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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뚜기 Aug 09. 2023

김연아 갤러리 정모를 가다

연아야 사랑해


이불을 쓴 채로 떨었다.

2010년 밴쿠버 동계 올림픽, 연아가 파란 옷을 입고 빙상장으로 들어왔다.

런쓰루부터 완벽한 걸 봤기에 믿음이 있었다. 그럼에도 연아가 숨을 고를 때 나는 숨을 죽였다.


음악이 시작되고 첫 번째 점프, 오케이! 높이도 비거리도 완벽한 저 점프.

두 번째 점프, 좋다 좋다. 연아야 잘한다.

평소보다 크게 들리는 음악 속에서 그녀가 하나하나 동작을 공들여하고 있는 게 느껴졌다. 

드디어 마지막 점프, 됐다 됐어!

그녀는 체인지 풋 콤비네이션 스핀을 끝으로 음악이 끝남과 동시에 손을 번쩍 들어 올렸다. 

이불속에서 심장을 부여잡고 있던 나는 연아와 함께 울었다. 연아는 그저 자신의 할 일을 했다. 그런데 왜 내가 기쁘고 행복한 걸까.



연아를 처음 본 건 2007년도다. 인터넷을 뒤져보다가 피겨 스케이팅 선수가 신기록을 세웠다는 소식을 들었다. 빙상장은 어릴 때 한두 번 가본 적 있었으나 피겨 스케이팅 경기를 보는 건 처음이었다. 예쁜 옷을 입은 어린 친구가 빙상장에 섰고 탱고 음악과 함께 동작을 깔끔하게 수행했다. 무엇보다 놀라운 것은 음악에 맞춰 동작이 하나하나 맞아떨어졌다는 것이다. 피겨 스케이팅은 점프만 하는 경기인 줄 알았던 내게 연아의 경기는 경기가 아니라 공연 같았다. 음악이 끝남과 동시에 해설자는 소리 질렀고 나 또한 감탄했다. 이게 피겨 스케이팅이라는 거구나.


이후로 연아의 경기를 모두 찾아보았다. 종달새의 비상, 박쥐, 미스사이공, 죽음의 무도, 거쉰. 이 밖에도 갈라 공연에서 한 벤, 리플렉션, 온리 호프 등 모든 영상을 빠짐없이 보았다. 영상 속 연아의 팔 동작은 말도 못 하게 우아했고 스케이팅은 얼음 위를 떠다니는듯했다. 럿츠, 플립, 살코, 룹 등 점프 동작을 구분하기에 이른 나는 연아가 한 방송에 출연한다는 소식을 듣고 방청객 신청을 하였다.



친구와 함께 뻘쭘하게 들어선 방송국 안은 생각보다 넓었다. 방청객은 대다수 연아의 팬(승냥이)으로 보였고 그 사이 난 맨 앞줄에 앉았다. 드디어 황제 등장. 연아의 실물을 보자 어리벙벙했고 지금 내가 보는 게 현실인지 홀로그램인지 구분이 되지 않았다. 그날의 방송은 연아와 MC의 1:1 대화로 진행됐다는 거 정도 기억난다. 연아는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웃었고 맨바닥에서 악셀 점프도 해줬다. 찰나 같은 시간이 지나가고 마음이 정리되지 않은 나는 김연아 갤러리에 후기글을 올렸다. 댓글을 보며 흐뭇해하던 동시 연아의 아이스쇼 공연이 끝난 후 정모를 한다는 게시글을 보았다.




연아의 피겨 스케이팅을 세 번 정도 실제로 보았다. 4대륙 경기, 아이스쇼, 국내 종합 선수권 대회. 마지막으로 본 어릿광대를 보내주오 쇼트에서 눈물 한 방울 흘렸다는 건 비밀이 아니다. 나 말고도 많이들 울었으니까. 

아이스쇼는 친구와 함께 갔다. 연아 말고 다른 선수들 무대는 신나게 즐겼다가, 연아의 온리호프는 두 손 모으고 경건하게 보았다. 공연이 끝난 후 드디어 정모 시간이 다가왔다. 


공연장 문 앞에 사람 여럿이 모여있었다. 대략 열다섯에서 스무 명 정도로 기억한다. 우리는 한 줄로 나란히 호프집 같은 곳으로 향했고(너무 오래돼서 정확한 기억 삭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중 한 분이 "연아 어머님은 전생에 지구를 구했을 듯"이라 한 멘트가 기억난다. 정모는 대략 이런 이야기의 합으로 점철됐다. 연아 짱인듯, 연아 어머님도 짱인듯, 연아 신인듯, 연아 사랑해 등등


누구누구 갤러리는 완전한 덕후들만 모여있는 곳이라 생각했다. 나는 라이트 한 팬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게시글을 정독하고 정모까지 참여하고 있잖아? 이번만큼은 얕은 덕후가 아니라 진성 덕후라 명명하겠다. 나는 김연아의 완전한 덕후이다.


연아가 은퇴한 후 한동안 피겨를 보지 않았다. 피겨는 내가 알던 점프 대회로 돌아와 있었다. 누구도 연아처럼 음악을 느끼며 기술과 예술의 경지를 함께 보여주는 사람이 없었다. 그러나 연아의 경기 영상은 마르고 닳도록 본다. 거쉰은 백 번 정도 보았을 것이다. 각국의 해설 버전, 일본 버전 한 번 비교해 주고, 뒤쪽에 앉은 사람들 표정 좀 관찰해 주고 그렇게 영상이 바래질 때까지 보고 있다. 연아는 떠났지만 연아의 영상은 남았다. 그리고 연아의 정신도 남았다. 한 번 정상에 오른 사람이 다시 정상을 위해 노력하고, 국가의 기대를 받고도 초연히 경기를 완벽하게 해내고, 스트레칭을 할 때 그냥 하는 당신. 나는 그냥 당신의 영원한 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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