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 혼자 게으른 여행 - 베트남 북부 4편
하노이에 대해 열심히 찾아본 게 있다. 바로 '맛집'이다. 나란 녀자, 뭐시 중헌지 잘 알고 있는 녀자.
여행을 하기 전에, 몇 군데 맛집을 구글 지도에 별 표시해두고 여행지에서 놀다보면,
어느 순간 배고플 때 맛집 근처에 있게 되는 그런 기적적인 일이 생긴다.
이런 식으로 굳이 맛집을 찾지 않고, 우연을 가장한 먹연을 즐겼더랬다.
그런데 이번 하노이 여행에서 꼭 가고 싶은 곳이 있었다.
베트남 전통 음식을 부페로 맛볼 수 있다는 'maison sen'이라는 곳. 그런데 무려 '부페'라니!
혼자 맥주거리 목욕탕 의자에 앉아 맥주를 마시고, 레스토랑에서 먹는 것 까지는 괜찮다.
그런데.. 남의 나라까지 와서 부페에 가서 혼자 먹는다라.. 아무래도 즐겁게 먹기 힘들 것 같았다.
3초 정도 고민을 하다가, 동행을 찾아보기로 했다.
이런 방법으로 여행지에서 사람을 만난다는 건 처음이라, 어떨까 궁금하기도 하고 걱정도 됐지만
부페를 먹고 말겠다는 집념이 좀 더 강했다.
베트남 관련 여행 카페에 가입이 되있었기에 동행을 찾는 건 어렵지 않았다.
남겨져있던 카톡으로 연락을 해봤는데 일정이 맞지 않는다.
이 분께서는 하롱베이에서 하노이로 저녁에 돌아오고, 난 저녁 때쯤엔 사파로 가는 버스를 타야한다.
나야 어차피 하노이로 다시 돌아와야하니 다음에 가리라 생각하고,
카톡을 주고받으며 서로 남은 여행에 행운을 빌어주었다.
하노이에서 있었던 이틀을 곱씹으며, 게하 쇼파에 늘어져 사파로 가는 버스를 기다렸다.
시끄럽게 떠들어대던 프랑스 여행자들은 한 봉고차에 실려서 슝 가버렸다.
8시 반 즈음 오기로 한 버스. 그런데 안온다.
뭐 워낙 늦는 일이 허다하다니까, 별다른 걱정없이 기다렸지만 어느덧 9시가 넘어갔다.
똘똘이 스머프를 닮은 게하의 직원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영수증을 보여달란다.
아차, 영수증을 받았던가.. 여기저기 뒤져보는데 없다.
"나 영수증 없는 거 같아."
"뭐? 너 사기 당한 거 아냐?"
"아니야. 너희 게스트하우스 바로 근처인걸. 직원 전화번호까지 받았어."
맛집을 소개시켜줘서 엄지 척!을 해주며 나름 친분을 쌓았던 그녀가 아닌가. (1편 참고..ㅋㅋ)
사기일리가 없다. 웃으며 전화를 해보니, 전화가 '언에이러블' 상태다.
웃음기가 쌱 가셨다. 여행사로 직접 찾아가보니, 문이 닫겨있다.
간판에 적혀있는 홈페이지에 들어가보고, 똘똘이 스머프가 전화까지 해줬는데 다른 곳이다.
"베트남에서 이런 일이 굉장히 흔해. 너 사기당한거야."
"뭐? 바로 옆인데, 어떻게 사기를 쳐? 금액도 크진 않은데?"
"영수증이 없잖아. 어떻게 증명할 수 없어. 잘 챙겨야 해."
"으.. 속상하긴 한데, 웃긴다. 완전 말도 안돼. 황당해 ㅋㅋ"
"여기선 흔해. 방 남았으니까 자고 내일 가."
"알았어."
사파에서 미리 예약해둔 게스트하우스가 예매 취소가 안된다.
버스표와 숙박료를 함께 날렸다. 허허허허. 그냥 웃고만다.
친구들한테 카톡을 돌려서 나 사기당했다! 외치니 다들 엄청 걱정을 한다.
그래봤자 만원 남짓한 금액. 여행 동안 정신차리라는 경고로 받아들이기로 한다.
만나기로 했던 한국분께 카톡하니, 롯데리아에서 너겟을 드시고 있다고 한다.
먹다가 뼈가 나왔다고. 아무래도 이분도 애잔하다.. 내일 맛집에 함께 가기로 했다.
슬그머니 방으로 들어가 다시 짐을 풀고 있으려니 다시금 부아가 치민다.
이럴거면 살갑게 굴지 말지. 그뇬.
'베트남 사기'로 검색해보니, 별일이 다 있다.
침대에 누워 뒹굴거리며 내일 가서 따져야 할 말을 머릿속으로 작문해보았다.
'이럴 때 영어 잘하면 얼마나 좋아. 어버버하지 말고 조목조목 따져야지.
안되면 나 한국에서 슈퍼 파워 블로그라고 글 올릴거라고 협박해야지.'
하고 그들의 간담을 서늘하게 할 별의 별 계획을 세웠다.
물론 내 블로그는 저품질도 아닌 최저품질이다.
잠자기엔 일러서 설렁설렁 걷다가, 상점에 들어가서 말보로를 하나 샀다.
한국에서는 담배를 피지 않는다.
생전 처음 담배를 폈던 건 6년 전 발리에서였다.
내 앞에서 계산하던 외국 여자애가 '말보로 라이트'하고 시크하게 말하는데,
감화감동받아 나도 '말보로 라이트'를 입밖으로 소리내었다.
그 뒤로 쭉 담배를 폈다면, 머리를 쥐어뜯으며 후회할만한 일화였을텐데, 다행히 그 뒤로는 피지 않았다.
말보로 라이트를 핀 다음 날, 레드에 도전해 한 갑 다 폈다가 엄청난 담배 숙취에 시달린 덕분이리라.
뭐든 끝을 더럽게 보면 다시는 시도할 생각을 못한다.
베트남 말보로 레드에는 굉장히 흉악하게 생긴 썩은 이가 프린팅되어 있었다.
한국에도 내년에 도입된단다. 잠시만 쳐다봐도 구역질이 날 만큼, 혐오스러운 걸 보면 효과가 있는 듯.
가격은 1천원 남짓. 6년 전 발리에서와 같은 가격이다.
날 알아볼 사람이 아무도 없는 이 곳. 여행지에서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가끔 한다.
큰 일탈은 소심해서 못하고, 담배 연기에 원래의 나를 조금씩 날려보내자.
기분 야릇하니 좋은것을? 베트남에 있는 동안만 담배피는 여자가 되보기로 한다.
다음 날..
간신히 배낭 구석에서 영수증을 찾은 나는 기세등등해 여행사로 찾아간다.
열심히 생각해낸 영어를 써볼 기회도 없이, 버스 기사의 착오였다고 바로 환불해주었다.
사기가 아니었다는 것 = 어제 그녀의 미소가 선량했는 것,
하루 더 하노이에서 빈둥거릴 수 있다는 거, 곧 한국말로 수다를 떨 수 있다는 것에
단순한 나는 어쩐지 기분이 좋아져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