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바 오딧세아
동양의 오행과 서양의 5원소설
오행과 자주 비교되는 고대 그리스 서양철학의 전통 중에 5원소설(五元素說, Five Elements Theory)이란 것이 있다. 탈레스로부터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로 이어지는 서양 자연철학의 흐름이다. 별 것 아니다. 이 세계를 구성하는 원소가 지상에는 물, 공기, 불, 흙의 네 가지가 있고 천상계에는 아이테르(aether)라고 하는 다섯 번째 원소가 있다고 보았다. 물론 현재 인류가 발견한 원소 - 수소, 헬륨, 리튬, 베릴리움으로 이어지는 그 원소 - 는 100여 가지가 넘는다.
이에 비해 5원소설은 달랑 다섯 가지를 제시했다. 심지어 그중 아이테르는 천상계의 원소로서 물리적인 실체도 없다. 그래서 5원소설은 틀렸다고.. 고대의 한계라고 대부분 무시한다. 하지만 이런 생각은 대단히 섭섭한 발상이다. 5원소설은 물리적인 구성요소를 찾은 것이 아니다. 물질계의 속성을 분류한 것이다. 플라톤을 무시하지 말자.
챗GPT는 5원소설이 '동양의 오행과 어느 정도 유사한 면이 있지만 직접적으로 연결되지는 않는다'라고 했다. 이와 같은 챗GPT의 답변은 둘 중 하나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거나, 둘 다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에 나온 답변이라 생각된다. 하지만 필자의 의견은 다르다. 5원소설과 오행은 거의 동일한 사상이다.
왜냐하면 5원소설은 물질계의 화학적인 실체를 규명한 것이 아니라 물리적인 속성을 분류한 것이고, 동양의 오행 역시 이원론적인 음양을 다섯 가지의 속성으로 세분화시킨 것이기 때문에 필자의 생각으로는 거의 동일하다. 동일하다고 판단한 강력한 근거는 또 파동 얘기해서 이제는 죄송하지만.. 파동 때문이다. 속성을 파동으로 이해했다.
오행의 구조
먼저 오행을 살펴보자. 오행은 음양을 구체화시킨 것이다. 상보적이지만 대립되는 두 가지의 성질을 음양으로 놓고, 그 음과 양을 한 단계(depth) 더 확장시킨 것이 오행이다. 오행의 기본적인 도식은 아래 그림과 같다. 가장 일반적인 생각이다.
위 도식에서는 동양의 오행을 구성하는 다섯 가지 요소인 목화토금수가 배치되어 있다. 녹색 화살표를 통해 원과 파동에서 보는 상생(相生)의 순환구조를 표현했고 빨간색 화살표는 대립적인 상극(相剋) 관계를 나타낸다. 여기서 한 가지 강조하고 싶은 이야기는 위의 구조의 안정성이다. 세상을 이루고 있는 다섯 가지의 요소들이 서로 견제와 균형 그리고 순환 측면에서 붕괴되지 않는 완벽한 균형을 이루고 있다.
물리학에서 이야기하는 원자 구조의 안정성, 경제학에서 얘기하는 시장경제의 균형 등 모두 똑같은 얘기인데, 잘 짜 맞춰져 있는 체계는 붕괴되지 않는다. 붕괴되지 않는 것이 왜 중요하냐면 그것이 지속가능성을 보장해 주기 때문이다.
오행사상은 생각 외로 아주 정교한 구조를 가진다. 상생상극에 대하여 살짝만 살펴보자. 녹색의 목은 빨간색 화를 생(生)한다. 그 뜻은 목 자신을 죽여서 화를 살린다는 뜻이다. 봄이 지나가면 여름이 온다. 봄은 희생되고 여름이 살아난다. 혹시 여기의 상생을 '시너지효과'로 생각하는 분들이 있는데, 잘못 이해하신 거다. 봄과 여름은 공존하지 않는다.
시계방향으로 진행되는 화살표는 이런 식으로 내가 죽어서 그다음으로 바톤 터치를 해 주는(生) 구조로 되어 있다. 또 검은색 수는 녹색 목을 생한다. 목 입장에서는 생이 두 가지로 구분된다. 영어 공부할 때 능동태 수동태 기억날 것이다. 목 입장에서는 내가 죽어 화를 생해 준 것 하나, 또 수가 죽어 나를 생해 준 것 하나, 해서 두 가지의 생이 있다. 이 관계를 가족과 비교해서 생각하면, 목에게 화는 자식이다. 나를 죽여 자식을 살린다. 목에게 수는 어미다. 어미가 죽어 나를 살린다.
이젠 상극(相剋)이다. 어감 때문에 상극을 무슨 서로 싸우고 난리치는 것으로 오해하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하지만 그거 아니다. 생이란 것이 나를 죽여서 기운을 옆으로 넘겨주는 것이었다면, 극(克)이란 녀석은 상대방이 갖고 있는 것을 내가 뺏아오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 상생과 상극에는 음양의 상보적이고 대립적인 관점이 녹아있다. 녹색 목은 갈색 토를 극(克)한다. 목은 토에게서 기운을 뺏아온다. 반대로 흰색 금은 녹색 목을 극한다. 금은 목에게서 기운을 빼앗으려 한다. 이 관계를 사회생활에 대비하면 목에게 토는 재물(財)이다. 목은 토를 갖고 싶어 한다. 목에게 금은 회사(官)다. 회사는 나의 기운을 빼앗으려고 한다.
관계분석과 물상대응
위와 같이 오행은 다섯 가지 기운들 사이의 '관계'라는 것을 분석하는 도구가 된다. 이런 것은 서양에 없다. 서양 통계학에서 물론 상관분석이라는 것이 있다. 그런데 이건 원인과 결과의 관계를 분석하는 도구이다. 예컨대 주식시장에 종합주가지수(KOSPI Index)라는 것이 있다. 코스피 지수를 구성하는 개별종목은 삼성전자에서부터 중소형주에 이르기까지 코스닥까지 합치면 약 2천 개가 된다. 삼성전자 주가와 종합주가지수와의 관계, 이것을 통계적인 숫자로 표현한 것을 우리는 상관계수라고 부른다.
이거랑 위에서 얘기한 오행의 상생상극이 무슨 상관인가. 상관계수는 단어에 '관계'라는 의미가 포함되어 있지만 그건 원인과 결과의 관계이지 원인들끼리의 관계를 나타내지는 않는다. 또 굳이 파고들자면 개별종목들 간의 공분산(covariance)이라는 관계가 있는데, 그나마 이건 좀 비슷하다. 하지만 이건 확장성이 없다.
그렇다면 동양의 오행론으로 관계분석을 전방위적으로 해 보려면 뭐가 더 필요할까? 아까 윗 단락에서 부모와 자식, 회사와 재물 이야기를 잠깐 언급했다. 이런 식으로 세상의 사물과 현살들을 오행으로 분류해서 이건 목이다, 이건 화다, 이런 식으로 딱지를 하나씩 붙여놓고 바라보면 비로소 관계가 눈에 보일 수 있다. 이것을 오행론에서는 '물상대응'이라고 한다. 우리의 일상에 목화토금수의 딱지를 하나씩 붙이는 작업이다. 물론 옛사람들이 이미 다 해 놓았다. 아주 간단히만 살펴보자.
목 - 봄 - 동쪽 - 바람
화 - 여름 - 남쪽 - 더위
토 - 늦여름 - 중앙 - 습함
금 - 가을 - 서쪽 - 건조함
수 - 겨울 - 북쪽 - 추위
이런 식인데, 더 자세히 들어가면 자연계의 색깔, 맛, 기후, 생장과 같은 것부터 사람의 오장, 육부, 감정과 같은 것들에도 모두 딱지가 붙어 있다. 딱지만 붙이면 위에서 보았던 생극제화 관계를 분석할 수 있다. 이런 아이디어를 가지고 사람의 희로애락에 오행을 적용한 것이 사주명리이며, 사람의 외모에 적용한 것이 관상이고, 산 자와 죽은 자의 주거에 적용한 것이 풍수가 된다.
다만 이러한 물상대응에는 서양식의 인과관계 논리를 적용해서 판단하기가 만만치 않다. 동양학에 비교적 우호적인 사람이라면 방위나 계절과 같은 것에 물상대응시키는 것까지는 납득할 수 있겠지만, 사람의 감정이라든지 신체의 장기에다가도 목화토금수를 갖다 붙이는 것은 선뜻 이해하기 어렵다. 필자 역시 마찬가지였다. 미신 논란이 끊이지 않는 이유가 바로 이 대목 때문이다. 이제 이걸 해결해야 된다.
오행과 파동의 속성
결국 파동을 다시 얘기할 수밖에 없다. 근거 없는 물상대응은 필자 역시도 납득할 수 없다. 그냥 좋은 게 좋은 걸로 넘어갈 수는 없다. 필자의 카오모스 연재 8화에 사주 워크샵 장면이 있다. 그때 썼던 그림을 몇 개만 다시 펼쳐보자.
이건 1년의 기온 분포를 1월부터 12월까지 표시한 그림이다. 봄 여름 가을 겨울이 순차적으로 진행되면서 기온은 점점 올라갔다가 다시 내려온다. 앞서 물상대응에서 목은 봄에 해당된다. 봄 오른쪽으로는 화토금수가 차례대로 위치할 것이다. 지금 이 곡선은 수학적으로는 삼각함수 그래프가 된다. 삼각함수는 파동함수다.
자 여기서 위 삼각함수를 미분해서 표현하면? 아래와 같은 그래프가 나온다. 역시 삼각함수다. 삼각함수 미분하면 또 삼각함수다. 미분한다는 뜻은 가속도를 따져보겠다는 뜻이다. 위 그래프에서 목(봄) 옆에는 화(여름)이 있다. 봄에 기온이 치고 올라가는 속도는 여름에 기온이 올라가는 속도보다 훨씬 빠르다. 물론 여름의 절대기온 자체는 봄보다 높다. 하지만 속도는 느리다.
이 두 가지 생각을 조합해서 표를 만들면 아래와 같이 나타낼 수 있다.
목은 기온이 올라가는데 속도도 빠르다. 화는 기온이 올라가고는 있지만 가속도는 줄어들고 있다. 덜 오르는 것이다. 왜냐하면 서서히 기온하락을 준비해야 가을을 맞이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가을은 봄과 정반대다 기온이 가파르게 내려간다. 겨울은 여름과 정반대다. 이런 식으로 상보적 대립적 그리고 순환적인 균형관계가 유지된다. 목화금수의 속성을 위와 같이 판단하면 물상대응의 명확한 기준이 마련된다.
이런 인식이 훨씬 합리적이다. 다만 이러한 아이디어는 일반적인 명리학 책에서는 찾아볼 수 없다. 이렇게 설명하지 않는다. 이런 설명방식은 필자 혼자만의 아이디어는 아니겠지만 거의 들어볼 수 없을 것이다. 필자도 이건 누군가에게 배워서 얘기하는 것이 아니다. 혼자만의 자율학습 결과물이다.
그런데, 왜 토가 없지? 토는 현직 명리학자들도 설명하기를 매우 꺼리는 항목이다. 위에서 토의 계절을 늦여름으로 물상대응해 놓았는데, 좀 억지스럽지 않나? 이렇듯 토의 논리구조를 설명하는 것은 절대 쉽지 않다.
토(土)는 4 요인 모델의 잔차항
토를 설명하는 것이 오늘의 마지막이고 이 대목에서 나는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5원소설을 소환한다. 나는 오늘 연재 편을 작성하기 위해 오랜만에 5원소설에 대해 다시 생각을 정리했다. 그렇지만 하도 오래되다 보니 좀 가물가물해서 챗GPT에게 한번 쭉 설명해 보라고 지시했다. 그런데 깜짝 놀랄만한 그림이 하나 나왔다. 아래 표를 보시라.
필자가 직접 만든 저 위의 표와 지금 바로 위의 이 표는, 물론 다르지만 사유구조의 맥락이 동일하다. 고유성질과 방향성을 논한 것은 필자의 파동적 해석인 운동방향과 속도 논리와 일맥상통한다. 그런데 이 표에 맨 아래 위치하고 있는 '아이테르'. 이 녀석은 물질계의 원소가 아니고 천상계의 원소라고 했다. 누가? 플라톤이!
오행의 토와 아이테르는 맥락상 동일한 두 녀석이다. 왜 그럴까? 오행론은 사실 5 요인 모델이 아니라 4 요인 모델이기 때문이다.
필자의 카오모스 연재 9화에는 연속과 이산이라는 개념이 등장한다. 음양과 오행이란 것은 자연의 속성을 말한다. 자연의 흐름은 연속이라 끊기지 않는다. 하지만 사람이 뭔가 좀 분석하고 만져보고 개념정립을 하려면 그 유구한 흐름을 탁탁 끊어서 구분을 해야 된다. 그래야지 이리 볶고 저리 볶고 할 수가 있다.
그런 면에서 동양은 자연의 속성을 4가지로 구분했다. 태극에서 음과 양의 양의가 나오고 그것이 또 한 차례 더 분기해서 4갈래로 쪼개지는 흐름이다. 그래서 동서남북을 목화금수로 배치하고 토는 따로 갈 자리가 없으니 중앙에다 갖다 놨다. 서양에서는 좀 다른 맥락이지만 지상(현상계)에 4요소가 있다고 보았고 천상에 다른 하나가 더 있다고 보았다.
이 대목에서 중요한 것 하나를 챙겨야 된다. 연속(continuous)적인 흐름을 이산(discrete)으로 분절시키면 항상 딱 떨어지지 않는 나머지가 생긴다. 예컨대 요즘 인기 있는 MBTI를 한번 살펴보자. 사람의 성격을 4가지 유형으로 구분한다. 즉 측정하기 어려운 마음의 흐름이란 것을 굳이 네 가지로 쪼개 본 것이다. 하지만 다들 보았겠지만 점수가 애매하게 나오는 경우도 많다. E나 I 성향의 점수가 만약 10점도 안 된다면? 그 사람은 E인가 I인가? 정답은 그 사람에게 있어서 E나 I는 별로 유니크하지 않다는 뜻이다. 그런게 오차항이다. 동양에서는 그런 오차항들을 '토'라는 항목으로 감싸 안은 것이다.
이런 식으로 이도저도 아닌 것이 많은데. 왜 많을까? 그것은 복잡한 이 세상을 단지 4가지의 요인만으로 설명하다보니 딱 맞아떨어지지 않는 것들이 항상 존재하기 때문이다. 정리하자면 동양의 오행론이나 서양의 5원소설이나 본질은 4 요인 모델이다. 현대 통계학에 다변량 통계분석이란 것이 있다. 모델의 수식을 보면 요인1, 요인2.. 쭉쭉 가다가 맨 마지막에는 잔차항(오차항, 시그마)라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토'와 아이테르는 바로 그놈 시그마이다.
4 요인 모델과 잔차항에 대해서 개념을 이해했다면 동양의 술수학에 대해 훨씬 깊이 있는 이해와 미신과 실용의 경계가 어딘지도, 무엇을 버려야 되고 무엇을 챙겨야 되는지.. 충분히 자가발전해서 가늠할 수 있을 것이다.
결국 오일러에서 시작하여 여기까지 왔다. 생각보다 많이 길어졌다. 이 주제는 이번 주로 끝을 내고, 다음 주부터는 쉽지만 중요한 주제로 갈 것이다. 인간의 욕망에 관하여 사주와 MBTI의 관계 그리고 매슬로우의 욕구 5단계설을 살펴볼 것이다. 사실 오늘 오행만 설명했지 사주명리는 하나도 언급하지 못했다. 동서양이 살펴보는 성격학, 그리고 심리학과 경영학의 대가 애브라함 매슬로우의 통찰을 버무려 볼 것이다. 머리 아픈 파동 얘기보다는 인간학의 진면목을 살피는 계기가 될 것으로 생각한다.
(다음 편에서 계속 / 매주 토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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