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짜 모성애 진짜 모성애
요즘은 넷플릭스의 영화 <오징어 게임>을 빼놓고는 소통이 어렵다. 자기 전에 누워 봐야 꿀맛인 ‘먹방’ 유튜브를 봐도, TV 예능을 틀어도, 심지어 길을 걷다 보이는 쪼끄만 상점의 홍보 이미지에도 오징어 게임이 등장하니 말이야. 그래픽 디자이너의 ○△□ 심벌 아이디어도 재밌고, 영화의 이름 자체도 독특하니 인기를 떠나 구미가 당기지 않을 수 없다.
나는 신문물/신문화/신상품 등 새로울 신(新) 자가 들어가는 영역이라면 워낙 호기심이 생기는 습성이거니와 디자인 전공자 특성상 트렌드를 좋아하고 타는 사람 중 하나다.
그런데 말입니다...
현재 전 지구적으로 회자되고 있는 문화 콘텐츠 '○△□'이 저에게는 고작 8음절이면 설명되는 한낱 '영화 나부랭이'가 아니겠습니까?
*이.정.재.나.오.는.영.화*
또르륵... 내가 아는 오징어 게임의 정보는 슬프게도 이게 전부다. 아니, 근데, 정말 나도 보고 싶은데 나의 이 신체 회로가! 생명을 밴 나의 몸뚱이가 희한하게 제 멋대로 작동을 하는 모양이다. 이야기의 내용이 슬쩍 자극적으로 흐른다거나 특히 시각적인 잔인함이 낌새를 보일 때면, 내 재빠른 눈 알과 양 쪽 달팽이관이 그것으로부터 낼름 떠나 버린다. 평소에도 그런 것을 아주 잘 보는 사람은 아니었지만 'SBS 꼬리의 꼬리를 무는 이야기(자극성 5점 만점 중 별 2-2.5개는 되는 수준)' 정도는 입 벌어지는 줄도 모르고 시청한 애청자였으니 이거 새로운 경험이다.
피부 트러블과 미세한 임파선 염, 들썩이는 감정, 온갖 임신 증세로 고역을 치른 ‘임신 극초기'를 찐하게 적응하고 나서 안정기라 불리는 ‘임신 중기’가 자연히 왔다. (여전히 토덧은 유효하고 본격 증상은 이제부터라 들었지만. 우엑) 이런 자연스러운 변화들 중에서 유독 특별하게 느껴지는 변화는 2주에 한번, 의사 선생님께서 초음파 기기로 내 자궁 근처를 문지를 때다. 그 자그마한 공간에서 하리보 젤리 곰 같았던 생명체가 제법 '아기 형상'으로 변하고는, 잠을 자는 모습이나 운이 좋으면 뒤집고 구르는 모습을 보여 준다는 것이다.
나는 앞선 글들에서 전했다. 임신의 인연에는 감사하고 신기하지만 그로 인해 치러야 할 톡톡한 대가를 감당하며 마냥 기쁘지만은 않은 게 진심이라고. 그러나 초음파 화면 속 아기의 변화를 접하니, 내 마음 동산에도 가을 햇살을 가득 머금은 붉고 노오란 단풍의 환희로움이 마구 흐드러지기 시작했다. 그날은 임신 후 처음, 남편도 동행해서 초음파 영상을 보았는데 말로는 형언할 수 없다는 듯한 남편 얼굴을 구경하는 재미도 쏠쏠했다. 허허. 귀여운 남자....
그래서인지 오징어 게임이 참 보고 싶은 건 맞지만! 여의도에 화려하게 오픈한 거대 백화점에 나들이도 가고 싶지만, 캠핑장에 모닥불 펴놓고 호가든 캔 맥주 하나 씨원하게 벌컥 대고 싶지만 사실, 썩 원하지는 않는 것 같다. 13주부터는 아기의 뇌가 더욱 발달해 엄마의 감정 상태가 아기에게도 전이될 수 있다고 한다. 어쩌다 빨간 핏 빛 영상에 노출되어 교감 신경의 급격한 흥분을 느낄 때면 나는 재빨리 눈을 돌린다. 자극적인 소리가 귀에 침입하면 그 자리를 뜬다. 건강하다 자부한 몸 뚱아리를 믿고서 코로나 거리두기 시국 2년 간 이렇게까지 상황을 조심한 적이 없었다.
이런 마음을 위해서 크게 의식한 바는 없는데... 나도 어미의 길에 한 발짝 들어서는 건가? 절로 생겨나는 이게 모성애인지 뭐시기인가? 역시 마음 녀석은 갈대다. 어제 다르고 내일 다르다. 내 이럴 줄 알아서 임신 초기 딱히 기쁘지 않은 마음에도 그런가 보다, 하고 살았다 이놈아.
그런데 이런 본능적인 발현만이 모성애일까? 임부, 산부 중에 모성애라는 게 생기지 않아 불안해하는 사람도 꽤 있다고 들었다. 현실이 원하는 대로 안될 때 생기는 불안과 나만 왜 이럴까 싶은 의구심이야 같은 인간으로서 십분 공감하지만, 나는 모성애란 저절로 생겨나는 마음만을 칭하는 게 아니라 여긴다. 안 생기는 마음을 난들 어쩌겠나? 또 아기가 태어날 때까지 별 감흥이 없는 사람이 있고, 낳아서 점차 커가는 모습을 보며 자연스레 모성애가 생겨나는 사람도 있다고 한다.
한 생명의 엄마로서 모성애는 반드시 필요한 게 맞다. 다만 진짜 모성애는 자연이 쥐어주는 '공짜 모성애'가 아니라 그가 성인이 될 때까지 잘 보살피겠다는 부모로서의 '책임감'이 아닐까? 우리 사회는 엄마란 여성들에게 원초적 모성애에 대한 기대로 은근한 부담을 조장하는 면이 없지 않다. 엄마의 역할이 필요한 때때마다, 이성적으로 잊지 않고 충실히 이행만 한다면 충분하다. 그것만 있으면 뭐가 아무래도 상관없다 믿는다.
사실 초음파 영상에서 움직이는 아기를 볼 때나 오징어 게임처럼 감각 신경을 과도하게 자극하는 것이 있냐 없냐 할 때나 돼야 '아 맞아. 나 임산부였네?' 하고 번뜩 알지, 하루의 일과를 보내다 보면 내 몸속에 아기가 있다고 자각하는 순수 시간은 실제로 한 시간? 내지 두 시간이나 될까 싶다. 30년을 넘게 홑몸으로 살았는데 고작 고거 며칠 아기를 가졌다고 늘상 "나는 임산부요~~", "모성애야 어디 있니~~" 하는 게 더 부자연스러운 거 아닙니깨?
존경하는 엄마들이여, 우리 '진짜 모성애'를 갖도록 노력해 보자고요.
오늘도 아침에 눈을 뜨면 자는 동안 깜빡했던 기억을 돌이켜서, 아직 요만큼이지만 볼록해진 배 위에 손을 얹고 인사를 전한다.
찰떡아 안녕, 잘 잤뉘? 간 밤에 별일은 없었고?
찰떡이 엄마는 열심히 크느라 바쁜 찰떡이를 위해 또, 나를 위해 오늘도 맛 나고 영양가 좋은 아침밥을 만들어 먹는다. 참 먹고 싶은 게 없는 나날이지만 그래도 꾸역꾸역 생각해보면 먹고 싶은 게 없진 않다. 참치 초밥, 간장게장.... 내가 사랑하던 거... 다른 거 다 포기하고 큼직한 게장 양손에 들고서 쭈압 쭈압 먹고는 싶구나.... 화면 속 찰떡이가 조금 더 사람 행색을 갖추면 한번 정도는 먹겠어! 그러나 아직 날 음식은 자제해야 할 때니, 일식집에 가면 첫 주자로 입에 넣었던 촉촉한 타마고 스시, 일명 '계란 초밥'을 해 먹어 본다. 참 맛있어.
간식은 오징어의 참맛과
오리온 ○△어 땅콩
[11주~13주 차]
태반이 완성된다는 12주가 지나고 엄마는 한시름을 던다. 임신 전과 같은 격렬한 운동은 하지 못해도 꽤 몸을 움직여도 된다는 의사 선생님의 허락이 떨어진다(담당 선생님과의 상담 필수). 12주부터 대부분의 임부는 입덧이 사그라들고 입맛이 왕성해진다지만 나처럼 그렇지 않은 산모도 있다는 게 정설이니 마음을 편하게 갖자. 이 시기부터는 아기의 성장하는 속도가 엄청나서, 11주에 4cm였던 아기가 13주 차에는 7~8cm로 두배나 커져있다. 초음파 영상에는 손가락 뼈, 척추, 갈비뼈, 발가락까지 하나하나 보인다. 말 그대로 폭풍성장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