산이 부서지고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할 것이다. 우리의 삶을, 하필이면 깨지는 유리잔에 비유하고 싶지는 않지만, 삶은 이처럼 느리게 진행되는 사건의 과정이다. … 그러나 우리가 삶이라는 사건의 무게를 견딜 수 있는 것은 바로 이렇게 연장된 시간 때문이다. 수만 분의 1초로 분할된 느린 화면이 아니라면, 우리의 삶은 유리잔처럼 순식간에 부서져버릴 것이다.  - 유리잔 中


안규철 작가의 전시회에는 항상 드로잉이 같이 있었다. 간결한 드로잉으로 이야기를 만들고, 만들어진 이야기가 작품에 투사되어 미술의 의미를 느끼게 하는, 그런 방식을 즐겨 사용했던 것 같다.  책도 드로잉과 글이 함께 한다. 글을 읽고 드로잉을 다시 보면 그 의미가 좀 더 다가오는 것 같다. 무엇보다 드로잉이 아름답다.




최근에 부산에서 전시가 있었다. 무척이나 가보고 싶었는데 도저히 짬이 나질 않았다. 아쉬운 마음도 들지만, 그의 책과 드로잉 덕분에 그동안 경험했던 작가의 작품세계와 그 의미를 다시 누려볼 수 있었다. 앞으로도 계속 작품활동 해주시길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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