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오모스 프리퀄
사주카페 알바구함 (단, 수학 전공자)
여인모 노인은 혜화동 대학로 인근에서 타로점을 봐주며 근근이 연명하는 처지였다. 주 고객은 이십 대 초중반의 여대생들. 보통의 경우 그들의 관심사는 이성 교제다. 하지만 타로점만으로는 돈이 되지 않았다. 10분당 상담료 자체가 푼돈에 불과했고 방학 때는 사실상 영업이 중단되니 생계유지 수단으로는 마땅치 않았다.
정작 여 노인을 먹여 살리는 것은 따로 있었다. 타로가 아닌 주역 점이나 사주 명리 상담이다. 한 철에 한두 번 될까 말까 한 가끔이지만, 기사가 모는 검은색 대형 세단을 타고 유력 정치인이나 재벌가 사람들이 찾아온다. 물론 본인이 직접 오는 경우는 거의 없고 대부분 사모나 비서들이 방문한다.
이건 단가가 좀 쎄다. 따로 가격표를 만들어 둔 것은 아니지만, 이런 부류의 고객님들은 아무 말 안 해도 거액의 복채를 쾌척한다. 웬만큼 돈을 내지 않으면 오히려 재수 옴 붙을 거라는 근거 없는 신념을 갖고 있는 것 같았다. 여 노인 입장에서는 나쁘지 않았다. 이런 건들이 철 따라 한 번씩만 생겨도 구순을 바라보는 여 노인의 얄팍한 지갑은 충분히 두둑해진다.
특별할 것도 없는 여 노인의 정체에 대해서 내가 제대로 알게 된 것은 한참이나 시간이 지난 뒤의 일이었다. 사실 여 노인, 정확히 말해서 여 교수는 젊은 시절 프랙탈 파동함수 이론으로 국제 수학계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장래가 촉망되는 천재 교수였다.
비록 지금 그의 처지가 고상한 학자의 모습에서는 많이 벗어나 있지만, 정작 그는 개의치 않았다. 여 노인은 무슨 일이 있었는지 한참 잘 나가던 시절 어느 순간 갑자기 은퇴를 선언했다. 이후 여인모라는 이름으로 개명을 한 다음 바로 성형수술까지 저질러 버렸으니. 이제 그를 알아보는 사람은 거의 없다. 분명 뭔가 큰일이 있었을 테지만, 당시의 정확한 사정에 대해서는 나도 아직 들은 것이 많지 않다.
비가 오는 탓인지 늘 시끌벅적하던 거리가 한산하다. 본능적으로 손님이 없을 거라 직감한 여 노인은 갑자기 핸드폰을 만지작거리기 시작했다. 시니어용 큼지막한 폰트를 설치해서 그런지 옆에서도 화면이 훤하게 잘 들여다보인다.
[구인] 타로 & 사주 상담보조 알바생 모집
- 자격 : 수학 전공자 (머신러닝 포함)
- 급여 : 최저임금 2배 이상
- 근무시간 : 협의
<청춘 타로 & 사주>
소극장 거리 / 010-0000-XXXX”
손님이 없어서 수입도 시원찮은데 알바를 뽑는다? 게다가 자격이 수학 전공자? 여 노인은 인근 몇 군데 대학의 커뮤니티 게시판에 구인 광고를 올렸다.
여 노인이 폰을 만지작거리며 광고를 올리고 있던 그 시간, 나는 학교 구내식당에서 혼밥을 하며 게시판을 서치하고 있었다. 알바 모집 광고를 하나 발견했는데, 자격요건이 수학 전공자에 머신러닝 가능자란다. 흠. 이거 재밌네. 사주카페에서 알바 모집하는데 웬 수학? 원래 알바할 생각은 없었지만, 살짝 호기심이 발동했다. 인간의 심리적 본능 중에 제일 참기 힘든 것이 바로 호기심이란 얘기를 유명 베스트셀러 어딘가에서 본 적이 있었다. 지도교수님 조교 생활하면서 머신러닝이야 질릴 정도로 했던 일이고, 최저임금 2배 이상이란 조건도 마음에 들었다. 일단 전화를 해 보기로 했다.
- 뚜우 뚜우
“크흠. 감사합니다. 청춘입니다.”
헛기침 소리만으로도 나이가 짐작되는 늙수그레한 목소리. 그것이 나와 여노인의 첫 만남이었다.
자네, 카를 융을 이해할 수 있겠나?
인도산 인센스 스틱에서 피어난 마살라 향이 실내를 은은하게 채우고 있다. 여노인의 방에는 서양인의 초상화가 하나 걸려있다. 세피아 색깔을 입힌 모노톤의 흉상 포트레이트. 그림의 주인공은 여 노인만큼이나 나이 든 할아버지였고 학자풍의 금속 테 안경을 썼다. 몸보다는 머리를 쓰는 사람이라는 것을 강조하는 듯했다. 표정이 인자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리 사납게 보이지도 않는다.
나중에 노인에게서 듣고 알게 되었는데, 초상화의 주인공은 현대 심리학의 양대 레전드로 시그문트 프로이트와 어깨를 나란히 했던 카를 구스타프 융이라고 했다. 노인은 항상 융의 초상화를 보면서 그가 남긴 업적을 이어가겠다는 의지를 되새겼다나 뭐라나...
하지만 정작 내가 궁금한 것은 따로 있었다. 노인은 타로와 주역 점을 치는 역술인이다. 그런데 왜 이곳에 융인지 뭔지 하는 사람의 초상화가 걸려있냐 하는 것이다. 더군다나 그 양반은 역술인도 아니고 심리학자라는데. 내가 이곳에 알바생으로 처음 와서 며칠이 지나지 않았을 때였다. 그 초상화가 정말 생뚱맞다고 생각했던 나는 노인에게 직접 물어보기로 했다.
“어르신. 저 초상화는 누구길래 걸어두신 거죠? 백인으로 보이는데 혹시 서양 점술사인가요?”
노인은 잠시 나를 물끄러미 쳐다보더니 초상화 아래 책꽂이를 가리켰다.
“거기 싱크로니시티라고 책이 하나 있을 거야. 자네도 혹시 관심 있으면 한번 읽어보든가. 능력이 된다면..”
말끝을 흐리며 뭔가 불끈 치솟게 만드는 것은 노인의 특기다. 돈 한 푼 들이지 않고 사람을 교묘하게 조종하는 고수들의 방법. ‘능력이 된다면’이라.
“그게 이해가 된다면 초상화를 왜 걸어두었는지는 굳이 설명할 필요가 없겠지.”
한마디 톡 쏘아붙이고 싶었지만 나는 일단 책꽂이를 살피기로 했다.
싱크로니시티
Synchronicity : An Acausal Connecting Principle
직역하면 '비인과적 연결성의 원리‘라는 뜻인 것 같은데. 당최 뭔 소린지. 노인은 상황을 마무리 짓는 최상위 스킬을 시전 했다.
“자네는 수학 전공이라 저 책은 이해하기가 어려울 걸세. 인과관계가 없는데 연결이 된다는 얘기 따위는 어설픈 수학 전공자들이 받아들이기엔 많이 무리지. 무리.”
‘어설픈’이라. 하여튼 이분은 조용조용 사람 속 뒤집어 놓는 데 일가견이 있다니까. 당시 나는 원효대학교 수리학부 조기졸업을 앞두고 있었고, 이미 대학원 석사과정에 진학하기로 내정된 상태였다. 원효대는 자타가 공인하는 동북아 최고의 연구중심 대학이다. 인문사회 및 자연과학 분야의 순수학문으로만 전공이 구성되어 있었다. 한국과 아시아의 천재들이 아니면 입학 자체가 불가능하다. 그런데 이 양반은 그 사실을 뻔히 알면서도 ‘어설픈 수학 전공자’라고 표현했다. 내 심사를 긁어보겠다는 얄팍한 의도를 굳이 감추지 않은 거다. 나는 알면서도 못 이기는 척 패를 받았다.
“어르신. 제가 저 책을 읽어보고 이해가 된다면 혹시 뭔가 베네핏이 있나요?”
“젊은 친구가 베네핏부터 따지나. 예끼 이 사람아. 혹여라도 그 내용이 이해된다면 자네는 아마 나를 평생의 스승으로 모시게 될걸. 저걸 이해했다는 그 자체가 자네 인생 최고의 베네핏이야. 근데 자네도 바쁠 테니. 웬만하면 그냥 놔두게. 저거 아무나 이해 못 해. 워낙에 난이도가 높아서 말이지.”
아오. 그날 난 밤을 새워서라도 저 책을 독파해서 이해한 다음 노인과 한 판 붙어보기로 결심했다.
못 맞추면 구매 취소하시오
청춘 타로 & 사주의 비용 결제 방식은 상당히 특이했다. 상담 예약은 중고거래 앱으로 받는다. 왜 그런가 했더니 에스크로 결제 기능 때문이란다. 대개 의뢰인들은 이성교제, 결혼, 승진, 진학, 진로, 투자, 건강 이런 것들이 잘 될지 말지를 물어본다. 노인은 타로나 사주를 봐서 그 질문에 답한다. 즉 노인은 아직 이루어지지 않은 미래의 일에 대해 단정적인 답을 제시하는 셈이다. 하지만 그 답이 맞을 거란 보장은 없다. 때문에 노인은 에스크로 결제 방식을 택했다고 한다. 노인이 제시한 답이 실제로 맞으면 구매 확정을 통해 비용을 내고, 틀렸다면 구매 취소하면 그만이다. 맞다 틀렸다에 대한 판단은 의뢰인의 양심에 맡긴다. 노인은 그것을 따로 검증하지 않았다. 물론 검증할 방법도 없다. 지극히 의뢰인에게 유리한 방식이다.
“저기 어르신. 뭐 이런 방식이 고객을 우롱하지 않겠다는 강력한 의지의 표현인 것은 알겠는데요. 이대로 가면 실컷 서비스만 해 주고 정작 돈은 하나도 못 받을 가능성도 있지 않을까요?”
듣기에 따라서는 꽤나 불쾌한 질문일 수 있다. 하지만 노인은 전혀 타격감 없는 표정으로 되물었다.
“왜? 내가 못 맞출까 봐?”
뜨끔.. 솔직히 반반 아닐까?
“ 그게 아니라 요즘 사람들이 영악하다 보니 실제로 맞췄는데도 돈내기 싫어서 구매 취소해 버릴 수도 있잖아요. 따로 확인도 안 되고.”
“그런 돈은 어차피 내 돈 아니다.”
“아니 그럼 뭘로 먹고살아요?”
“마케팅 비용이라는 뜻이지. 내가 만약 제대로 맞췄는데 의뢰인이 푼돈에 눈이 멀어 구매 취소를 했다 치자. 그렇다고 그 사람 인생에 고민거리가 몽땅 없어졌겠냐? 고민이란 보통 꼬리에 꼬리를 물게 되지. 시간이 조금 지나 그다음 고민을 마주했을 때 그 사람은 어떻게 할까?”
두둥.. 난 깜짝 놀랐다. 이런 게 바로 한 수 앞을 내다보는 고수의 진면목인가? 아니면 혹시 수준 높은 낚시질? 하지만 여전히 의문은 남았다.
“우와 그럼 진짜 거의 다 족집게처럼 다 맞추신다는 얘기인가요? 자신감 완전 뿜뿜! 자, 내가 어차피 다 맞출 테고 결국 넌 다시 나한테 돈 싸 들고 찾아올 거야. 뭐 이런 거네요?”
여노인은 혀를 끌끌 차면서 더 이상 대꾸를 하지 않았다. 그 대신 노트북을 펼쳤다. 중고거래 앱의 결제 관리 화면이었다.
- 12월 28일 총 입금 13건 270만 원 (수수료 차감 후)
"연말이라 좀 많은 편이다."
“와우! 어르신! 대박! 제가 봐도 요 며칠 손님이 좀 많긴 했는데 이 정도였나요? 그리고 참 13건에 270? 그럼 단가가 얼마란 얘기예요? 타로 상담 30분에 2만 원이잖아요. 근데 이게..”
노인은 말없이 13건의 리스트 중 첫 번째 것을 클릭했다.
- 구매 상품 : 주역점 30분
구매일 3월 2일
구매확정일 12월 28일
최초 구매금액 2만 원
추가 구매금액 18만 원
최종 구매확정금액 20만 원
“옴마나.. 이게 무슨 일?”
노인은 바로 옆에 있는 구매 후기 버튼을 눌렀다. 비공개 자물쇠가 채워져 있었다.
“이 친구가 뭘 느꼈는지 한번 볼까?”
- 선생님 감사합니다. 결국 승진은 실패했습니다. 하지만 말씀하신 대로 마음이 편안합니다. 선생님 얘기가 이제 좀 이해되네요. 내년에는 다른 일로 한 번 더 구매할까 합니다.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부디 건강하세요.
“거 봐. 승진 못 했어도 돈 내잖아. 이 친구야.”
사람들이 원래는 안 이러는데.. 것 참 희한하네.
“승진 실패했다는데 왜 돈을 열 배로 더 냈을까요?”
“정작 사람들에게 필요한 건, 맞추고 못 맞추고가 아니라네. 내 마음이 편하냐 불편하냐 그게 문제인 거지.”
“에이. 그건 저도 알죠. 어르신 혹시 그분한테 자 이 사람아 올해 못하면 내년엔 꼭 될 테니 너무 걱정 말게. 인생이란 게 비 오는 날도 있고 화창한 날도 있고 그런 거 아니겠나? 뭐 이런 얘기하신 거 아녜요?”
“자네 보기보다 멍청하군. 그리 안 봤는데. 쯧쯧. 내가 그딴 소리만 했다면 그 친구가 돈을 열 배나 더 냈겠냐고오. 이 한심한 친구야. 답답~~하네.”
여노인이 언성을 높이는 건 흔한 일은 아니다. 하지만 야단치는 뉘앙스가 아니라 뭔가를 알리고자 하는 의도가 깔려있음을 난 느낄 수 있었다. 노인은 뒷짐을 지더니 창밖을 지나는 행인들에게로 눈길을 돌렸다.
“사실 구매 취소자들이 훨씬 더 많지. 그들은 상처 입지 않은 자들이야. 그런 친구들은 큰 고민 없이 진짜 심심풀이로 점 한번 보러 온 거라네. 그런 자들에게는 나도 가볍고 명랑하게 응대하지. 이런 경우 나와의 인연은 그리 길지 않아. 계속 이어질 이유가 없지. 그런데 좀 다른 부류의 사람들이 있어. 밤늦게 혼자 찾아오는..”
(2화에서 계속 / 매주 토요일 연재)
* 이 글은 작자의 상상을 펼친 허구의 소설입니다. 등장인물과 조직, 각종 사건 등의 소재들은 현실에 존재하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