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찌질하다.

29살 혈액암환자의 인생 적응기

by 김탱글통글

어제 아침에 일어나서 정신을 차리고 보니까 왼쪽 얼굴이 잔뜩 부어있었습니다.

항암치료로 면역력이 약해진 상태라서 얼굴이 자주 부어오릅니다. 급성 염증처럼 갑자기 부어올라서 병원에서 항생제를 처방받아서 복용해야 하는데요. 며칠간은 아무것도 못하고 감기처럼 앓기만 합니다.

어머니께 말하고 급하게 병원을 예약해서 출발하려는데 문 앞에서 갑자기 눈물이 쏟아졌습니다.

이번 주 토요일 친한 친구의 생일이라서 친구들과의 점심 약속이 잡혀있었는데, 그 자리에 참석하지 못할 것 같아서 눈물이 났습니다. 저는 고작 그런 이유 때문에 어머니와 동생 앞에서 주책 맞게 눈물을 흘렸습니다. 많이 걱정하셨을 태죠.

나는 정말 찌질합니다. 어떤 사람은 나라를 걱정하고, 국제 정세를 걱정하며 눈물을 흘리는데, 저는 고작 친한 친구의 생일파티에 참가하지 못한다는 이유로 억울해서 눈물이 찔끔 났습니다.

한심합니다.

이렇게 태어나 버렸으니 어쩔 수 없는 걸까요?

의사 선생님께서 혈액암이 걸려서 항암치료를 강하게 했던 환자들에게서 흔히 일어날 수 있는 현상이라고 하셨습니다. 면역력 자체가 떨어진 상태라서 규칙적인 생활이나 음식으로는 나아질 수 없다고 하시더군요. 저는 어쩌면 평생 이렇게 살아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런 연약한 컨셉이 여성들에게 어필할 수 있는 시대는 지나버렸는데... 암은 고쳤으면서 이런 급성 염증은 어쩌지 못하는 의학의 세계는 참 복잡 미묘합니다.

집으로 오는 길은 햇살이 밝게 빛났습니다. 제 마음은 이렇게 어두컴컴한데, 이런 괴리감이 저를 쓸쓸하게 합니다. 이런 날의 햇살은 마치 연유처럼 탁하고 끈적거립니다. 몸에서 열도 나고 피곤하기도 해서 몽롱한 기분으로 창문 밖의 도로를 멍하니 바라보았습니다. 봄꽃이 슬슬 머리를 내밀기 시작합니다.

저는 언제 봄꽃처럼 아름답게 피어오를 수 있을까요? "올해는 기필코!" 라며 자신을 위로하는 것도 이제는 슬슬 지쳐가는데 말이죠.

하지만 아무리 지치고 힘들어도 저는 나아가야 합니다. 모두가 그렇듯 어쩔 수 없이 한걸음 한걸음 내딛어야 합니다. 아무리 아프고 힘들어도 독서실에 앉아서 책을 펴고, 친구의 생일을 진심으로 축하하며 부은 얼굴로 간신히 웃어주고, 하기 싫은 운동을 하고, 먹고 싶은 단 음식도 꾹 참아야 합니다. 그게 인생이니까요.

그러다 보면 언젠가 제 인생에도 봄꽃이 피는 순간이 올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면 햇살도 더 이상 끈적거리지 않고 나비와 벌들도 찾아와 주어서 퍽이나 아름다운 광경이겠죠. 보기에 흡족할 겁니다.

이 글을 읽으시는 분 중에 혹시 힘든 상황이신 분들은 같이 힘냈으면 합니다. 한발 한발 내딛다 보면 불쾌한 현재도 어느샌가 추억이 돼있더라고요.

말에 두서가 없어서 죄송합니다. 갑자기 넋두리가 하고 싶어 쓰는 거라 정신이 없습니다. 쓰고 나니 기분은 한결 나아지네요. 정말로 감사합니다. 독자님들 사....사..사ㄹ ㅏ....사 ㄹ ...사과합니다. 늦은 시간에 글 올려서 사과합니다...

흠.. 다음부터는 다시 29살 혈액암(이었던) 환자의 인생 적응기가 시작됩니다. 좋은 밤 되시고 아침식사 맛있게 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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