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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탱글통글 Mar 08. 2018

하늘에서 뚝 떨어져 나에게 와줄래?

같이 놀자. 커피 사줄게.

소설을 쓰고 있다.

올해 1월에 에세이를 쓰는 것에 문득 한계를 느꼈다. 하고 싶은 이야기는 충분히 했고 활동반경이 넓지 않아서 새롭게 하고 싶은 이야기도 별로 없었다. 매일 보는 나무, 건물, 사람들로 매번 새로운 글을 쓸 수 있을 만큼 감성적이거나 글솜씨가 좋지도 않았다.


63 빌딩은 총공사 기간이 5년 5개월인데 기초공사 기간만 2년 3개월이 들었다고 한다. 어떤 일이든 기초공사가 중요하다는 의미다. 나에겐 소설을 쓰는 일도 마찬가지였다. 어렴풋이 소재를 고민한 게 반년 정도였고 1월, 2월 두 달은 '무엇을 쓸까?'에 대해서만 생각했다. 가끔씩 한 문단을 썼다가 다음날 지우기를 반복했다.

그리고 3월에 들어 정한 소재에 관 쓰기 시작했다. 한 번 소재가 정해지면 글은 생각보다 쉽게 쓰인다. 콘크리트 건물이 올라가듯 이틀에 한 챕터씩 쭉쭉 쓰고 있다. 너무 몰아서 쓰면 금방 힘이 빠질 것 같아서 마라톤을 하듯 일부러 호흡을 늦추며 쓴다. 글을 쓰기 전에 여러 위대한 작가들의 조언을 찾아보았고 몇 가지를 추려서 정리해놓았다. 매일 저녁에 샤워를 끝내고 음료 한잔을 옆에 두고 소설을 쓰는데 그때마다 한 번씩 읽고서 글을 쓴다.


1. 내 앞에 마주 앉은 누군가에게 이야기해준다고 상상해라. 그리고 그 사람이 지루해 자리를 뜨지 않도록 설명하라.


2. 달이 빛난다고 말해주지 말고, 깨진 유리조각에 반짝이는 한줄기 빛을 얘기해라.


3. 모든 초안은 끔찍하다. 죽치고 앉아 고쳐 쓰는 수밖에.


4. 뻔뻔함을 길러라.


1번은 도움이 많이 되었다. 친구를 만나서 떠드는 일은 가장 자신 있는 분야 중에 하나니까. 그렇게 생각하면서 대화를 옮겨 적으면 주저리주저리 쓸 수 있었다.

2번은 항상 염두에 두고는 있지만, 내가 어떻게 해 볼 수 있는 영역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표현은 작가의 스타일이고 어느 정도 천부적인 감수성이자 재능이다. 나름대로 최선을 다하고 있지만, 억지로 유리조각을 박살 내며 상처 입는 짓은 하지 않는다. 마음을 편히 먹으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3번은 글을 쓸 힘을 준다. 챕터를 나누어 쓰고 있는데 다 쓰고 다시 읽어볼 때마다 당장 지워버리고 싶은 마음이 든다. 하지만 모든 초안은 끔찍하다는 말을 읽으며 애써 참는다. '드래곤 중에서도 최강의 투명 드래곤이 울부짖었다. 투명 드래곤은 졸라 짱쌔서 드래곤 중에서 최강이었다.' 보다만 잘 써보자고 생각한다. 다 쓰고 끊임없이 고치면 될 일이니까. 에세이를 쓸 때도 최소 열 번씩은 정독하며 고친다.

4번은 자신 있다. 뻔뻔함은 특기다.


10시쯤 집에 와서 씻고 간단한 샐러드로 허기를 달랜 후에 자리에 앉아 글을 쓴다. 즐겁다. '어우!! 씐나!!!' 정도의 즐거움은 아니지만 그래도 지루하지  즐거운 마음이 든다.

'졸리와 릴리'의 이야기를 쓰고 있다. 참고로 릴리는 남자다. 애초에 생각했던 사랑 이야기는 아니지만 쓰는 동안 즐거우니까 그걸로 된 거라고 만족한다. 아무도 나를 대문호라고 생각하지 않으니까 부담감도 없다. 주변 친구들은 관심조차 없다. 그야말로 취미 활동으로 즐기고 있는 셈이다. 그런데 그 사실이 외롭게 느껴질 때가 있다. 취미로 소설을 쓰고 있지만, 가족을 제외한 내 주변에는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 없다. 글을 썼는데 피드백을 부탁할 사람도 없고.


얼마 전에 '생사의 장'을 읽었다. '진즈는 눈물 자국을 밟으며 걷는 것 같았다.'라는 문장을 읽었고 감동했다. 가슴이 찡하고 울리면서 '3. 깨진 유리 조각에 반짝이는 한 줄기 빛'을 보았다. 하지만 도저히 공감해줄 사람이 없었다. '일본 강점기에 쓰인 이 표현을 봐!'라고 말해도 같이 감탄해 줄 친구가 없어서 속상했다. 그래서 외로운 마음이 들었는데 설상가상으로 연락할 사람조차 없었다. 즐거우니까, 슬프니까, 그냥 심심하니까 연락할 사람들은 있었는데 막상 외로우니까 만나 달라는 부끄러운 말을 할 수 있는 사람이 내게는 없었다. 취미를 즐기면서 외로움을 느끼는 사람은 정말로 곤란하다. 읽는 취향이, 취미가 비슷한 사람이 하늘에서 뚝 떨어졌으면 좋겠다. 그럼 나의 슬픔 뚝 떨어져서 하늘로 올라갈 텐데. 결국은 오늘도 나는 외롭다는 이야기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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