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살 혈액암 환자의 인생 적응기
내가 기억하는 첫 번째 죽음은 증조할머니의 죽음이다. 초등학교 4학년쯤의 일이다.
증조할머니는 전형적인 할머니 상의 표본이었다. 항상 잘 다린 치마를 곱게 입고 앉아계셨다. 얼마 남지 않은 머리를 단정히 빗어 묶으시고 부엌 옆 작은 방에서 항상 무언가를 오물오물 씹고 계셨다. 항상 해탈한 석가모니처럼 아무런 고민도 미련도 없이 웃는 표정이셨다. 주름이 자글자글하게 얼굴을 가득 덮고 계셔서 마치 장롱 뒤에서 30년 만에 찾아낸 호두의 모습과 같았다.
증조할머니는 참외를 좋아하셨다. 항상 칼로 잘라 드시지 않으시고 가로로 길게 자른 뒤에 껍질을 그릇 삼아 숟가락으로 퍼서 드셨다.
어렸을 때 증조할머니의 방으로 달려 들어가면, 항상 무릎에 날 앉히고서 참외를 떠먹여 주셨다. 참외가 항상 미지근하고 농익을 대로 익어서 물렁거렸다.
지금도 과할 정도로 익은 과일을 좋아한다.
햇살이 잘 드는 따스한 방은 온통 참외 색으로 뒤덮여 있었다. 창문이 옛날식으로 철판지붕처럼 울렁거리는 형태여서 햇빛이 항상 일렁거리는 강물처럼 들어왔다. 아직도 햇살이 비치는 자그마한 방에 들어갈 일이 있으면 증조할머니의 생각이 나곤 한다.
증조할머니는 이틀 정도를 조용히 앓다가, 주무시던 중 돌아가셨다. 증조할머니다운 죽음이었다.
어느 날 아버지가 굳은 표정으로 “네.. 네..”를 몇 번 말하고 고개를 끄덕이고 어머니와 몇 마디를 나눈 후에 온 가족이 부천에 있는 할아버지의 집으로 찾아갔다.
알 수 없는 그림이 그려진 커다란 병풍 뒤에 흰 천으로 덮인 나무관이 놓여있었고 좁은 거실에 온 친척들이 모여서 울고 있었다. 며느리들은 거실에 모여서 제사음식을 준비하고 다른 어른들은 할머니의 관 앞에 모여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심각하게 하고 계셨다.
제사가 시작되고 예식에 맞춰 절차가 이루어졌다. 절을 드리는데 모두가 울기 시작했다.
큰고모가 가장 슬프게 울었다. 체면 불고하고 통곡하셨는데 나까지 괜스레 눈물이 나서 부끄러움에 황급히 화장실로 뛰어 들어갔다.
슬프지는 않았다. 죽음으로부터 오는 감정을 이해하기에는 아직 어렸으니까. 두 사람이 살아온 시대가 너무나 달랐기 때문일 것이다.
증조할머니가 돌아가셨지만 세상은 변하지 않았다. 여전히 태양도 뜨고 학교도 가야 한다.
모두가 금세 잊는다.
친할머니가 돌아가실 때에도 마찬가지였다. 할머니는 치매를 심하게 앓으셔서 결국에는 식물인간 같이 지내게 되셨다. 몸에 암도 있으셨다. 하지만 그러고서도 10년을 더 버티면서 사셨다.
나라면 도저히 그렇게 버틸 수 없었을 텐데.
어쩌면 할머니도 그렇게 생각하셨을 수도 있다.
할머니가 계셨던 요양원에는 할머니와 같은 환자들이 한방에 6명씩 누워있었다. 모두가 누군가의 할머니일 것이다. 방에 들어갈 때마다 초점을 잃은 눈동자들이 다 나를 향해 있는 것 같아 무서운 기분이 들었다. 병실에는 항상 가습기가 틀어져 있었는데 힘차게 수증기를 내뿜는 저 기계가 가장 활발하게 생명을 유지하는 생명체 같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병실은 축 처져있었다.
병실을 찾아뵐 때마다 아버지는 나에게 “할머니께 인사드려봐” “손자가 찾아왔다고 말씀드려봐” 같은 말을 하셨다.
그게 참 싫었다.
마치 동물원에 있는 코끼리에게 손을 흔들어보거나 먹이를 주라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 싫었다. 아버지는 분명히 그런 뜻은 아니었겠지만 삐뚤어진 나는 그런 느낌이어서 거부감이 들었다.
할머니는 내가 한창 아플 때 돌아가셨다. 할머니의 임종이나 장례, 어떤 것도 함께할 수 없었다. 보여드린 나의 마지막 모습이 건강할 때의 모습이란 것은 그나마 위안이 된다.
병을 다 치료한 후 어느 정도 몸이 안정되고 나서야 산소를 찾았다. 할머니는 수원의 깊은 산속에 있는 선산에 묻히셨다.
주변지역이 재개발이 되면서 나라에서 더 이상 선산에 사람을 묻지 말라고 했던 모양이다. 집안 어른들이 새벽에 몰래 할머니의 관을 지고 가 묻었다는 얘기를 아버지가 자랑스레 말씀하셨다.
산소에 술을 따른 후 절을 두 번 올리고 난 뒤 무덤 옆에 앉았다. 무덤 옆에서 바라보는 경치가 좋았다. 집안에서 신경 써서 고른 선산 자리라고 들었다.
“할머니 좋은 경치 봐서 좋으시겠어요. 다행이네요.” 라며 웅얼거렸다. 말하자마자 내가 이런 말을 내뱉었다는 것이 어이가 없어진다.
할머니는 이미 돌아가셨다.
관을 비싼 원목으로 짜던, 새벽에 몰래 관을 모시고 좋은 선산에 묻던 죽은 사람은 알 수 없다. 결국 살아있는 자들의 자기 위로일 뿐이다.
할머니는 이미 무덤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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