덩굴장미길과 나

해마다 나를 설레게 하는 길이 있다.

by 키므네

정말 좋아하는 길이 있다. 그건 양평과 용문을 잇는 옛 도로. 옆에는 흑천이 잔잔하게 흐르고 있고, 위로는 드넓은 하늘이 펼쳐져 있다. 그리고 맞은편 도로 담장에는 초록색 덩굴이 자란다. 특히 가장 아름다운 때는 5월이다. 5월이 월말을 향해갈수록 덩굴은 가장 얇은 롤로 말은 뽀글 펌처럼 점점 더 풍성해진다. 요즘 몇 송이가 피었다. 한 번만 지나가는 사람은 이건 예고편이라는 걸 모를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 모든 덩굴이 다 장미란 것을 알고 있다. 나 같은 찐 팬은 본편을 기대하며 설렌다.

차로 그 길을 지나는 시간은 단 몇 초. 나날이 통실해지는 덩굴을 날마다 확인한다. 아이를 등원시키고, 일부러 빠른 터널 길 대신 그 길로 돌아온다. 길을 잘 못 들어도 그 길로 돌아와야지 생각하면 위로가 된다. 딴생각을 하다 그 길로 들어가는 길을 놓쳤을 때는 아쉽다.


나처럼 생각하는 사람이 나뿐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양평군청에 작년에 양평만화공모전 상 받으러 가서 대기할 때 다른 수상자의 어머니를 만났다. 용문의 그 덩굴장미길을 알고 계셨다. 우리는 그 길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이야기했다.

작년 5월, 공사를 하느라 그 길을 막아놨던 적이 있다. 나는 공사가 언제 끝나나 가보고, 아직도 안 끝났네 실망하고 그랬다. 멀리서 덩굴장미가 차오르는 걸 보며 조마조마했다. 그런데 장미가 딱 만발했을 때! 기가 막히게 공사가 다 끝났다. ‘자, 장미 피기 전에 빨리 빨리 끝냅시다.’라는 마음으로 공사하는 모습을 상상하며 혼자웃었다. 역시 양평사람은 이 덩굴장미길을 아는구나.

요즘은 이 길이 잘 보이는 곳에 콘크리트 정글이라는 대형 카페도 생겼다. 분명 이곳 주인은 이 곳 땅의 뷰를 보고 샀으리라 확신한다.





자연을 그리고 싶었다. 그런데 꽃이 핀 걸 그리려 하면 지고 있었다. 봄이 온 걸 그리려 하면 여름이 오고 있었다. 꺼내지도 못한 이야기는 너무 늦어버렸다. '아… 또 놓쳐버렸네.'

매일 변하는 자연을 뒤쫓아가기 바빴다. '자연은 나를 기다려주지 않는다'라는 생각에 펑펑 운 밤도 있었다.

얼마 전 밑미 소식지 워크숍에 홀린 듯이 참여하게 되었다. 그때 만난 하빈님이 이런 내 이야기를 듣고 한 말이 생각난다.

“먼저 마중 나가는 마음으로 그리면 어때요? ”

지난해 이야기를 그리는 건 별로 내키지 않았는데, 먼저 마중 나가는 마음으로 그린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편해졌다. 기다리는 시간도 설레고, 다시 만날 때 더 기쁘게 만날 수 있을 것 같았다.

23년 5월에 나의 덩굴장미를 먼저 마중 나간다. 다시 돌아올 장미에게 설렘으로 쓴 글과 그림을 선물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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