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바 오딧세아
자, 이제 오일러와 태극 미니연재의 끝자락이다. 오늘은 동양철학의 정수인 음양오행에서 오행(五行)을 살펴본다. 필자가 자꾸 추상적으로 나가니까 독자분들이 또 불편해하실까 봐 겁이 난다. 그래서 조금 접근하기 쉬운 것부터 먼저 살펴보자. 흔히들 한의학, 사주명리, 관상, 풍수라고 하는 동양의 술수학은 오행을 그 근본사상으로 한다. 한의학은 양지로 나왔고, 나머지들은 여전히 음지에 있다. 우리 현대인들이 느끼는 술수학이란 단어에는 아쉽게도 '미신적인' 또는 '구시대적인'이라는 뉘앙스가 묻어있다. 하지만 거기에 매몰되면 안 된다. 조선시대의 경우 이러한 술수학의 전문가들은 과거를 봐서 당당히 조정에 채용된 중간급 관리들이었다. 아주 어려운 시험이었다고 한다.
동양의 술수학
동양의 점술은 꽤 다양하다. 주역점도 있고 사주명리, 풍수, 관상까지 목적에 따라 다양한 형태가 있다. 사실 이쪽 학계에서는 이것들을 점술이라 부르지 않고 술수학이라고 한다. 전통적인 술수학 중에서 임상적 근거가 뒷받침되는 동양의학은 진즉에 술수학의 영역에서 벗어나 제도권으로 편입되었다. 물론 서양의학계에서는 동양의 의술을 대체의학이라 부르며 여전히 과학으로는 인정하지 않는 분위기이지만, 적어도 미신이라 여기지는 않는 것 같다. 하지만 나머지 동양 술수학의 분과학문들은 객관적으로 볼 때 아직은 미신의 영역에 머물러 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한국의 제도권 종합대학에서는 동양 술수학을 정식 커리큘럼으로 취급하지 않는다. 물론 동양철학이라는 전공이 있다. 하지만 그쪽에서는 유교 도교의 철학적 담론만 다룰 뿐 정작 술수학 분야는 경원시한다는 느낌이다. 지난주 살펴봤던 태극도설에서 딱 음양론까지가 그들의 관심사다. 음양론은 형이상학이다. 철학의 영역이다. 하지만 오행으로 내려오는 순간 형이하학이고 실용학문이 된다. 그런데 현대의 실용학문은 서양과학이 지배하는 세상 아닌가. 미신적인 동양의 실용학문이 설 자리가 없다. 그래서인지 술수학을 정식 커리큘럼으로 채택한 종합대학은 한국에 단 두 군데, 그것도 사이버대학이다. 그게 아닌데.. 아쉬움이 크다. 또 한편으로 보면 한의학을 제외하고 나머지 사주명리, 관상, 풍수 등은 서양의 심리학과 뭔가 겹치는 것 같기도 하다. 사람의 운명을 고민한다거나 뭐 그런 것들이 심리적인 문제이다 보니 그냥 심리학을 떠올리는 것 같은데. 그.러.나.
서양 심리학 Vs. 동양 술수학
필자가 술수학을 소개하기로 마음먹은 것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첫 번째는 동양 술수학이 다루는 분야가 너무나도 소셜 social 하다는 점이다. 서양의 상담심리학에서는 어떤 사람을 분석할 때 정상적인 심리적 발달과정이 잘 진행되고 있는지, 어딘가에서 이상현상이 발생하지는 않았는지, 만일 그렇다면 어떤 솔루션이 있는지와 같은 주제들을 다룬다. 한마디로 개인 차원의 담론이라는 얘기다.
상담심리학의 주된 관심은 정상적으로 사회생활 잘하고 있는 사람들이 아니다. 그런 사람들에게는 관심이 없다. 뭔가 문제가 발생하여 심리적 이상이 발생한, 예컨대 우울증, PTSD, 공황장애 등으로 힘들어하는 사람들을 정상적인 일상으로 복귀하게끔 도와주자는 것이 본래의 취지이다. 서양 심리학이 본격적으로 발달하게 된 계기가 2차 세계대전 때 참전군인들의 심리적 내상 회복을 도와주기 위해서라는 점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에 비해 동양 술수학에서는 개인의 심리적 이상여부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다. 그 대신 정상인의 욕망을 다룬다. 어떤 개인의 사회적 담론, 즉 인생사에 있어서 전반적인 길흉화복이 어떻게 전개될 지에 대한 예측 문제를 다룬다. 나의 현재 심리상태가 정상이든 아니든 그것은 일단 논외로 하고, 향후 내 인생의 중대한 사건들이 어떻게 전개될까 하는 문제는 누구나 관심을 가지는 아주 예민한 주제다. 이성문제일 수도 있고, 진학, 승진, 투자 등 보통의 사람들이 일상적으로 맞닥뜨리는 실질적인 사건들을 다룬다. 그래서 소셜 하다고 표현했다. 하지만 서양 심리학에서 이런 것들을 다루지 않는다. 완전히 다르지 않은가?
이 대목에서 동양 술수학에 '예측'이란 것이 등장한다. 미래는 불확실한데 예측을 한다? 무슨 근거로? 사실 미신 논란은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근거 없이 또는 인과관계가 없는 것을 근거로 삼아 단정적으로 미래를 예측한다면 미신이라는 비판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현장에서 일하는 많은 술사들은 전통적인 술수학의 통계적 경험치들을 근거라고 주장하지만, 필자가 보건대 그것들은 술사들의 개인적 경험의 영역일 뿐 표준화되고 구조화된 통계라고 보기는 어렵다. 그런 것은 존재하지도 않을뿐더러 제시하는 사람도 없다. 미신 논란은 그렇게 해서는 돌파할 수가 없다. 그.러.나.
예측이 아닌 시뮬레이션이라면?
필자가 술수학에 여전히 관심을 가지는 두 번째 이유는 무엇일까? 합리적 근거가 없다고 해서 술수학이 과연 미신일 뿐이고 아무 쓸모없는 무용지물일까? 술수학에 있어서 미래 불확실성에 대한 예측의 근거는 아무리 살펴봐도 없거나 부실하다. 합리적 이성을 갖춘 사람이라면 받아들이기 어렵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회적으로 멀쩡한 사람들조차 가끔씩 비용을 지불해 가면서 술수가를 찾는다. 왜일까? 그것은 불안하기 때문이다. 마음의 위안을 얻기 위해서라는 얘기다.
정상적인 술수가들 역시 미래예측에 대한 근거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때문에 그 부분을 강변하기보다는 '활인(活人)'이라는 개념을 제시하면서 살짝 피해 나간다. 미래를 맞추든 못 맞추든 그것보다는 지금 현재 심리적 압박을 받고 있는 사람들에게 예측이 아닌 시뮬레이션 형태의 조언을 제공함으로써 조금이나마 걱정과 염려를 덜어주겠다는 취지다.
시뮬레이션이라.. 확실치 않은 무언가를 그래도 한번 가늠해 보는 것이다. 이건 현대과학의 각 분야에서 자주 활용되는 일반적인 방법론이다. 학문별로 차이가 있겠지만 기본적으로 불확실한 사건에 대해 현재 알고 있는 모든 정보를 총동원하여 인과관계를 살펴 미래를 추정하는 기법이다. 주로 자연과학을 비롯한 이공계 학문들에서 사용하는데, 사회과학 쪽에서는 경영경제 분야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예컨대 투자론의 경우 몬테카를로 시뮬레이션이라는 것이 있다. 주식시장 또는 도박장에서의 통계 데이터를 기초로 삼아 평균과 표준편차를 구하고 가상의 투자를 수천수만 번 반복한 다음 성공한 횟수와 실패한 횟수가 확률적으로 얼마나 되는지를 살펴보는 것이다. 시뮬레이션이라는 방법론의 가장 큰 특징은 단정적인 예측이 아니라 어떤 사건이 발생할 가능성을 확률로 제시한다는 점이다.
하지만 현대과학은 인간의 길흉화복을 시뮬레이션할 수 없다. 통계 데이터가 없기 때문이다. 왜 없을까? 정작 동양의 술수가들은 그들의 주장이 수천 년의 경험치가 통계적으로 축적된 결과라고 주장하는데 말이다. 이 대목이 중요하다. 소셜한 사건들, 즉 인생의 성공과 실패 또는 행복과 불행이란 것들에 대해 통계치가 과연 물리적으로 존재할 수 있나 하는 의문이 있다. 추상적인 얘기인가? 아니다. 간단한 얘기다.
우리는 과연 누군가의 인생을 성공인지 실패인지 단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을까? 아직 젊은 누군가의 불확실한 장래에 관한 얘기가 아니다. 당신이 알고 있는 사람들 중 최근 사망한 누군가를 한 명 떠올려 보자. 그분의 인생은 성공인가 실패인가? 과연 한마디로 얘기할 수 있나? 말은 쉽지만 성공과 실패를 기계적으로 정의한다는 것은 절대로 쉽지 않다. 성공과 실패의 기준이 없기 때문이다.
주지하다시피 현대과학은 정의되지 않은 것을 기술할 수 없다. 성공과 실패 같은 것은 기계적으로 정의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따라서 몬테카를로 시뮬레이션과 같은 방법으로는 소셜한 사건들을 다룰 수 없다. 바로 이 대목에서 동양 술수학의 원초적인 날것 그대로의 가치가 드러난다.
비록 여전히 근거가 부족하지만 그리고 정교하지도 않고 확률을 제시하지도 못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셜한 사건에 대해 최소한의 정성적인 시뮬레이션을 할 수 있는 방법론은 현재로서는 술수학 밖에 없다. 물론 미신적으로 점술 서비스를 운영하고 있는 일부 몰지각한 술수가들을 옹호할 생각은 전혀 없다. 술수학이라는 것이 갖고 있는 잠재적인 가능성을 아직은 포기하고 싶지 않을 뿐이다.
(다음 편에서 계속 / 매주 토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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