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자는 알 수 없다(2)

29살 혈액암 환자의 인생 적응기

by 김탱글통글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할아버지도 많이 쇠약해지셨다. 마치 할머니를 간호하느라 힘을 다 써버린 것처럼 빨릴 대로 빨린 튜브형 아이스크림 마냥 수축해계셨다.

오랜만에 본 할아버지가 놀랄 정도로 기력이 없으셔서 당황한 얼굴을 감추느라 애썼다.

할아버지는 마을의 장사였다고 한다. 키가 크시고 체격이 좋아서 인기가 많으셨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말 수가 적으시고 성실하시다. 급격히 몰락한 가문을 오로지 성실함 하나만으로 일으켜 세우셨다고 들었다.

나는 뿌리에 대한 자부심은 별로 없는 편이지만, 할아버지에 대한 자긍심은 있다.

여름에 대학을 재입학해서 다니고 있을 때, 할아버지가 돌아가실 것 같다는 소식을 듣고 병원으로 달려갔다.

조그마한 동내 병원이었다. 어쩌면 그 지역에서는 큰 병원일 수도 있는데 내가 워낙 대형병원만 다녔기 때문에 내 눈에만 작아 보인 걸지도 모른다.

2층 복도는 위급한 사람들을 모아놓은 병동인 듯했다. 복도가 어두워서 분위기가 우중충했다. 어두운 복도에 작은 창문으로만 햇빛이 들어오니까 분위기가 더 음산했다. 끝도 없이 이어지는 것처럼 느껴지는 복도가 어쩐지 답답하다.

알 수 없이 가라앉게 되는 우울한 분위기다. 병원의 이런 느낌은 아무래도 적응이 되질 않는다.

복도 끝 의자에 큰아버지가 앉아계셨다.

앉아있다기보다는 웅크리고 계셨다는 표현이 더 정확하다. 신고 계시는 샌들 사이로 굳은살이 배겨 잔뜩 갈라진 발뒤꿈치가 보였다.

큰아버지는 자신의 아버지를 위해 많은 것을 희생하셨다. 거동이 불편한 할아버지의 집에 머물며 몇 년간 병시중을 하신 것도 큰아버지다.

지금의 큰아버지는 내가 어릴 적의 할아버지와 같은 나이가 되었지만 여전히 할아버지의 장남으로 남아 있다.

큰아버지의 상실감은 나와는 비교도 할 수 없겠지.

할아버지에게 받은 건장한 뼈대와 할머니를 닮은 외모가 시간과 추억에 뒤섞여 왜소해 보였다. 사도세자를 생각하는 정조의 모습 같았다.

나는 나의 아버지를 위해 저렇게 희생할 수 있을까? 슬퍼할 수 있을까?

자신이 없다.

아버지란 어떤 존재인지 나는 아직도 잘 모르겠다.

의사가 우리를 부른 것은 한 시간 뒤 정도다. 할아버지는 인공호흡기에 의지한 채 온 힘을 다해서 오로지 호흡하는 것에만 열중하고 계셨다.

할아버지가 계시던 중환자실

마치 호흡하는 것만이 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일인 사람 같아 보였다. 할아버지가 세상에 남긴 자손들이 그 처절한 생존 과정을 지켜보고 있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쉽게 죽지 못한다.

병원 생활을 하면서 사람의 목숨이란 것이 생각보다 질기다는 생각을 했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느꼈다.

상대적으로 빨리 죽고 싶었기 때문에 그렇게 느꼈을지도 모른다.

내가 죽을 때 어떠한 환경에서 어떤 마음가짐으로 죽어갈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필사적으로 고통과 싸우다가 죽고 싶지는 않다. 화살 비를 맞으며 전장에서 전사하는 장수가 되고 싶지는 않다. 아픈 것은 싫다. 지긋지긋하다.

주변 사람에게는 항상 내가 의사 불능 상태에 빠지게 되면 지체 없이 죽여 달라고 말한다. 한 달 뒤에 기적처럼 병을 치료할 수 있는 치료제가 나온다고 하더라도 상관없다.

아픈 것은 이미 충분할 정도로 경험했다.

사각 금테 안경을 쓴 약간은 젊어 보이는 의사가 서류 몇 장을 들고 사무적으로 말했다.

“이제 김 ‘제’ 자 ‘창’ 자 할아버님의 생명연장 치료를 중지하겠습니다. 보호자 분께서는 서명 부탁드립니다.”

그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모두가 눈물을 흘렸다. 고모는 몸부림치며 오열했다. 물론 나도 한 발자국 뒤에서 눈물을 닦았다.

하지만 할아버지는 아직도 살아계셨다.

여전히 생명의 끈을 처절하게 붙잡고 계신다.

하지만 의사의 한 마디에 할아버지는 죽어가는 사람이 아니라 이미 죽은 사람이 되어 버렸다.

그때 느꼈다. 어쩌면 사람의 죽음은 심정지나 뇌사가 아니라, 의사의 말 한마디와 서류 몇 장으로 결정 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고.

할아버지는 그 후로도 하루 정도를 더 살다가 가셨다.


장례식에는 많은 사람이 다녀갔다. 처음 입어보는 상복이 어색했다. 각자가 향을 피우고 저마다의 추억들이 교차했다. 문상객이 위로를 하면 상주는 비통한 표정을 지었다. 숙연한 분위기로 고인을 추모했다.

하지만 두 시간 정도 지나자 아무도 할아버지를 위해 울지 않았다. “이제 나도 결혼을 해야지.” “취업을 해야 하는데 나이가 많아서 걱정이에요” 반대편 자리에서는 음식 얘기가 한창이다. “여기 업체 북엇국은 맛있는데 밑반찬이 별로네.” 실로 활기찬 삶의 공간이 되어버린다.

그때 불현듯 깨닫게 된다. 타인의 죽음은 그렇게 오래 남아 있지 않는다. 때때로 추억하고 슬프겠지만 삶이 끝나고 세상이 바뀌는 것은 아니다.

어떻게든 살아가야 한다.

그리고 세상은 점점 쓸쓸해진다.


*이 글을 할아버지에게 바칩니다. 그때 무뚝뚝하게 행동해서 죄송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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