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어쩐지 블랙코미디(3)

29살 혈액암 환자의 인생 적응기

by 김탱글통글

나는 고급스러운 사람은 아니다. 그저 내 마음에 들기만 하면 아무래도 상관없다.

집 앞의 방이 시장을 즐겨 다닌다.

활기찬 시장의 분위기를 좋아한다. 좁은 시장 길을 걸을 때마다 내가 가지지 못한 활기를 충전받고 오는 느낌이 들어서 좋다.

가끔 장이 열리는데 싼 값에 맛있는 음식을 먹을 수 있어서 행복하다.

시장에 가끔 찾아오는 닭강정이 정말 맛있는데, 씹으면 닭과 튀김 껍질 사이에 느끼한 기름이 풍부하게 입안을 맴돌면서 매콤 달콤한 양념소스와 어우러지는 맛이 일품이다. 장인 정신이 살아있는 닭강정이다.

씹을 때 육즙이 푝!~ 하고 나온다.

먹을 때마다 감동스럽다.

정말로 행복해진다.


병실에 입원하기 전에는 항상 닭강정이나 참치김밥을 찾아 먹었다. 취향인 예능프로와 탄산 한잔을 곁들인 휴식 타임이면 충분하다.

스테이크를 썰면서 불안을 더는 사람도 있겠지.

케비어와 거위 간을 씹으며 와인을 마시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나는 역시 단순한 것이 좋다. 상어 지느러미니 제비집 수프 같은 것은 어쩐지 복잡해서 싫다.

요즘 세상은 쓰잘머리 없이 복잡하다. 이것저것 붙어있는 것들이 많다.

어째서 그렇게 복잡한 걸까. 단순하면 보잘 것 없다는 평가를 받는 세상이 되어 버렸다. 사실은 단순한 것이 가장 대단한 것인데.

세심하게 연근을 다듬는 아저씨를 보면서도 밥알을 일일이 컨트롤하는 것 같은 김밥집 아주머니를 보면서도 대단하다고 느낀다. 돼지고기를 써는 아저씨의 손놀림이 예사롭지 않다. 저러다 손가락이라도 썰리면 어쩌지. 걱정을 멈출 수 없다.

치킨먹고싶다..


예전에 미국에 있을 때 이모의 지인에게 대접을 받은 적이 있다. 어느 분의 생일이었던 걸로 기억되는데 고급 철판요리 전문점에 갔다.

요리사의 요란한 재롱과 칼질이 이어졌지만 불안해서 견딜 수 없었다. 실수로 칼을 놓치면 얼굴이 베일 것 같아서 불편했다.

하지만 현란하기는 했다. 자른 새우 꼬리를 던져서 요리사 모자에 던져 넣을 때에는 박수가 절로 나왔다.

그래도 어쩐지 복잡하다. 부산스럽다. 단순히 썰어도 되는 양파를 왜 저렇게 썰어대는지 모르겠다.

내 기준에서는 철판 요리사보다 방이동 연근 써는 아저씨가 더 우위다.

언제부터 이런 취향이 된 걸까. 이런 취향은 사랑받을 수 없을 텐데.

어쩔 수 없다. 이렇게 되어버린걸.

취향이 저급하든 미움을 받든 간에 나는 하고 싶은 것은 해야 하는 사람이 되어버렸다.

3차 치료가 끝나고 난 후, 항암을 그만두어 버렸다.

어머니는 항암은 오히려 사람을 죽이는 것 이라며, 자연요법으로 치료하자고 하셨다.

사실 나는 자연 요법이든 뭐든 상관없다. 그저 지금 당장 항암치료를 그만 두면 만족했다.

오른쪽 가슴에 박혀있는 케모포트를 제거하고 나니까 후련했다.

호치케스로 이쁘게 꼬매주셨다.

새장을 벗어난 새가 된 느낌이다.

수소문 끝에 의왕시 백운호수 근처에 아는 분의 샛방에서 머물기로 했다.

통장을 확인해보니 6만 원이 남아 있었다. 이제는 드디어 없으면 없는 대로 살아야 할 때이다.



P.S 흐름상 분량이 적어서 죄송합니다. 다음 글은 조금 더 빨리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어쩌면 별로 상관없으실 수도 있으시겠지만..

P.S2 답글을 늦게 달아서 죄송합니다. 공부를 하는 중이라 틈틈이 달기가 힘이 드네요. ㅎㅎ 그래도 대화는 항상 설레고 즐겁습니다. 감사합니다. 어쩌면 이것도 별로 상관없으실 수도 있으시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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