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책하기에 최악의 장소 하노이, 그럼에도 즐겁다.

여자 혼자 게으른 여행 - 베트남 북부 3편

by 김투명

역사적인 사이공 맥주와의 첫 만남 두둥!


호안끼엠 근처를 한참을 구경하며 걷다가, 지치면 길거리 식당에 들어가서 맥주를 퍼마시길 몇 번. 꽤나 많은 베트남 음식을 맛볼 수 있었다. 부른 배를 흐뭇하게 두드리며 10시 즈음 숙소로 발을 돌렸다. 숙소 근처 시장에 할머니 한 분께서 그 늦은 시간에도 과일을 팔고 계셨는데, 술도 거나하게 마셨겠다, 괜스레 더 안쓰러워 보였다. 할머니 옆에 털썩 앉아 얼마냐고 묻는데, 선뜻 파인애플과 드레곤 후르츠를 권하더니 숭덩숭덩 잘라준다. 까짓 얼마나 할까 싶어서 하나씩 달라고 하고 계산하려는데, 15만동을 달라고 한다. 우리나라 돈으로 7천 5백원.


내가 몇 시간동안 돌아다니며 먹어댄 수많은 맥주와 안주보다 비싼 금액이었다. 잘못 들었나 싶어 다시 묻는데 신경질적으로 내 손에 있는 10만동을 가져가더니, 5만동을 더 내놓으란다. 썽이나서 나 과일 안가져가겠다고 실랑이를 하니, 10만동에 과일을 내준다. 숙소에서 먹어보니, 맛이 없어서 반도 못 먹었다.


아주머니, 과일맛없쪄여


이때 느낀 교훈은 함부로 누군가를 동정하지 말라는 것과 동정할 각오를 했으면 차라리 쿨하게 모든 것을 내주라는 것. 나님.. 결국엔 도와주고 싶은 마음에 과일을 샀으나, 덤탱이는 못쓰겠어서 과일값을 깍는 행동을 한거다. 누군가를 동정해서 돈을 퍼줄 정도로 내가 부유하지 않다는 것을 직시, 이후로는 베트남에서 이러한 행동은 하지 않았다.


하노이에 빵집을 차려보자


하노이에서 맞는 두 번째 날. 9시쯤 어슬렁 일어나서 밥먹으러 1층에 내려왔다. 게스트하우스의 출입문이 투명한 유리로 되어있었는데, 이른 아침부터 매우 활기찼다. 꽃을 가득 자전거에 실어가는 아주머니, 가족 모두를 태우고 달려가는 오토바이, 그리고 빠지지 않는 경적 소리.


여행에서 가장 좋은 순간이다.
이전에 전혀 알지못했던 아침을 맞이한다는 것.


얼른 산책이 하고 싶어졌다. 이곳에서의 조식은 국수, 토스트, 핫케이크 등 10가지 종류에서 선택할 수 있었다. 토스트와 오믈렛, 베트남 커피를 시켰는데, 식빵이 미묘하게 맛이 없었다. 사실 베트남에서 10일동안 먹은 거의 모든 음식은 맛이 좋았으나, 공교롭게도 주식인 '빵'과 '밥'은 맛이 없었다. 그 사실이 꽤나 안타까웠다. 완벽한 신선도와 항미좋은 사이드 요리에 그 날라다니고 쿰쿰한 쌀알을 입에 넣는다는거슨.. 최고급 치즈와 하몽, 새우 감바스까지 완벽하게 세팅해놓고, 와인 대신 포도주스를 마시는 기분이랄까. 웰치스가 아닌 미란다 포도맛 정도가 적절한 비유라 할 수 있다.


산책하기에 좋은 퐝뒹풍??? 거리

짐을 다 싸서, 프론트에 맡겨놓고 산책을 하러 나왔다. 숙소에서 조금 위에 위치한 Phan Dinh Phung거리를 걸었다. 1.5km나 주욱 이어진 길에 고목들이 빽빽하게 늘어서있는 로맨틱한 장소이다. 사실 다른 하노이의 거리는 오토바이나 식당 의자들이 늘어져 있기에 걷기가 쉽지 않았는데, 이곳은 하노이에서 본 가장 넓은 보행자 거리여서 마음놓고 노닐 수 있었다.


한국인의 정, 초코파이의 맹활약!


Phan Dinh Phung거리를 따라 걷다보니, 작은 신사같은 곳이 나왔다. 조심스레 올라가 사람들과 함께 돌아봤는데, 사람들이 바친 공물 중에 초코파이와 카스테라가 있는 걸 보고 꽤나 반가웠다. 카스테라는 나중에 구입해서 먹어봤는데, 생긴 건 같은데 크림 맛이 약간 다르긴 했다.



하노이의 건물들은 오래되긴 했지만, 각자 개성이 뚜렷하고 아름다웠다. 프랑스 식민지 당시의 영향 때문인지 유럽풍이기도 하다. 역사가 오래되어 삶의 흔적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듯해 더욱 좋았다. 너무 쉽게 허물고 새로 짓는 우리나라의 건축물들의 짧은 역사와 비슷비슷한 모양새가 아쉽게 여겨지는 순간이었다.


모기에게 겁나 뜯겼던 곳


호치민 묘소나 박물관에 가볼까 했지만, 그냥 나 자신을 속이지 말자고 생각. 모두가 가는 장소라고해서 굳이 원하지 않는 곳에 발걸음할 필요는 없다. 산책을 하고 싶어서 구글 지도에 표시된 초록색(아마도 공원)과 파란색(아마도 호수)을 찾아 마냥 걸었다. dao bach thao라는 호수로 가 노천 카페에 앉았다. 매우 길다란 카페였는데, 여러 번 손을 흔들었는데도 주인이 나를 발견하지 못했다.

내 존재감이 감히 이 정도다. 20여분 정도 앉아있다가 포기하고 나왔는데, 이 카페에서 모기에 엄청 뜯긴 것을 발견했다. 하필이면 이 시기에 베트남에서 모기로 인한 지카 바이러스에 감염됐다는 보도가 나왔을 때라 살짝 걱정이 되었으나, 한동안 임신할 일이 전혀 없을거라는 강하고도 슬픈 확신으로 인해 안심할 수 있었다.



어느새 점심을 먹을 시간이 되어 강변에 있는 레스토랑에 가서 맛있는 걸 먹자고 결심. 호안끼엠보다 몇 십배는 더 큰 서호라는 호수를 향해 걷다가 무심코 뭔가를 밟고 나자빠져서 왼쪽 무릎 아래가 살짝 긁혔다.

그래, 이때는 '살짝'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후에 이 상처때문에 엄청나게 고생하게 된다.


샌드위치에 생숙주가 들어가 있다.묘하다


서호 근처에 꽤 깔끔해보이는 웨스턴 레스토랑에 들어가 밥을 먹는데, 가려워서 보니 모기에 물린 부분이 심하게 부어올랐다. 모기 기피제나 약을 사서 발라야겠다는 생각에 다음 장소는 마트로 결정하고, 근처에 있는 fivi마트로 향했다. 20여분 쯤 걸어서 fivi마트에 도착했으나, 모기 기피제를 어떻게 찾는단 말인가. 한글-베트남어가 번역되는 어플을 다운받아서, 직원분에게 '모기'라는 단어를 보여주고, '피하다'라는 단어를 보여줬다. 오오! 우리 좀 통한 듯! 자신있게 내 손목을 끌고 간 직원분이 한 장소에 멈추더니, 텅 빈 진열대를 쳐다보며 이제는 없다는 식으로 말했다. 진열대를 바라보는 내 표정도 텅비었을 것이다.
다들 지카 바이러스 뉴스를 봤나보다.



온 김에 버스 안에서 먹을 간식이나 사자 싶어서, 먹거리를 구경했다. 가격이 예상 외로 상당히 비쌌기에 컵라면 하나와 커피맛 나는 비스켓만 사서 나왔다. 그런데 무심코 산 이 비스켓이 어마무지하게 맛있어서, 사이공 비어와 더불어 나의 여행 동반자가 된다. 이제 딱히 할일이 없어졌다. 뭘할까 고민하다가 여행 전에 검색으로 봤던 하노이 가죽공예샵이 떠올랐다. '하노이 가죽공예' 검색하면 나온다. 친절친절.

어느 블로거 분께서 소개해준 곳이었는데, 위치를 검색해보니 지금 있는 곳과 5분 거리였다. 신나서 구글의 안내에 따라 도착했는데, 이상한 여관만 있고 도무지 찾을 수가 없었다. 로컬 분 10여명 정도에게 주소를 보여주고 물었는데, 다 똑같은 말을 했다.

"고 스트레이트, 턴 라이트."
구글 지도의 오류였던 것. 그냥 물어물어 쉼없이 물어 그들도 지치고 나도 지칠 때쯤 도착할 수 있었다.



종류, 디자인, 가죽 종류, 실 종류 등 원하는대로 만들 수 있는 가죽공예샵이었다. 중국인이 하는 샵같았는데, 주인분은 영어를 잘하는데 어린 알바생은 잘 못했다. 맥북 케이스를 만들거라고하니, 생각하는 디자인이 있냐고 물었다. 대강 그림으로 그려주니, 금새 본을 떠준다. 치수를 정해서 본을 떠주는 것만 해주고, 나머지는 전부 내 몫이다. 그녀가 한번 시범을 보이면, 내가 고개를 끄덕이며 따라하는 강습이 이어졌다.

제대로 못하면, 그녀가 노놉!하고 강하게 고개를 흔들며 다시 시범을 보여줬다. 그럼 난 순하게 아아~하고나서 다시 만들어낸다.


가죽공예는 망치질과 바느질의 향연임을 깨달았다. 가죽을 만진다는 게 꽤나 기분이 좋았다. 바느질이 엉망이었기에 완성도가 높진 않았지만, 맥북에 꼭 맞아서 만족스러웠다. 가격은 강습료, 재료비, 공방이용비 죄다 포함해서 한국돈으로 2만원 정도. 지갑이나 카드지갑같은 작은 사이즈면 좀 더 저렴하게 이용 가능하다.

3, 4시간 정도 만들었나보다. 어느새 사파로 향할 시간이 되어서, 택시를 잡아타고 숙소로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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