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이전에 멘탈 나가리 됐을 때 류시화 시집을 인상깊게 읽고 회복하는데 도움이 됐었어서 이번에도 정신 좀 붙잡으려고 읽어봤다.
평소에 에세이를 별로 좋아하질 않는데 그 이유는 너무 감성적이고 저자가 감성적인 자신에 취해있는게 오글거려서였다. 하지만 이 책은 솔직하게 자신의 삶, 거기서 깨달은 것들을 서술하는 게 날 것의 느낌인데도 거기서 마음을 울리는 문장들이 많아서 좋았다. 나도 이런 글을 쓰고 싶다.
“정확하게 3,741,952개였어. 네 말대로라면 무게가 거의 없는 그다음 번째 눈송이가 내려앉는 순간 나뭇가지가 부러졌어. 지금 내 마음에 얼마나 많은 생각의 눈송이들이 소리 없이 쌓이고 있는가. 생각만큼 우리를 무너뜨리는 것은 없다”
아무리 작은 생각이라도 계속 하면 우리 마음에 분명히 영향을 준다. 눈송이들을 마음에 쌓지 말고 따뜻하게 녹일 수 있는 연습을 하자.
“신이 쉼표를 넣은 곳에 마침표를 찍지 말라”
쉼표를 내 맘대로 마침표라고 생각하는건 어리석다. 잠깐 쉬는 게 끝난 것처럼 보일지라도 마침표를 찍지 않으면 끝나지 않는다.
“상처가 되는 경험은 우연한 사고가 아니다. 자기 존재의 방향을 찾기 위해, 즉 삶을 진지하게 살기 위해 당신이 인내심을 갖고 기다려 온 기회이다. 만약 그 사건이 일어나지 않았다면 당신은 그것과 비슷한 또 다른 경험을 찾아 나섰을 것이다”
상처가 되는 여러 경험들이 있었다. 사람에게서도 그렇고 무언가 도전했을 때도 있다. 이런 경험들이 후회가 되거나 일어나지 않았으면 어땠을까라는 생각을 예전엔 많이 했었는데 요즘은 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어차피 그때 안 했어도 언젠간 일어났을 일(해보고 싶은건 꼭 해야 하는 성격 때문일까?) 이라고 생각하니까.경험은 상처가 되더라도 안하는 것보다 낫다.
“글을 쓴다는 것은 모르는 사람에게 은밀한 편지를 쓰는 것과 같다”
블로그를 쓸때 이런 느낌이 종종 든다. 구구절절 내 생각을 필터없이 쓴 글을 다 읽는 사람이 있을까? 그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나에게 그만큼 관심이 있어서 내가 어떤 생각을 하나 읽어보는 것일까?등등. 글을 쓸 때 생각정리를 하는 느낌도 있지만 화면 너머 누군가에게 내 생각을 말하는 것 같다.
“영혼의 돌봄에는 명상이나 독서뿐 아니라 여행, 예술 활동, 자연과 가까워지는 일도 포함된다. 건강한 음식, 만족스러운 대화, 기억에 남을 뿐 아니라 감동을 주는 경험들도 영혼에 자양분을 선물한다”
정신이 하강나선이 될 거 같으면 평소에 하던 독서뿐만 아니라 육체를 이루는 먹는 것을 바꿔야한다. 그리고 나을 새로운 공간에 옮겨둬서 환기시킬 필요도 있다. 내 멘탈이 어떻게 되고 있는가를 객관적으로 볼 수 있고 그거에 맞춰서 대처할 수 있는 능력을 더 키우고 싶다.
“생각이 오고 가는 대로 자연스럽게 지켜볼 때 비로소 명상이 가능하다”
명상을 처음 할 때 이게 제일 어려웠다. 머릿속을 비울수가 없고 자꾸만 생각이 끊이질 않았다. 근데 생각하는건 뇌의 일이어서 끊임없이 생각하는게 자연스럽다는 걸 알게 되고 마음이 편해졌다. 이때 명상은 아예 머리를 비우는게 아니라 무슨 생각을 하든 그 생각에 끌려가는게 아니라 한 발자국 떨어져서 바라볼 수 있는 연습을 하는 것이다. 이래야 평소에도 감정이 올라오거나 신중해야 할 때 객관적으로 자신을 바라볼 수 있기 때문에.
“공감과 연민은 우리를 더 큰 ‘나’로 만든다”
공감과 연민은 마음의 여유가 있을 때 가능하다. 그래서 더 큰 '나'인건가. 아니면 공감과 연민을 통해 마음의 여유가 더 생길 수 있는 것인가. 모르겠다.
“전염성 강한 그의 불평은 내 안의 기쁨을 꺾어 버렸다”
불평불만, 부정적인 언행은 전염된다. 아무리 내가 기분이 좋아도 불만을 계속 말하는 사람과 대화하면 그의 감정에 이끌려버린다. 이전엔 그런 부정적인 이야기를 그냥 들어주고 맞장구 쳐줬는데 이젠 그러고싶지않다. 화법 자체가 부정적인 사람, 불평하는게 습관인 사람과는 이젠 대화하고싶지 않다. 그의 부정적인 생각과 불만의 감정은 그가 해결해야 할 일이지 내가 들어주며 스트레스 받을 이유가 없다.
“우리는 우리를 위해 낙하산을 접어 주는 사람을 얼마나 인식하며 살아가는가?”
나를 사랑해주는 사람을 얼마나 인식하며 살아가는가? 날 도와주고 생각해주는 사람을 당연하게 여기지는 않는가? 그들의 소중함을 항상 생각하자.
“어느새 우리는 새장 안의 안락함에 취해 푸른 하늘의 기억조차 잊어버린 것은 아닌지, 저 멀리 보이는 하늘을 자유롭게 날아 본 적이 있는지”
내 꿈은 뭐였을까. 한 회사를 2년 반 넘게 다니며 야근이 별로 없고 업무강도가 낮은 안락함에 취해 어떤 디자이너가 되고 싶은지를 잊은 느낌이 요즘 종종 든다. 대학교 4년 동안 참 치열하게 살았다. 밤새워 과제하고 공모전 나가고 인턴도 하고 1년이 지날 때마다 실력이 는게 보였다. 하지만 지금은? 성장의 정체기 같은 느낌이다. 입사 초와 비교했을 때 분명 늘긴 했겠지만 학생때의 성장 속도와는 확연히 다르다. 곧 3년차가 되고 서른살이 되는데 지금 이 모습이 내가 원하던 디자이너인가? 난 어떤게 무서워서 회사를 나가지 못하는가. 새장 속의 새가 되지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