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살 혈액암 환자의 인생 적응기
내가 병을 이기지 못하고 죽었다면 가족들도 분명 슬퍼했을 것이다. 아버지도 슬퍼했겠지. 동생도 슬퍼했을 것이다.
동생은 바빠서 병원에 잘 찾아오지는 않았지만 누구보다도 나를 걱정했던 사람 중 하나다.
동생이 찾아오는 날은 기뻤다. 물론 나중에는 누가 환자인지 병문안 손님인지 모를 정도로 주객이 전도되어서 내가 동생의 눈치를 살피며 안절부절 하기는 하지만.
동생과 이야기를 하다 보면 재밌다. 마냥 어렸던 동생이 어느덧 나보다 더 훌륭하게 사회생활을 하고 있는 것이 대견스러웠다.
물론 대견스러워할 만큼 도움을 준 적은 없었다.
하지만 아무래도 가장 슬퍼할 사람은 어머니일 것이다. 매일 같이 울면서 살다가 지쳐 쓰러질 수도 있다.
어렸을 적 나는 많은 기대를 받는 아들이었다. 첫 자식을 만난 어머니는 기대감에 부풀었다. 이 아이를 천재로 키우리라 당찬 각오를 다졌다고 한다.
하지만 나는 어머니의 기대를 당차게 박살 내며 자라 왔다. 그렇게 가혹하게 박살 낼 필요는 없었는데. 그 점에 있어서는 아직도 미안하게 생각하는 부분이다.
하지만 그 당시 어머니는 받아들일 수 없었나 보다. 날 완전히 놓아버린 고등학교 전 까지는 엄하게 자랐고 갈등도 많았다.
그 점이 마음에 많이 걸리셨던 모양이다. 가끔씩 날 엄하게 다룬 것에 대해 후회하곤 하신다.
어렸을 때의 사고발달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친 것 같아 미안하다고 하신다. “지금의 나라면 그러지 않았을 텐데.”와 같은 말을 가끔 하신다.
사실 그렇게 걱정할 부분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나는 그다지 섬세한 사람은 아니니까.
프로이트의 정신분석이니 에릭슨의 심리사회적 발달단계니 같은 것은 나와는 다른 세계의 이야기 같다. 그런 심리학을 대입하기에 나란 인간은 너무나 게으르다. 뇌도 어느 정도 생각하다가 그만둘 것이 분명하다.
적당히 괜찮은 가정환경에서 자라 왔다고 생각하는데 어머니는 항상 미안해하신다. 항상 못해준 부분만 기억하시나 보다.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이렇게나 불공평하다. 여태까지 나와 관계를 가지고 온 수많은 사람들보다 나를 위해 아무것도 해준 것이 없는 사람이 문득 내 삶에 찾아와서 제일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거부할 수도 없고 반품할 수도 없으니 참 곤란하다.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난 후에 죽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큰 효도가 아닐까 싶다.
나는 80 정도까지 살다가 죽는 것이 가장 좋은데. 얼마 전 어머니가 120세까지 사는 게 소원이라고 하셨다. 궁금한 게 너무 많아서 다 보고 사용해보다 죽고 싶다고 하신다. 정말 곤란하다.
만약에 내가 먼저 죽는다면 나를 금세 잊어도 괜찮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아프고 난 후에 관심도 없던 SNS도 시작하고 그림도 그리면서 나를 남기기 위해 노력한다.
문득 내가 죽어버리면 남은 사람들이 나를 기억할 자료가 너무 없다는 생각이 들었으니까. 북쪽의 누구처럼 시신을 박제하는 정도는 아니더라도 기억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나는 가끔씩 추억하며 그리워해 주는 정도로 만족한다.
이따금, 잊으려 해도 잊히지 않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세월이 가면 저절로 잊힐 것이다.
그것이 자연스러운 거니까.
그렇지만 문득 생각날 때가 있다. 화창한 날씨에 푸르른 하늘을 바라보면서, 방에 노란색 햇빛이 비치는 구석에서, 구석진 골목길을 걸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