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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협지를 탐독했던 철학교수(3)

웹소설 왜 재밌나? 회·빙·환 클리셰로 급속성장하니까!

by 김톨
AI 생성 이미지 / OpenArt




'회·빙·환' 웹소설의 금은동 메달리스트




2010년대 '회·빙·환'을 모티브로 하여 문피아에서 가장 먼저 공전의 히트를 쳤던 작품은 「재벌집 막내아들」이다. 산경 작가가 썼고 2017년 3월부터 2018년 1월까지 총 326화가 연재되었다. 아마 당시 누적 조회수 3천만을 넘긴 최초의 밀리언셀러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 작품이 기대 이상의 성과를 거두자, 독자들도 문피아도 모두들 흥분했다. 웹소설은 보통 1화당 100원을 과금한다. 누적조회수에 100을 곱하면... 그것이 총수익이다. 물론 이는 문피아 플랫폼에서의 연재만으로 거둬들였을 수익만을 말한다.


후에 이 작품은 네이버 시리즈와 카카오 페이지에도 연재가 되었고, 또 웹소설에서의 히트를 기반으로 TV 드라마(2022년)와 웹툰이라는 2차 창작물 제작으로까지 연결되었다. 웹툰은 지금도 연재 진행 중에 있다. 원작 소설은 최근 번역 작업을 거쳐 해외 플랫폼에까지 진출했다고 하니 최종적인 수익규모는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라고 봐야 된다. 오리지널 컨텐츠가 2017년 초에 나왔는데도 말이다.


이 정도라면 과거의 만화방이나 대본소 시절의 장르문학 시장규모와 비교하면 어마어마한 체급 차이가 있다는 것이 확인된 셈이다. 아울러 무협이 아닌 현대판타지 장르의 컨텐츠도 제대로 먹히기만 한다면 얼마든지 이런 식의 원소스 멀티유스가 가능하다는 사실을 각인시켜 주었다.


「재벌집 막내아들」은 회귀물이다. 재벌 총수와 그 일가의 뒤치다꺼리를 하다 억울하게 죽은 수행비서가 과거로 회귀하여 회장의 어린 막내 손자로 환생한 다음 그룹의 대권을 손에 쥐기 위해 벌어지는 권력투쟁을 실감 나게 다뤘다. 주인공은 재계 1위 그룹사의 비서 생활을 했기에 죽기 직전까지 최근세 한국경제의 흐름은 물론 그룹과 관련된 모든 비하인드 스토리까지 몽땅 꿰어 차고 있다. 이렇게 완전정보를 장착한 상태에서, 시간은 그룹 설립 초기 시절로 돌아갔고, 주인공의 신분은 노비와 다를 바 없는 수행비서가 아니라 어엿한 진골인 회장의 막내 손자가 되었다. 뭔가 흥미로운 일이 벌어지기에 충분한 조건 아닌가.


이와 같은 사례를 들자면「재벌집 막내아들」 하나로는 부족하다. 재벌집 막내아들 급 또는 그 이상으로 흥행에 성공한 작품으로 「전지적 독자시점」과 「화산귀환」이 있다. 웹소설 플랫폼에서의 판매성적만 놓고 볼 때 내가 기억하는 금메달은 「화산귀환」, 은메달은 「전지적 독자시점」, 동메달이 「재벌집 막내아들」이다. 다만 앞서 얘기했듯 2차 창작물이나 해외진출 등이 현재 진행형이므로 최종적인 금은동은 순위가 바뀔 수도 있다. 사실 세 작품 모두 밀리언 셀러를 넘어선 플래티넘 셀러 급이라 금은동 운운하는 것은 상당히 유치한 얘기다. 세 작품 모두 어마어마한 수의 독자들이 애정하는, 한국이 낳은 탁월한 장르문학 작품들이다.


이번 포스팅의 주제와 관련해서 생각해 볼 때, 「재벌집 막내아들」은 회귀물, 「화산귀환」은 환생물, 「전독시(전지적 독자시점)」은 책 빙의물이다. 화산귀환은 정통무협 장르이고, 나머지 두 작품은 모두 현대판타지다. 한 가지 특이한 것은 「전독시」인데, 이 작품은 남녀 모두를 독자층으로 두고 있는 아주 희귀한 작품이다. 한 가지 이해될 만한 것은 필명 '싱숑'이라는 작가가, 나중에 알고 보니 부부 작가였다는 점이다. 최초에 연재를 문피아에서 시작한 것으로 보아 원래는 남성향을 염두에 뒀던 것 같다. 하지만 연재가 진행되던 중 부인 작가의 필력이 여성층에게 입소문이 퍼지면서 당시 남성 일색이던 문피아에 일시적으로 여성 독자들이 대거 유입되었다는 후일담이 있었다. 여러 가지를 시사하는 에피소드가 되겠지만 눈에 띄는 것은 결국 남성 여성을 불문하고 '폭력'이라는 키워드는 역시 먹힌다는 점이었다. 필자가 보기에「전독시」에 로맨스는 없다. 이 작품은 폭력을 다루고 있고, 로맨스를 덜어낸 대신 우정을 한 스푼 투척했다.


얘기가 자꾸 옆으로 빠진다. 다시 중심을 잡아보자. 우리는 남성향 장르문학의 근저에 '폭력'이 존재한다는 점을 확인하였다. 이후 장르문학 플랫폼의 온라인 전환을 통해 독자층이 급속도로 확대된 지금, 보다 폭넓은 계층의 남성들에게 먹히는 컨텐츠, 이들이 환호하고 열광하는 컨텐츠에 혹시 '폭력'이란 것 말고 또 다른 뭔가가 있었을까? 그렇다. 거기에 대한 후보답안으로 나는 '회·빙·환'을 제시했다.





불확실성 제거로 '지지 않는다'라는 감칠맛과 풍미를 더 했다




「재벌집 막내아들」에서 주인공 진도준은 신규사업이면 사업, 기업인수면 인수, 해외투자면 투자 등 기업경영의 모든 영역에서 환생 전 알고 있던 완전정보를 토대로 상대방을 압도하는 전략전술을 구사한다. 이것은 경쟁상대인 다른 일족들을 무자비하게 몰락시킬 수 있는 필살기가 되었다. 물론 이 과정에 권선징악이라는 밑밥도 당연히 깔린다. 진도준의 부모는 재벌 2세였지만 기업경영보다는 영화에 더 관심이 많았다. 회장인 할아버지와 다른 형제들에게 대놓고 무시당하면서 사는 처지였던지라, 그룹의 대권 경쟁에서는 완전히 비껴 나 있었다. 거기다가 주인공의 전생은 어떠했는가? 억울하게 살해당한 노비급 수행비서! 이 정도면 처절한 복수를 통해 정의사회를 구현해야 될 충분한 명분이 된다. 회귀를 했기에 세상과 그룹에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처음부터 끝까지 모두 다 알고 있다. 즉 '회귀'라는 클리셰는 주인공이 '완전정보' 또는 '불확실성 제거'라는 어마어마한 무기를 장착할 수 있도록 논리적인 개연성을 충족시켜 주었다.


중국 춘추시대의 전략가 손무는 그의 역작 《손자병법》 제3편 모공 편에서 '지피지기 백전불태'(知彼知己 百戰不殆)라고 적었다. 누구나 다 아는 아주 유명한 얘기다.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 번 싸워도 위태롭지 않다는 뜻 아닌가. 여기서 '지피지기'라는 말은 완전정보 또는 불확실성의 제거와 동일한 맥락이다. 즉 잠재적 적과 관련된 모든 제반 정보를 확보하고 있다는 의미다. 이런 경우 백 번을 싸우더라도 절대 위험하지 않다는 말이니, 사실 이 얘기는 승부처에서의 필승을 위한 공격전략이 아니라 리스크 관리 차원의 방어전략에 속한다고 봐야 된다.


적을 향해 폭력을 불사하는 주인공이 적과 주변환경에 대한 모든 정보를 알고 있다면? 그러면 절대 위태롭지 않을 것이다. 정보를 알고 있는 입장에서 판단해 볼 때, 이길 가능성이 아주 높다면 공격적으로 전투를 벌이면 될 것이고, 아무래도 지게 될 확률이 높다면 도망을 가거나 화친을 맺는 등 무승부 작전으로 나가면 된다. 손실을 최소화하고 다음을 기약하는 것이다. 이렇게 완전정보를 확보하고 있다면, 싸움에서 무조건 이긴다는 보장은 없지만, 그렇다고 해서 패배할 일도 없다는 얘기다. 다시 말해 주인공에게는 승리 또는 무승부는 있을지언정, 그 어떤 위기상황에서도 패배란 있을 수 없다. 절대 지지 않는다! 이게 뭔가? 장르문학에서 주인공에게 감정이입된 독자들이 가장 원하고 갈구하는 바가 바로 이런 것이다!


내친김에 한 가지 퀴즈를 내보자, '무조건 이긴다.'와 '절대 지지 않는다.' 이 두 가지에 대하여 사람들은 어느 쪽을 더 선호할까? 말장난이 아니다. 진지하다. 만약 이런 게 궁금하신 독자분들이 있다면 연재를 계속 따라와 주시길 부탁드린다. 조만간 후속연재에서 이 주제가 본격적으로 등장한다. 참고로 이런 이슈를 다루는 분야는 행동경제학 Behavioral Economics이다. 이기고 지는 과정에서 인간의 심리적 문제가 드러난다. 어떤 것을 선호 또는 그에 따른 선택이라는 문제는 경제학의 영역이다. 행동경제학은 심리와 경제 그 둘을 합쳐 보겠다는 대범한 시도였다.


회빙환 도입 이전의 전통무협에서는 방어전략이 아닌 공격전략을 택했다. 권선징악을 밑밥으로 깔아 폭력을 정당화시켜 놓은 상태에서 승부처에서의 필승 확률을 높이는 신선한 공격전략! 그런 컨셉으로 등장한 것들이 바로 기인이사와의 조우, 신병이기의 획득, 무공비급과 영약 같은 아이템들이다. 이에 비해 온라인 무협시대가 전개되면서 날개를 펼친 회빙환 클리셰는 기본적으로 방어전략에 속한다. 절대 지지 않는다. 지지 않으면 결국 나 홀로 서바이벌이 가능하게 되고, 마지막 종착역인 절대강자의 반열에 저항 없이 오를 수 있게 된다.


이렇듯 온라인 무협시대로 넘어오면서부터 전통무협의 필승전략과 회빙환으로 재가공된 방어전략이 절묘하게 밸런스 조절이 이루어진 결과, 독자들 입장에서는 이전 시대의 무협과 비교하여 무협 읽는 재미에 더욱 신선한 감칠맛과 깊은 풍미를 더한 작품들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이는 트렌드가 되었고, 그래서 회빙환 아니면 안 된다는 말까지 나왔다. 다만 트렌드는 트렌드일 뿐. 결국 회빙환 역시 언젠가는 더 새로운 트렌드로 대체될 것이다. 예컨대 초거대 범용 인공지능이라든지 우주론 분야의 새로운 아이디어들, 휴머노이드 로보틱스, 양자역학 같은 소재들은 언젠가 회빙환의 아성을 무너뜨릴 수 있는 잠재력이 있다고 본다. 아직은 아니지만.




결국 알파 메일이 되는 얘긴데, 중요한 건 속도야!




Alpha Male, 지배적 위치에 있는 수컷 고릴라



지금까지 우리는 '폭력'에 '회빙환'을 접목시킨 클리셰를 통해, 장르문학이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거대한 신세계를 열어가게 된 과정과 그 의미를 살펴보았다. 이제 다시 (1) 편 철학교수님의 문제의식으로 돌아가 보자. 과연 우리는 '사람들은 무협지를 왜 읽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들을 모두 살펴본 것일까?


사람들에겐 분명 '폭력'을 갈구하는 욕망이 있는 것 같다. '폭력성'이란 프로이트식으로 말하자면 원초적 쾌락을 추구하는 '원초아·이드·Id'의 영역에 존재한다. 현실의 세계에서 사람들은 '자아·에고·Ego'의 통제를 통해 이드의 발현을 자제시킴으로써 우리 사회 구성원들 사이의 정상적인 계약관계를 유지한다. 하지만 본래 이 욕망이란 놈은 어떻게든 해소되지 않으면 스트레스를 유발하는 법. 그렇다고 현실세계에서 내키는 대로 폭력을 휘두를 수도 없고.. 이때 해방구 역할을 해 준 것이 웹소설과 같은 판타지 장르문학이다. 이런 시각에서 볼 때 MMORPG 게임이나 이종격투기와 같은 것들도 비슷한 기능을 한다고 본다.


자, 그렇다면 마지막으로 남은 한 가지 특징을 하나 더 생각해 보자. 폭력을 휘둘러서 권력의 정점에 올라서는 것은, 고릴라 사회에서 새로운 알파 메일로 등극하는 것과 비슷해 보인다. 결국 모든 폭력 컨텐츠들은 하나하나의 승부처를 거쳐 절대강자의 지위 - 무협에서 쓰는 흔한 표현으로는 '천하제일검', '무림지존', '강호일통'과 같은 위치 - 에 오르는 과정을 묘사한다. 그렇다면 약자가 이런저런 폭력을 휘둘러 강자의 자리에 등극하는 스토리라면, 그런 작품들은 모두 히트를 칠 수 있을까? 설마 그럴 리는 없을 것이다. 바로 여기에 우리가 살펴봐야 될 마지막 포인트가 있다. 바로 '성장 속도'라는 녀석이다.


과거에 내가 보았던 웹소설 분석 유튜브 영상 어딘 가에서 '완성형 캐릭터'와 '성장형 캐릭터'라는 개념이 언급되는 것을 본 적이 있다. 무협소설에는 '고수(高手)'라는 존재가 등장한다. 강호 제일의 고수는 무협의 주인공이자 과정이요 지향점이다. 내 기억에 전통무협 시절에는 대부분 성장형 캐릭터가 등장했다. 성장형 캐릭터는 처음엔 약자로 시작한다. 더 약하고 더 억울할수록 더 잘 먹힌다. 그다음 여러 가지 득템을 거쳐 힘을 얻게 되고, 나중에 결국 천하제일이 되는 스토리다. 이에 비해 완성형 캐릭터는 주인공이 소설에 처음 등장할 때 이미 천하제일의 능력을 확보한 상태에서 스토리가 전개된다. 예컨대 마교지존 천마가 본신의 힘을 잃지 않은 상태에서 환생하는 것이다. 이런 경우에는 개인 자체의 성장은 있을 수 없다. 그래서 도모하는 일의 성장을 잘 엮어나가는 것이 작가의 역량이다. 회빙환 클리셰는 이런 완성형 캐릭터가 자연스럽게 등장할 수 있도록 논리적 개연성을 부여해 주었다.


여기서 독자들의 흥미를 돋우는 요소는 속도다. 성장형 캐릭터라면 힘이 강해지는 속도, 완성형 캐릭터라면 일을 도모하는 속도가 어마어마하게 중요하다. 이미 무공의 정점에 오른 정파와 사파의 거두들이 펼치는 일생일대의 접전도 권위적인 재미를 부여하지만, 성장형 캐릭터 꼬마 아이가 갓 무공을 배우기 시작할 때 중원의 시골 저잣거리에서 동네 양아치에게 괴롭힘 당하며 실컷 얻어터지다가, 사부가 알려준 평범한 무공 하나를 기억해 낸 다음 반전을 만들어내면서 승리를 낚아채는 것도 작가가 흥미롭게만 묘사한다면 그 재미 또한 심장을 쫄깃쫄깃하게 만든다.


나는 처음에 속도라는 것이 도대체 왜 중요한지 알 수가 없었다. 우리나라 빨리빨리 문화의 잔재일까? 아니면 그저 스낵컬처로 소비되는 장르문학 같은 것은 느릿느릿하면 손님 떨어지니까 그래서 그런 건가? 영화도 보면, 예술영화 같은 것은 엄청 느리고 재미도 없고 그런데 비해 할리우드 마블시리즈 같은 것들은 전개도 시원시원하고 스토리도 쭉쭉 뻗어나가지 않나. 하지만 웹소설의 찐 독자였던 내 입장에서 암만 봐도 그런 비즈니스적인 것들은 정답이 되지 않았다. 속도와 관련해서는 결국 내가 찾아낸 다른 이유는 바로 '상대평가'라는 것이었다. 웹소설에서의 속도란 빠른 전개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잠재적 적 또는 경쟁자와 비교했을 때 내 힘의 성장속도가 더 빨라야 된다는 뜻이다. 그래야 사이다가 터진다.


위에 언급하지 않은 또 다른 현대판타지 히트작 중에 「나 혼자만 레벨업」이란 작품이 있다. 이 작품은 아포칼립스 헌터물인데, 장르는 중요하지 않다. 이 작품 역시 2차 창작 단계로 올라서 있는 메가히트작이다. 이 작품은 제목부터 상대평가를 암시하고 있다. 이 작품에는 헌터라고 하는 각성자들이 등장한다. 일반인들 중에서 어떤 계기로 각성이 이루어지면 몬스터를 처치할 수 있는 특별한 힘을 갖게 되는데, 이 힘은 각성할 당시에 정해진 수준으로 고정된다. 더 성장하지 않는다. 이런 배경 하에서 주인공만 특이하게도 계속 레벨업 할 수 있는 힘을 각성하는 것이 이 소설의 키 포인트다. 자 이제 논리가 이해될 것이다. 「나 혼자만 레벨업」 이 작품 역시 폭력을 소재로 했고, 회빙환 클리셰를 사용하지는 않았지만 다른 각성자들의 역량은 고정시킨 상태에서 나만 성장하는 방식으로 클리셰를 비틀었다. 그랬더니 역시나 독자들에게 제대로 먹혔다.


철학교수님을 등장시켜 시작한 미니 연재를 이제 정리할 시간이다. 인간 무의식의 저 밑바닥에는 폭력이란 것이 존재한다. 현실에서 폭력성을 충족시킬 수 있는 방법은 없다. 해방구로 등장한 것이 장르문학이나 게임 같은 것들이다. 시대가 바뀌면서 폭력에도 트렌드가 생겼다. 지금의 웹소설 같으면 회빙환 클리셰를 통한 스타일리시한 폭력이다. 하지만 자세히 보니 폭력을 통해 사람들이 갈망하는 것은 결국 알파 메일이 되는 것인데, 문제는 남들보다 먼저 그리고 빨리 그 자리를 차지해야 속이 시원하다는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빨리'이기도 하지만 '남들보다'가 어쩌면 더 핵심에 근접한 개념일 수도 있다. 다음 여정에서는 '남들보다'라는 녀석과 그 친구들을 파고들고자 한다. 철학교수님의 미니연재는 여기까지다. 이제 메모를 다시 정리해야겠다.




<다음편 예고 / 매주 토요일> '출근길, 사이코 사피엔스의 꼬리를 밟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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