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 한강이 있듯이, 하노이에 호안끼엠이 있었다

여자 혼자 게으른 여행 - 베트남 북부 2편

by 김투명


P20160413_185607767_57705D99-95B9-4D23-8955-EE6A52B321E0.JPG 호환마마보다 무서웠던 베트남에서 길건너기

더운 날씨에 버스에서 잘못내려 헤매고 싶지 않았다. 게다가 여행의첫 행선지 아닌가. 도착할 곳을 구글지도에 표시해두고, 나의 위치가 어딘지를 파란 동그라미로 쫓았다.

1시간 즈음 지나 큰 강을 건넌 후, 버스 정류장에 도착. 몇 년 전만 해도 버스기사에게 지도를 펼쳐 짚어주며 몇 번이나 확인한 후에나 가능했을 일이 이제는 내 손 안에서 가능해졌다. 누군가에게 말 걸 필요도 없고, 꾸깃꾸깃 지도를 펼쳐 지니고 다닐 필요도 없다.

편리하다. 2년 전 유럽여행에서는 이러한 ‘편리한’ 여행이 꽤나 씁쓸했었는데, 이젠 ‘편리’가 삶 속에 너무 깊이 들어온 탓인지 그러한 감각도 없었다.

배낭가방은 10kg남짓. 무거운 편은 아니었지만, 얼른 숙소에 도착해 던져버리고 싶어 발걸음을 서둘렀다.

숙소로 가는 길은 시장처럼 복작복작한 길이 계속 되었는데, 어디선가 정말 오랜만에 맡는 그리운 냄새가 났다. 정체는 바로 두리안. 6년 전 인도네시아 어딘가에서 맡았던 냄새. 먹은 적도 없는 과일이었는데, 지금은 동남아를 상징하는 냄새로 나에게 각인된 것 같다. 나는 그때도 잘란잘란(인도네시아 어로 ‘걷다’), 지금도 잘란잘란하고 있구나.


P20160413_191126869_25A3E82E-E653-4CB6-A3D5-ECE051D34BE6.JPG 고스톱을 쳐도 좋을만큼 넓었던 침대

내가 묵은 곳은 백패커스 호스텔. 호안끼엠 호수에서 걸어서 10분 거리에 위치해 있는 곳이다. 예약한 4인실 도미토리는 하루밤 8달러로 합리적인 편. 체크인을 하려는데, 여권을 맡기라고 한다. 좀 당황했지만, 하노이에 왔으면 하노이 법을 따라야지. 배낭을 들어주더니 4층 방으로 안내해준다. 침대가 정말 넓었다. 4명쯤 둘러앉아 고스톱을 친다해도 가능할 것 같은 사이즈로다.

어느새 땀이 범벅이 되었기에 대강 씻고 가벼운 옷차림으로 갈아 입었다. 옆자리에 한 남자 외국인 여행자가 들어왔다. 캐나다에서 왔고, 나처럼 하노이에서는 여행 첫 날이란다.

오늘 할일은 딱 두 가지. 사파로 가는 야간 버스를 예약하는 것과 호안끼엠 근처를 둘러보는 것. 호스텔에 물어보니 사파 패키지가 있다고 한다.

친절했지만 패키지 예약은 원치 않아서 흘려듣고 그냥 나왔다. 코너를 꺽자마자 바로 보이는 여행사로 가서 다시 사파 야간 버스를 물어봤다.

21만동(1만 1천원쯤)으로 예상보다 가격이 저렴해 바로 쿨매. 버스가 내일 저녁 8시에 숙소로 데리러 온단다. 숙소 이름과 주소, 내 폰번호까지 적어주고, 여행사 아가씨 폰번호까지 챙겨뒀다. 오늘 할일의 반을 끝내니, 배가 고파졌다.

“근처에 맛있는 곳 추천해줘.”라는나의 말에 “웨스턴 푸드?”하고 묻는다. 그럴리가 있나. “노놉. 트렌디셔널 베트남 푸드.” 하니, 얼굴이 살짝 해사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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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해준 곳은 쌀국수 집이었는데, 무릎 위치까지밖에 안오는 탁자와 아이 장난감 의자같은 얼기설기 놓여있는 곳이었다. 처음엔 길바닥에 앉아서 먹기 낯설었지만, 하노이 호안끼엠 근처 식당들은 거의 이런 식이었다.

엉거주춤 앉으니, 주인 아주머니가 스윽 보더니 집게손가락을 하나 척들어 one?하고 묻는다. Yes!

정체불명의 고기 완자와 야채가 잔뜩 든 쌀국수가 금새 나왔다. 한 젓가락 먹고나서 정말 감탄했다.

한국에서 먹던 베트남 국수와는 차원이 다른 깊은 맛이 났기 때문. 옆 자리 로컬들이 먹는 국수에는 살이 붙은 돼지뼈들도 담겨있었다.

먹기 편하라고 무난한 걸 준 모양이다. 열심히 먹고 있는데, 웬 할머니가 오셔서 물건을 파셨다. 카라멜을 구입하고나서 얼마인지 물었는데, 손가락을 9개 펴신다. 대체 얼마라는 걸까. 한참 지갑을 꺼내 낑낑거리니, 옆에서 먹던 베트남 여학생이 “구천동이에요”라고 한국말로 말한다. 지갑을 보니, 작은 금액은 8천동 뿐이다.

난감해하고 있으니, “할머니가 깍아주신대요.”라고 한다. 한국말은 대체 어디서 배웠을까?

베트남에서 처음 간 식당에서 겪은 이 일로 나는 2가지 착각을 하게된다.


첫번째. 베트남 쌀국수는 다 맛있다.-> 여기 국수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맛있었다. 다른 국수는 msg맛이 심하게 났다. 사골을 직접 끓여 만드는 곳이 맛있는데, 대부분 농축된 가루를 사용하는 듯하다.

두번째. 한국말을 할 수 있는 베트남 사람들이 꽤 있다. -> 이렇게 한국어 잘하시는 분도 처음이자 마지막.


맛있게 먹고나서, 여행사를 지나가며 여행사 직원분과 일부러 눈을 마주쳐 엄지를 척!하고 올려주었다.

빙그레 웃으면서 서로 엄지 척! 이때만 해도 내일 무슨 일이 생길줄도 모르고
무한 신뢰의 감정을 갖고 있었더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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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처를 설렁설렁 걸으며 여행사의 그녀가 되어본 나의 삶을 상상해봤다. 아침엔오토바이를 타고 출근하고, 점심엔 아까 그 식당에서 국수를 먹는다. 나같은 호구 외국인 여행자가 오면 여행지에 대해서 설명해주고 패키지 상품을 판매한다.

퇴근 후에는 친구나 남자친구와다시 오토바이를 타고, 호안끼엠 근처 식당에서 맥주 한잔과 월남쌈을 저녁으로 먹는다. 저녁이 되어 쌀쌀해졌지만 바람을 쐬는 것이 좋아 다시 오토바이를 타고 집으로 간다.

가족들과 함께 오손도손 과일을 먹으며 오늘 힘들었어~하고 투정을 부려본다.


물론 상상과 같지 않겠지만, 베트남 사람들은 대체적으로 우리나라 사람들보다 여유로워 보였다.


P20160413_220036936_ADC8074A-6112-4415-940A-92ADF3B8AF9A.JPG 도시에는 강이 필요하다

걸어서 천천히 호안끼엠 호수 주변을 구경했다. 호수는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크고 야경이 아름다웠다.

어딜가나 울리는 경적과 말을 거는 사람들때문에 정신이 없었지만, 호숫가에 멍하니 앉아있으니 선선한 바람에 기분이 좋아졌다.

서울에 한강이 있듯이, 하노이에 호안끼엠이 있었다.

퇴근 후 강가에서운동하고, 데이트하고, 맥주도 한잔하며 하루동안의 삶이 끝나가는걸 축하하며 아쉬워하며 그렇게 머무는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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