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토희 Sep 17. 2021

내일의 불확실 앞에서 자유 누리기

감칠맛의 폭발, 홈메이드 토마토소스 오므라이스

 친정 가족들과 임신 소식을 나누던 날, 안정기가 될 때까지 주변에 알리지 말아 달라고 부탁했다. 초기에는 다소 유산이 있을 수 있다는 간단한 이유 때문이었다. 설마 했는데 이번에도 엄마가 요주의 인물이다. 젠장, 이틀 만에 이모에게 축하 메시지를 받았다. 결국 얼마 안 있다가 나는 식구들에게 다시 공지했다.


"주변에 알리고 싶은 사람은 원하는 대로 해. 혹시 유산됐을 경우에 다시 알리는 게 더 실망을 안기는 일 같아서 그랬는데 얘기하고 싶으면 하세요."


 기쁜 일 나누고 싶어 얼마나 입이 근질거리실까, 좀 가혹했다는 생각도 들고 내 일이긴 하지만 과연 나만의 일이라 할 수 있나 싶어, 이제 나머지는 그들에게 맡긴다. 새 공지에 빠르게 엄마의 회신이 날아온다.


"유산이라니. 왜 그런 안 좋은 생각을 해? 퉤퉤퉤 침 뱉어. 침 뱉으면 없던 일로 된대."


 안 좋은 생각? 없던 일? 이렇게 말하는 엄마가 나는 무섭다. 나는 유산이 '좋은 생각'이라고도 '안 좋은 생각'이라고도 생각지 않는다. 의학계에서 내놓은 통계에 근거해 그저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조심들을 할 뿐, 그건 사람이 살다 보면 일어날 수 있는 일 중 하나다. 우연히 아기가 우리에게 왔듯이 그 또한 다를 게 없다. 물론 그 일이 생기면 잠시간 누구보다 슬픔에 들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유산의 가능성이 없는 척, 모른 척 하는 건 이상하다. 엄마는 지나가는 말 정도의 노파심 인지 모르지만, 엄마가 평생 내게 보여주었던 사고관은 그 말과 톤이 비슷하게 일정하다. 엄마에게 ‘일어나서는 안 되는 그 일’이 실제 일어나기라도 한다면 또 얼마나 실망하고 나를 안타까워할는지, 듣자마자 부담감의 데자뷔에 사로잡혀 덜컥 움츠러든다. 그러면서도 엄마의 좋고 나쁨에 대한 명확한 가치관이 참 한결같아서 웃음이 삐져나온다. 그런 씩씩한 올곧음이 낙천적인 당신의 평생의 원동력이 아니던가, 단편적으로 엄마를 재단해 버렸나, 순간 미안하고 부끄러워진다.


 나도 아기가 건강하게 우리 곁에 있어주면 좋겠고 그러길 바란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바람이다. 원하는 대로 꼭 되어야만 한다는 애착은 무엇을 하든 인생을 투박하고 무겁게 했다. 감히 누가 내일을 확신할 수 있을까?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을 거란 기대와 그에 응당한 노력은 인간이 가질 수 있는 아름다운 단상임이 분명하지만, 눈을 뜨고 바로 보면 미래의 불확실 앞에서 확실을 점치는 것은 삶 앞에서 겸허하지 않음이다. 믿음은 갖되, 확실에 대한 '헛 꿈'은 인간의 건방이고 어리석음임을 되새긴다. 내일의 불확실이 유일한 확실임을 긍정할 수 있을 때, 현재에서 여유 있게, 내가 할 수 있는 것에 대한 집중과 할 수 없는 것을 구분하는 선택의 자유를 누린다. 음. 그렇게 보니 엄마의 말은 당신 방식의 믿음… 혹은 사랑이었겠네.




 들풀이고 싶다. 갈망에 얽매여 전전긍긍하는 못생긴 얼굴 말고, 지금 할 수 있는 것을 한 아름 누리며 가볍게 살자.


 그래서 오늘 잘 먹고 살 요리는 <홈메이드 토마토소스 오므라이스>


ⓒ 2021. 토희 all rights reserved.


 빠알간 토마토의 계절을 떠나보내기가 아쉬워 최대한 토마토를 활용한 요리를 해 먹는다. 맛도 좋고 건강에도 좋은 식재료는 자연이 전하는 선물 같다. 임신 초기(0~3개월)에는 태아의 뇌세포가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대부분의 근육 조직이 형체를 갖추는 시기이므로 영양 섭취에 신경을 써주면 좋겠다. 토마토는 생으로 먹기보다 열을 가할 때 성분과 맛이 배가 된다. 항산화 기능을 담당하는 라이코펜이 열로 인해 흡수율을 무려 5배나 높인다니, 뱃속에 ‘젤리 곰’을 위해 타다닥! 가스 불을 올려본다. 그리고 되도록이면 끼니에 단백질을 포함한다. 계란은 비교적 가격이 저렴하면서 요리도 쉬운, 훌륭한 단백질원이 되어준다. 토마토소스 만드는 방법은 아주 간단함에도 시판 소스보다 감칠맛이 풍부하고 첨가물이 안 들어가 속이 편안하다.


ⓒ 2021. 토희 all rights reserved.


1. 반으로 자른 토마토에 올리브유와 소금, 후추 간을 하고 예열된 오븐에 30분간 굽는다.

2. 구운 토마토의 껍질을 살살 벗긴다.

3. 냄비에 2와 설탕 반 스푼(취향껏)을 넣고 뭉개면서 끓인다.

4. 그릇에 밥을 담고 만든 소스 3을 한 켠에 붓는다.

5. 약불로 촉촉하게 익힌 계란을 밥 위로 살포시 덮는다.


잘 먹었다 / ⓒ 2021. 토희 all rights reserved.



[9주~10주 차]

입덧과 속 쓰림에 대한 반응도가 점차 낮아진다. 증상이 없어진 것이 결코 아니라, 이게 일상이려니 날 잡아 잡수소... 하는 여유가 찔끔 생긴다. 평소 입에도 안 대던 음식이 먹고 싶기도 하고 본능적으로 어떤 걸 먹으면 입덧이 사그라들 것 같은 음식이 번뜩일 때가 있는데, 잘 찾아서 입에 물고 있는 요령을 발휘해보자.

매거진의 이전글 ‘처음’엔 다 그래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