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 혼자 게으른 여행 - 베트남 사파 1편
(버스 기사 아저씨의 착오로 하루 더 머물게 된 하노이. 그 빤따스틱한 하루를 요약하자면, 카페에서 구한 동행분과 만나 부페먹으러 신나게 갔지만, 공사 중이었다. 애잔.. 근처의 꽌안응온 레스토랑에 가서 배터지게 먹고, 커피숍에서 노닥거리다가 네일과 패티큐어 네일을 하고, 맥주거리에서 신나게 마시다가 야시장을 구경했다. 이 날에 대해서는 하노이 마지막 날과 더불어 적어 보려고 한다. 하노이 놀거리를 전부 풀어볼 생각이니, 마지막까지 읽어주시라- 굽신굽신.)
서울 변두리에 있는 영혼을 집어꺼내 다시금 그때 그 곳, 하노이의 게스트하우스로 보내보자. 때는 4월 말 어느 날. 난 신이 나 있었다. 버스 티켓을 사기당한 게 분명하다고 말했던 똘똘이 스머프에게 나 사기당한 게 아니었다고! 베트남 사람들은 아직 나에게 나이스하다며 떠벌떠벌거렸다. 그런데 같이 기뻐해줄 줄 알았던 똘똘이 스머프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그가 못들었나 싶어서 다시 또박또박 말했지만, 그래서 뭐?라는 반응이다.
어쩌면 어젯밤 슬쩍 권하셨던 사파 패키지를 거절하고 다른 곳에서 표를 끊어서일지도 모르겠다. 사실 아침에 게스트하우스에서 버스 표를 사려고 했지만, 모든 표가 매진되어서 살수가 없었다. 스탭분이 오랫동안 이곳저곳 전화를 해봤지만, 전부 매진 상태. 오는 월요일이 베트남의 휴일이라서 표가 없는 거 같다고 안타까워 한다. 여행지에서 로컬과 친해지는 걸 좋아하는 나에겐 반가운 소식이었지만, 표가 없다니 오싹했다.
더 이상 하노이에서 머물 순 없지 않은가. ㅋㅋㅋ 이러다 하노이 맥주는 내가 전부 동낼지도 모른다. 심히 걱정하다가 혹시나해서 들른 여행사에 조심스럽게 사파행 티켓이 있냐고 물어봤다. 전혀 문제가 없다는 듯 쿨하게 표가 있단다. 뭐랄까... 베트남.. 나에겐 넘나 미스테리한 곳...
그렇게 밤이 되어 미스테리한 곳에서 미스테리한 버스를 기다리고 있는데, 같이 버스를 기다리던 미스테리한 로컬 여자분이 말을 걸었다. 라임 좋고~
베트남 호치민에서 일을 하는 회사원인데, 휴가를 맞이해서 사파로 가는 길이라고 하신다. 사파 소수 민족의 집에서 홈스테이를 할 생각이시고, 굉장히 기대된다는 말을 하셨다. 베트남 사람에게도 소수 민족은 익숙하지 않은 존재인 듯, 이것저것 묻는 나에게 잘 모르겠다고 본인도 홈스테이는 처음이라고 고개를 저으셨다.
하노이가 참 정신없었다는 나에게 웃으면서 호치민은 추천하지 않겠다고 말한다. 하노이보다 더 정신없단다. 곧 봉고차가 와서 우리를 실어갔고, 버스 앞좌석에 같이 나란히 앉은 내가 아슬아슬 끼어드는 사람과 오토바이에 놀라 기괴한 감탄사를 날릴 때마다 그녀는 매우 즐겁게 까르륵- 웃었다. 유일하게 아는 한국어를 선보이셨는데, "저기요~"라고 하셔서 빵터졌다. 모두에게 쓸 수 있는 호칭이라고 한국 사람이 가르쳐줬단다. 맞는 말이긴 하다. 좀 더 높은 호칭으로 부르는 게 좋겠다고, "님아~"를 가르쳐드렸다. 이후로 나를 "kim~" 혹은 "님아~"로 부르셨다.
그 작은 봉고차는 하노이를 돌면서 끊임없이 많은 여행객을 태웠다. 자리가 없어서 유럽에서(아마도) 온 여자 두 분은 트렁크에 실려탔는데, 내릴 때 보니 머리가 전부 산발로 헝클어져 있었다. 아마도 그들의 머릿속도 꽤나 복잡해졌으리라. 봉고차에서 내린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 티켓을 교환받고 버스에 탑승할 수 있었다.
약 5-6시간 정도 걸려 사파로 향하는 슬리핑 버스. 2층으로 되어있고, 좌석이 거의 180도로 넘어간다. 생각보다 시설이 너무 좋아서 상당히 편하게 갔다. 그동안 탄 여러 나라의 '말로만' 슬리핑 버스 중 단연 최고였다.
사파행 슬리핑 기차도 있다고 하는데, 한번 갈아타야하고 비용도 조금 더 비싸다. 그런저런 이유로 사파로 가시는 분께는 슬리핑 버스를 추천한다.
사파는 어떤 곳일까 내심 기대를 하며 곯아떨어진 후, 해가 떠오를 때 쯤 도착했다. 4시-5시 쯤 도착한 듯 한데, 버스 기사는 사람들을 깨우지 않고 그대로 둔다. 해가 떠오를 때까지 안전하게 자라고 그냥 두는 것이다.
5시 반쯤 되었을까. 내리라는 안내 방송이 나와서 다들 우루루 버스에서 내렸다. 여러 버스에서 동시에 내린 여행객과 여행사 사람들로 정신이 없었다.
내가 예약한 숙소는 라오까이 타 반에 있는 '마이트라 게스트하우스'다. 라오까이는 사파 시내와는 차로 30분 정도 떨어져있는 소수민족의 마을로, 중국 원난성과 국경이 맞닿아 있는 베트남 최 서북쪽 도시이다. 30분 간 어떻게 이동할 것인지에 대해 많은 고민을 했다. 가장 안전한 방법은 우버 택시를 불러서 타는 것이었는데, 어플로 확인할 때 가능한 택시는 없었다. 혹시라도 라오까이로 가는 사람을 찾는다면 동행해야겠다고 결심하고, 여기저기 물어봤으나 그 머나먼 길을 떠나는 이는 도무지 찾을 수 없었다. 대부분 패키지를 예약한 듯, 가이드들이 모시러 온 차를 타고 사람들이 삽시간에 사라졌다.
마음이 급해진 나는 한국 사람처럼 보이는 이들이 있어 반가워 말을 걸었는데, 일본 사람들이었다. 그들도 시내까지만 갔는데, 어차피 가는 길이고 가이드와 아는 택시 기사라서 안전할듯해 동행하기로 했다. 택시를 타고 허접한 일본어로 이런저런 대화를 이어가는데, 택시 기사와 가이드는 베트남 사람, 일행 중 한 명은 태국 사람, 나머지 한 명은 일본 사람, 그리고 나는 한국 사람이었다. 위아더 월드!
그런데 어쩐지 다들 일본어로 대화하고 있었다. 영어를 할라치면 그녀들이 너무나도 정색해서 쓸 수가 없었다. ㅋㅋ 그래, 그 맘 내가 알지. 그녀들은 4박 5일 간 베트남을 여행 중이고, 사파는 패키지로 1박 2일만 머물 생각이란다. 오늘은 트레킹과 사파 시내를 구경할 생각이라고.
패키지로 여행하지 않는다는 내 말에 모두가 화들짝 놀래서, 부디 요로시꾸 조심하라는 당부의 말을 여러 번 하였다. 이때 난 내가 뭔가 실수를 한 줄 알았지만, 베트남 여행 내내 패키지없이 잘 다닐 수 있었다. 그저 선택의 문제인듯 하다.
그녀들은 요루시꾸 몸조심하라며 내렸고, 택시는 꼬불꼬불 산길을 끊임없이 달렸다. 사실 사파에 대해 큰 기대없이 왔는데, 택시를 타고가는 내내 펼쳐진 장관은 기대 이상으로 아름다웠다. 높은 산맥이 끊임없이 펼쳐져 있었고, 계단식 논과 단장한 소수민족들의 모습은 나에겐 굉장히 낯설고 독특한 느낌으로 다가왔다. 과연 '아시아의 알프스'로 불릴만 했다.
마이트라 게스트하우스에 도착하니, 한 서양 할아버지가 니가 그 코레안이냐고 왜 어제 안왔냐고 반긴다. 자신을 앤드류라고 밝힌 그는 자신은 호주인이며, 소수민족 여자분과 사랑에 빠져 결혼해 이곳에서 게스트하우스를 운영하고 살고있다고 소개했다. 말도 안되게 친절한 그는 (사실 좀 쉬고싶었던) 나를 앉혀놓고, 몇 십분 동안 라오까이의 지리와 트레킹 코스에 대해 지도까지 그려가면서 설명해주었다.
사실 그는 나에게 큰 좌절 그 자체였는데... 그가 말하는 영어의 반의 반도 알아듣지 못했던 것이다...
여행하면서 눈치만 늘어서 의사소통을 하는데 큰 어려움이 없었던 나였다. 그는 내가 길게 대화한 최초의 호주인이라 그의 호주 발음이 익숙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 하여튼 나는 아주 간단한 그의 말도 못알아 들어서, 이후에 만난 외국인 친구가 '영어'를 '영어'로 통역해주기도 했다.
난 어쨋든 그곳이 한 눈에 마음에 쏙 들었다. 말도 안되는 아름다운 장관을 보면서 식사를 할 수 있고, 2층에는 해먹이 있어 널브러져 푹 쉴 수 있다. 그리고 정말 놀라운 점은 '빠른 와이파이'였다. 과장없이도 한국의 우리집 보다 빨랐다. 지쟈스-! 이곳은 베트남 깡촌 중에도 소수민족들이 사는 깡촌 오브 깡촌이라는 것을 다시 상기해볼 때 정말 놀라운 점이었다. 이곳에서 꽤나 많은 업무를 끝내고(나는 프리랜서다..), 클라이언트에게 '디지털 노마드 족'라는 호칭을 가볍게 얻었다. 하여튼.. 알아듣지 못한 그의 트레킹 강의는 드디어 끝났고, 아침을 주문해 먹었다. 그의 아내와 아내의 동생이 준비해주는 이곳의 아침, 점심 식사는 3달러, 부페인 저녁은 6달러로 사실은 비싼 축에 들었지만 맛은 좋았다.
식사를 하고 쉬려고하는 나에게 그는 혼자 트레킹하지 말라고, 곧 좋은 친구를 소개시켜 주겠다고 했다. 사실 혼자 걷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지만, 성의가 고마워서 알겠다고하고 해먹에 누웠다. 하루 전에는 정신없는 교통체증과 매연에 찌들어 있었는데 이젠 살짝 고개를 돌리면 안개 낀 아름다운 산과 청아한 풍경 소리가 들려온다. 구름 위에 떠있는 듯 편안하고 따스한 해먹 속에서 흔들리며 잠들며, 이곳이 꿈인건지 현실인건지 난 좀 헷갈렸던 거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