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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토희 May 03. 2021

시댁 식구들과 부르는 생일 축하송

 나랑  침대에서 잠을 자는 남자는 해가 중천에  때까지, 아니 중천의 해가 서쪽으로 약간 저무는 때까지 (일어나라고 바가지 긁는 와이프만 없다면) 숙면하는 것에 끄떡이 없다.  특기는  안에서도 발휘된다. 함께 앞좌석에 나란히 앉아 이동하는 시간이면 우리는  시답지 않은 주제로도 꼬리에 꼬리를 물며 수다를  떠는데, 간혹 핑퐁이 오가다가 내가 보낸 말풍선에 돌아오는 그의 리액션이 '침묵' 때가 있다. 낌새가 이상해 고개를 오른쪽으로  돌려보면 역시나, 보조석에는 고개가 어깨에 닿도록 해드뱅잉 하는 남편이 앉아 있다.


 남편의 잠을 의학적으로 연관 지을 수도 있겠지만 (여자 친구 신분부터) 10 이상 곁에서   , 그것은 그의 성정에서 우러나온다고 본다. 그는 무의식의 세계가 밑바닥부터 가만가만하고 얌전하다. 언제 어디서나    있는 그의 성품이 업무 시간에  번도 졸아본  없는 빠릿한 나로서는 신기하다. (그렇지만 그의 것이  차분만 하단  결단코 아니고, 본인이 꼬라지 나는 포인트에서는 말도 ...) 그렇다.


 대부분의 남녀처럼 그와 연애 기간이 5   역시도 그를  안다고 생각했었다. 결혼을 하니 당연히 가까이 들여다볼 기회가 더욱 심도있게 생기면서 그를 한층 적나라하게 알게 되었는데 그중 하나는 화장실이 하나뿐인 우리 집에서 나는 화장실 안에 있고, 그는 밖에서 인간의 본능이라는 것을 위협받을  그가 어떤 태도를 발현하는 지를 보는 거다(그이는 장이 민감해서 주로 그쪽 이슈가 많다). 그는 반전 없이 그때마저도 크게 촐랑거리는 법이 없었다.


 가끔은 남편에게 사람의 심연이 어찌 그리 찬찬하냐고 물었지만 예상을 크게 벗어나지 않는 "내가 그런가?"라는 싱거운 대답이 돌아왔다. 그리고 머지않아  의문은 나의 '며느리 경력'     늘어나면서 자연스레 풀리게 되었다.


 서울에서 거리가 제법 되는 전라도 광주 시가에 도착하면 "오느라 고생 많았지? 어서 오너라." 하는 시부모님이 반겨 주신다. 그러고 나면 배는 안 고프냐는 질문을 받는다. 그리고 그다음 말씀은... 딱히 없다. 어머니의 성품이 고스란히 반영된 깔끔한 집에는 대체적으로 '고요한 정적'이 이어질 뿐이다. 정적이라는 말은 왠지 서늘하고 서먹한 기류가 떠오를지 모르지만, 이 곳에서의 정적이란 고요를 동반한 '온기'가 꾸준히 돈다 하면 알맞다. 이런 부모님 밑에서 자란 그는, 그의 심성은 응당 그럴 만했다. 의문의 퍼즐이 착착 맞춰 진다.


 며칠 전 시가에 다녀왔다.


 이번에 내려갔던  번째 이유는 시아버지의 생신이었다. 매해 어김없이 돌아오는 음력 3 22일이지만, 올해는 아버님의 일흔 번째 생신으로 우리에게는 조금 특별한 날이었다. 남편과 아주버님, 그러니까 아들만    집에는 아기자기한 맛은 사실 없다. 그래서 신혼 초에 나는 요상한 사명감(?) 같은 것을 느끼며 마스크 팩을 가져가서 자기    얼굴에 붙여 드린 적도 있고, 크리스마스 카드를 만들어 짜잔 드리기도 했었다.


 이번 생신에도 그런 재미를 드리면 어떨까 싶었다. 주위에서 반응이 좋았던 '이벤트' 같은 것 말이다. 발사 버튼을 누르면 총에서 지폐가 막 공중에 흩뿌려지는 그런 거라던지, 티슈를 뽑으면 돈이 줄줄 딸려 올라오는 것, 지인들이 보여준 영상 속에는 부모님의 놀람과 환희가 교차되는 얼굴이 있었고, 바라보는 가족들이 깔깔깔 한바탕 폭소하는 행복한 사운드가 있었다. 코로나로 인해 ‘평소 봐왔던’ 고희연 답지 않게 직계 가족만 조촐히 모일 계획이었고, 우리의 이번 선물은 (이례적으로 매우 두둑한) 현금이었기 때문에 돈 이벤트가 제격이다 싶어 나는 들떴다. 남편에게 어떠냐며 제안했다. 남편은 그게 무슨 장난이냐며 크게 대꾸도 없었다.


 그에게는 계획이 다 있었다. 그는 핑크색 리본 장식이 달린 보드라운 촉감의 상자에 소담하게 담은 포장 충전재와 손수 써내려 간 물방울무늬 무늬 카드, 그리고 미리 찾아 놓은 노란색의 빳빳한 '신권' 뭉치를 준비했다. 왠지 시가를 똑 닮은 선물이라 피식 웃음이 났다. 평소였으면 나와 상의하거나, 그렇지 않으면 아예 나에게 맡기는 편인데 이번엔 내 구상이 어지간히 별로였나 보다. '저기요, 나도 이 집 며느리거든요?' 라며 왠지 내 권한을 삐딱하게 주장하고 싶었지만, 아무리 그런다한들 피 섞인 아들 마음과 같을까 싶어 그가 원하는 모양으로 포장을 도왔다.


 생신 식탁에는 서울에서 우리가 주문해 간 카네이션 앙금 케이크를 필두로, 어머님이 손수 준비하신 전라도 음식이 푸짐하게 놓였다. 그리고 우리는 그 식탁을 가운데 두고 서로를 마주 보고 앉았다. '조용'이 익숙한 가족이지만 오늘은 다들 내심, 평소보단 벅적하길 바랬던 걸까? 왠지 작은 어색함이 스쳤던 것도 같다. 그리고 이건 물론 나만 느낀 걸지도 모른다. 어쨌거나 참 차분한 이 가족... 그래도 둘째 아들이(남편이) 기특하게 먼저 입을 뗐다.

"생일 축하 노래 부를까요?"

 며느리가(내가) 거들었다.

"네! 하나, 둘, 셋, 넷."


"생일 축하합니다~ 생일 축하합니다~ 사랑하는 아버님의 생일 축하합니다. 와!!!"


 이 별거 아닌 생일 축하송에 얼마나 고마웠는지 모른다. 사람이 노래를 부를 때면 말할 때와는 달리 음정도 붙여야 하고, 데시벨도 평소보다 높아지기 마련이다. 무엇보다 노래라는 건 아무래도 '흥'을 고취시킨다. 한마디로 일상과는 다른 태도를 취하는 행위다.


 그 노래를 부르는 동안 만큼은 서로 약간씩 다른 (특히 내가 유난히 다르겠지) 우리 식구가 같은 음정을 한 데 모았다. 아마도 감정 또한 비슷한 것으로 불렀겠지?


 노래를 부르는 짤막한 시간 동안에 우린 아버님의 평온한 얼굴을 주시할 수 있었다. 평상 시라면 사람을 몇 초 이상 빤히 쳐다보는 게 실례가 될 수도 있다지만, 생일 축하 송의 명분 하에는 적어도 노래가 끝나기 전까지, 아무리 쳐다봐도 공식적으로 전혀 무리가 없다.


 노래 중에 '사랑하는' 이란 표현도 생일 축하 송의 백미 중 백미다. 이 곡은 알다시피 영어를 한국어로 개사한 것이다. ‘사랑하는' 이라는 가사를 적절하게 넣은 작사가에게 감사를 표하고 싶다. 평소 사랑 고백이 쑥스러운 사이일수록 이 노래의 가치는 빛날 테니까. 대놓고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아니, 말해야만 노래를 부를 수 있다. 그리고 노래 시작의 초반부는 음정이 꽤 낮고 일정하지만 유독 '사랑 는' 가사의 하  음정이 톡 높아진다. 본의 아니게(?) 내 사랑을 강조할 수도 있다.


 노래 말미에 "와!!! 후!!!" 하는 타이밍은 이 집에서도 왁자한 분위기를 잠시나마 조성하는 구절이 되겠다.


 노래를 마치고는 다시 원래 모드로 금세 돌아갔지만 그것도 괜찮다. 우리 부부에게 만약 아기가 생긴다면, 특유의 가만가만하고 포근한 이 식구들의 성정이 3대의 걸쳐 이어지길 나는 바라는 사람이니까. 그러면 그때 또 우리는 아기를 앞에 두고 얌전한 생일 축하송을 부르게 되는 건가. 혹시 나도 지금 그들과, 2015년 부터 한 집에 살고 있는 남편 모습과 어느정도 닮아 있진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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