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 혼자 게으른 여행 - 베트남 북부
4월, 11박 12일 동안 베트남 북부 여행을 다녀왔다. 딱히 특별할 것 없는 여행이지만, 나에겐 소중한 기억이기에 기록을 남겨보려 한다. 여행 전에 결정한 건 비행기 일정과 첫 날 묵을 숙소, 필요한 비용 정도. 나머지는 현지에서 검색, 물어보고 결정했다. 어딜가나 영어가 잘 통하고, 와이파이도 잘되서 여자 혼자서도 큰 무리없이 편하게 여행했다.
1. 하노이였던 이유.
몇 달 전, 업무 스트레스가 최고조에 달했을 때 충동적으로 항공권을 3개나 끊었다. 돈은 있으나 시간이 없어 돈을 쓸 수 없는 스트레스를 항공권을 지르며 한껏 풀었으나, 진작 시간이 있어 여행을 할 때는 돈이 없는 현실과 맞닥뜨리게 된다.
하노이는 사실 잘 알지도 못하는 장소이다. 하노이를 고른 이유는 오랜만에 동남아를 가고 싶은 마음과, 베트남이라는 나라가 주는 평온한 느낌 때문. 그냥 경치가 끝내주게 좋은 곳에 가서 늘어지게 낮잠이나 며칠 내내 자고 싶었다. 여자 혼자 여행을 갈 때마다 들먹이게 된다는 그노매 '힐링'이 필요했던 모양이다.
여행 중에 만난 로컬 여자분이 왜 호치민이 아닌 하노이를 골랐냐고 물었는데, 스스로 "왜지?"에 대해 고민하며 멍청한 표정을 짓다가, '하노이'라는 이름이 좋았다고 말했다. 얼떨결에 나온 가장 정확한 이유가 아닌가 싶다. 실제로 방문한 하노이는 정말 말도 안되게 정신 없는 곳이었기에, 애초의 기대와는 상당히 상반된 경험을 하게 된다. 하노이가 워낙 정신 없어서, 그곳을 떠나 다른 도시에 있는 동안 굉장한 마음의 평안을 얻었다.
2. 공항에 도착해 가장 먼저 할 일.
드디어 하노이 국제 공항에 도착. 배낭만 덜렁 기내에 가져갔기에 시간 지체하지 않고 바로 나올 수 있었다.
이번 여행 전에 가장 긴장하고 정보를 수집한 것이 있으니 바로 '환전'과 '유심 구입'이었다. 여행지에 도착해 현지에서 하게 되는 첫 번째 결정인데, 이때 결정이 여행 내내 영향을 끼친다.
- '환전'
환전은 출발 하루 전 부랴부랴 신한은행에서 300달러를 환전해 인천공항에서 찾았고(어플 받아서 환전하면 90%인가에 할인 적용), 이제 베트남 동으로 환전할 일만 남았다. 베트남은 동전을 사용하지 않고(있는지는 모르겠으나, 여행 중 본 적이 없다) 1000동이 한국 돈 50원 일 정도로 화폐 단위가 크다.
환율을 가장 잘 쳐주는 곳은 여행자 거리의 금은방이라고 하는데, 사기도 많고 찢어진 화폐를 줘서 골치를 썩히는 일도 있단다. 공항에서의 환율이 나쁘지 않았고, 새 돈을 주기에 200달러를 동으로 환전했다.
그런데 의외로 여행 중에 달러를 쓸 일이 많았다. 달러를 더 잘 쳐주는 편이라고 하니, 1/3정도만 동으로 바꿔도 여행 중에 큰 무리가 없었을 거 같다.
- '유심 구입'
공항에서 판매하는 유심의 데이터 종류는 500메가, 1기가, 9기가가 이었던 듯 하다.
정확히 기억이 안나지만, 2기가를 사려고 했던 내가 고를 수 있는 선택의 폭이 넓지 않았다.
업무 때문에 한국에 전화할 일이 있을 듯 해서, 인터내셔널 통화 25분이 가능한 9기가 짜리를 13달러? 쯤에 구입했다. 그러나 이놈 유심은 결국 인터내셔널 통화가 되지 않았고, 깟바섬에서는 데이터가 되지 않는 한심한 성능을 뽐내었다. 고의인지 아닌지 모르겠으나, 유심을 잘못 준 듯 했다.
이 때, 베트남에서 꼭 알아야 할 첫 번째 교훈을 얻게 된다. "영수증을 꼭 받을 것"
한국으로 돌아오는 날, 따지려 했지만 비행기 시간에 늦기도 했고, 영수증이 없어서 포기했다.
3. 베트남 물가
처음엔 이 큰 화폐 단위에 적응이 잘 되지 않아 1만 동을 쓸때도 긴장했다. 여행 중 가장 많이 검색한 게 '베트남 환율' 이었다. 그리고.. 생각만큼 베트남 물가가 싸진 않았다. 베트남 근로자들의 한달 소득이 한국 돈으로 대략 20-40만원 선으로 알고 있다. 그런데 대부분 식당에서 식사할 때 2천-5천원 정도 선, 쇼핑이나 택시비도 그닥 싸진 않았다. 체감하기로는 우리 나라의 2/3 정도의 물가로 느껴졌다. 현지인들에게도 이 금액이라면 생활하기 굉장히 힘들겠다는 생각. 뭐, 여행자라서 바가지를 쓰고 다닌 걸수도 있다. 베트남 여행 정보를 찾아보면서, 바가지가 심하니 부르는 가격의 절반을 말하라는 정보를 많이 봤었다.
여행 중 물건값을 협상하면서 얻는 즐거움도 있을 테지만, 그냥 빡빡하게 굴기 싫어서 용납할 수 있는 수준 선에서는 대부분 오케이를 했다. 물론 말도 안되는 가격을 부르는 사람들도 종종 있으니 조심할 것.
4. 공항에서 숙소까지.
여행자들이 하노이에서 가장 많이 묵는 곳은 '호안끼엠'이라는 호수 근처이다.
나도 그곳 근처 숙소를 1박을 예약해뒀다. 구글 지도로 검색해보니, 공항에서 숙소 근처로 가는 버스가 있었다. 공항에서 15분 쯤 걸어서, 17번 버스를 타면 호안끼엠 근처로 간다. 숙소로 가려면 버스에 내려서 15분 정도 더 걸어야 한다. 택시를 타면, 베트남 동으로 25만동, 한국 돈으로 1만원이 좀 넘는 정도. 버스비는 9000동, 한국 돈 400원. 일찍가서 할 일도 없었기에 찬찬히 걸어 버스를 타기로 했다.
버스를 타러 가는 15분 동안, 열 댓명의 택시 기사, 오토바이 기사, 정체를 알 수 없으나 휘파람을 불거나 베트남어로 외치는 사람들이 있었다. 날씨는 한국의 봄날스러운 따듯하고 바람이 부는 기분 좋은 날씨였지만, 하늘은 꽉 막혀 답답한 기분이 들었다. 하노이에 있는 3일 동안, 파란 하늘을 한번도 보지 못했다. 오토바이와 오래된 버스, 자동차가 만들어내는 매연 때문이라 한다. 버스 정류장에 가니, 젊은 베트남 여성 둘과 어린 아이가 버스를 기다리고 있다. 아이를 향해 미소를 지으니, 아가씨 둘도 미소를 짓는다. 훈훈한데 간질간질한 기분이다. 5분 정도 기다리니, 버스가 도착했다.
베트남의 모든 버스는 색깔이나 차량 종류가 다르다, 오직 앞에 써있는 숫자를 보고 판별해야 한다. 버스를 타니, 말도 안되게 낡아있는데다가 에어컨이 안된다. 더워서 창문을 열었다가 매연 때문에 포기했다. 에어컨이 고장난 듯, 표를 받는 분이 버스를 세워놓고 이곳저곳을 손보았으나 3분 정도 작동하다가 꺼졌다.
텁텁한 공기와 풍경, 낯선데도 반가운 묘한 냄새에 여행을 실감했다.
"여기가 베트남이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