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질을 몸에 새기는 사람
그해 겨울은 참 따뜻했다. 왜냐면, 해리포터 신간이 나왔거든!
중학생이던 나는 해리포터 시리즈가 나올 때마다 잠을 이루지 못했다. 해리포터가 교과서였다면 못해도 서울대는 갔을 것이다.(허언증)
총 일곱 권에 달하는 해리포터 시리즈는 호그와트 마법 학교를 가는 아이의 이야기로 시작된다. 평범하기만 한 해리에게 어느 날 부엉이 편지가 배달되고.. 해리는 슈퍼짱짱맨이 되어 나쁜 놈을 물리치고 끝내 영웅이 된다.
학교라는 감옥에 갇혀 교복이라는 죄수복을 입은 나에게 해리포터는 꿈 자체였다. 밤마다 나는 그리핀도르 학생이 됐다가, 레번클로 반장이 됐다가, 빗자루를 타고 퀴티치 경기장을 날았다. 학교를 졸업할 때 받은 롤링 페이퍼에는 해리포터를 참 좋아하는 친구야 어쩌구로 시작되는 문구가 많았다.(모두에게 해친자로 보였나봄)
고등학교 이후 나는 해리와 멀어졌다. 영화 보다 또래 친구와 친해지기도 했고, 나름 공부도 했다. 호그와트 보다 대학 입학이 중요했고, 대학에서는 직장 입학을 준비하느라 바빴다. 해리포터 영화는 꾸준히 봤지만 해리가 못생겨지고 나서 흥미가 식었다. 해리포터를 참 좋아하던 친구는 그렇게 사라졌다.
덕질의 불이 다시 타오른 건 한참 어른이 된 이후다. 우연히 홍대를 지나다 타투샵에 들어가 발목에 작은별을 새겼다. 그때부터 타투에 관심이 생겼다. 두 번째 타투는 예쁘게 하고 싶었다. 그때, 해리가 다시 떠올랐다.
'LUMOS' 어두운 상황을 밝아지게 하는 주문이다. 나는 루모스를 팔 안쪽에 새겼다. 빛을 좋아하기도 하고, 긍정적으로 생각하자는 의미도 있었다. Lumos를 팔에 새기고 나니, 무슨무슨 균형 법칙에 의해 다리에도 새기고 싶어졌다. 이번엔 사이즈를 좀 크게. 'Expecto Patronum(수호신을 부르는 주문)'을 허벅지에 새겼다. 아주 크진 않고 대략 20cm 정도로?
내 몸에는 해리포터 생일 케이크를 포함해 총 열두 개의 타투가 새겨져 있다. 의미가 있는 것도, 없는 것도 있지만 대체적으로 내가 좋아하는 것들이다. 덕질의 역사가 새겨져 있는 신체라니 제법 멋지지 않은가. 가능한 한 자연사하도록 노력하면서 앞으로도 많은 재미들을 새겨나갈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