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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토희 May 15. 2021

그건 니 생각이고

 뭔 생각을 니 생각이라고 하는 건가, 싶으셨나요? 오늘 이야기할 '밍밍하지만 어쩌면 안 밍밍한' 대상은 락밴드 장기하와 얼굴들의 <그건 니 생각이고> 라는 곡입니다.


 연재 중인 매거진 <밍밍한데 안 밍밍한 것들>은요, 토희(저요)가 살면서 무심코 만난 많은 것들 중에 심장을 펌핑시키는 것, 얼굴을 발갛게 상기시키는 것, 그러니까 쓰지 않으면 안 될 만큼 마음을 동하게 것들에 대한 이야기예요. 네, 그래서 오늘 글은 <그건 니 생각이고> 라는 곡에 대한 제 생각입니다. 비 오는 주말, 안락한 방구석에 누워서 다리 벅벅 긁으며 편하게 읽어 내려가시기를 바랍니다.


 가수로서 유명한 장기하와 작가로서 덜 유명한 장기하 둘 다를 매우 사랑합니다. 저는 삶을 잘 녹여내는 것은 전부 예술이라고 생각해요. 그가 마음을 풀어내는 능력은 가히 예술이에요. 그의 여러 명곡 중 하나인 이 가사를 한번 보겠습니다.




이 길이 내 길인 줄 아는 게 아니라
그냥 길이 그냥 거기 있으니까 가는 거야
원래부터 내 길이 있는 게 아니라
가다 보면 어찌어찌 내 길이 되는 거야


 진리 아닌가요? 제가 돌아 돌아 생각이 닿은 곳은 결국 '그냥' 입니다. 하기로 했으면 두렵더라도 그냥 하는 . 가기로 했으면 귀찮더라도 그냥 가는 . 이것 만큼 삶이 쉬워지는  없더라고요. 그런데 사실  말은 말은 간단한데 행동하기가  팍팍합니다. 어려워요. 두려움과 불안이라는 인류의 앙숙 앞에서 스스로를 믿는 '굳건한 믿음' 같은   필요한 대단한 말로 들리잖아요. , 그래서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다시 가볍게 그냥입니다. 가벼워야 꾸준히   있어요. 여러분  혹시  앞이 막막한 분이 계시다면  한번 '그냥' 힘을 느껴 보셨으면 좋겠어요.


 장기하 님은 이런 이야기가 무겁지 않게 전달됐으면 한걸까요. 아니면 특유의 위트가 자연스레 녹아든 걸까요? 이 모두 저의 뇌피셜입니다만, 진지한 내용에만 치중하지 않기 위해 배경에 귀여운 사운드를 까신 것 같습니다. 오락실 게임기 '팩맨' 같은 신디사이저를 활용해서요. 가수의 통통 튀는 찰진 딕션 따라 흐르는 똥땅 똥땅 전자음이 귀에 살짝 거슬리는 듯하면서 은근히 어울려요. 막 잘 생긴 것도 그렇다고 못생겼다 하기도 힘든 그처럼 묘한 매력이 있습니다.


내가 너로 살아 봤냐 아니잖아

니가 나로 살아 봤냐 아니잖아

걔네가 너로 살아 봤냐 아니잖아

아니면 니가 걔네로 살아 봤냐 아니잖아

아니잖아 아니잖아 어? 어?

아니잖아 어? 어?


 최근에 만난 40대 싱글 여성이 있어요. 그녀는 만난 첫날 저의 신상 명세를 후루룩 털어갔습니다. 사는 동네가 어딘지, 집 평수는 어떻게 되는지, 남편의 회사는 어디며 집에 차는 몇 대 보유하고 있는지. 눈 뜨고 코 베일만큼 실력이 수준급이더군요. 그러다 정작 제가 하나 물어보면 그녀는 딱 이 한마디로 상황을 정리했어요. "그건 노코멘트야. 하하" 어라? 아줌마 그 아이템 써도 되는 거였어요? 이후 그 아주머니와 두 달 가까이 대화하면서 느낀 것 중 하나가 그녀는 수집한 몇몇 외형의 정보로 사람 모양을 나누더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녀에게 이 가사를 들려주고 싶네요. 니가 나로 살아봤냐? 아니잖아 니가 걔네로 살아 봤냐 아니잖아 어? 어? 아니잖아 어? 어?


그냥 니 갈 길 가

이 사람 저 사람

이러쿵 저러쿵

뭐라 뭐라 뭐라 뭐라 뭐라 뭐라 해도

상관 말고

그냥 니 갈 길 가

미주알 고주알

친절히 설명을

조곤 조곤 조곤 조곤 조곤 조곤 해도

못 알아들으면 이렇게 말해버려

그건 니 생각이고

아니

그건 니 생각이고

아니

그건 니 생각이고

알았어 알았어 뭔 말인지 알겠지마는

그건 니 생각이고

니 생각이고

니 생각이고


 아니 그건 니 생각이고 앞에 장기하 님은 필히 스읍... 이라는 들숨의 추임새를 넣습니다. 스읍이 들어가야만 이 노래의 맛이 살아요! 말하듯이 읊조리는 가수의 보컬 스타일이 이 곡에서도 빛을 발해요. 두 번 다시 안 볼 사이처럼 내 생각 니 생각, 칼 같이 구분 짓는 게 아니라 두고 보고 만나야 할 사이에서도 음... 그건 내가 틀리고 니가 맞는 게 아니라 그냥 우리가 다른 거야, 라는 우회적인 단호함 같은 것 말이죠. 미주알 고주알 친절히 설명을 해도 무례한 사람으로부터 나를 보호하는 따끔한 한마디를 '못'하는 게 아니라 '안'하는 것 같은 느낌. 아까 위에서 말한 여성을 만날 때 저는 보통 그냥 제 갈 길 갑니다. 그녀 식대로 누군가를 북 치고 장구치고 평가해 재껴도, 그리고 그게 앞에 있는 내가 될지라도 그녀의 장단에 말려 들지는 않아요. 어디까지나 그건 니 생각일 뿐이니까요. 니 평가로 내가 그렇게 되진 않으니까요. 장기하 님처럼 스읍... 아아니이 그건 니 생각이고 라며 깔끔하게 단호한 말까지는 저도 익숙하진 않습니다만, 필요할 땐 우리 장전하기로 해요. “아니, 그건 니 생각이고.”




 그런데 사실 이 가사 전부는 결국 제 자신에게 하는 말이 되겠습니다. 각자 잘 살고 있는 남의 인생에 관여할 권한도 없고 인간이 다 거기서 거기인 것을. 잘났다고 우쭐 댈 것도, 못났다고 움츠러들 것이 한 개도 없음을. 찬 물 한잔 들이키며 정신 차려봅니다.






듣고 싶은 분은 이것을!

https://youtu.be/h28fhU-mjD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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