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 화장실에 방아깨비가 산다

잡을 용기는 없는데 키울 용기는 있다

by 키므네

나무랑 마당에서 조금 놀고 들어왔다. 아기변기에서 쉬하려고 바지를 내리는데 나무 무릎에 연두색 큰 무언가가 붙어있다. 바지를 반쯤 벗은 나무와 나는 동시에 끼야아아악! 소리를 지르며 호들갑을 떨었다. 정신을 차리고 자세히 보니 큰 여치 같았다. 십 센티도 넘어 보인다. 화장실 문턱에서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었다. 그건 우리도 마찬가지였다. 어떡하지?


“누가 좀 잡아 봐. 여보?”

“아니 아니, 난 못 잡아.”

남편이 손사래를 쳤다.

“봄아, 너는 곤충 잘 잡잖아.”

“아니, 이건 너무 커.”


맞다. 너무 크다. 나는 저 가느다란 다리로 갑자기 확 튀어 오르는 게 무섭다. 남편이 작은 빗자루로 잡아보려다 여치가 화장실 문틈으로 들어가 버렸다. 아… 더 잡기 힘들겠다.


여치는 화장실 물청소 하는 호스가 길쭉해서 원래 살던 곳 느낌이 나는지 거기에 붙어있었다. 화장실에 볼일 보러 들어가면 호스 뒤쪽으로 돌아 숨었다. 다리가 너무 길어 다 보이는 게 귀여웠다.


봄이에게 이름을 붙여보라고 했더니 “뿌미”라고 했다.

봄이가 변기 뚜껑을 열다가 여치가 손에 닿았다며 소리를 질렀다. 봄이는 요 며칠 이층 화장실로 간다.

바닥에 손으로 비벼만 듯한 갈색 휴지 같은 게 떨어져 있었다. 처음엔 누가 똥을 세게 닦았나 했는데 그게 여치 똥이었다. 화장실에 갈 때마다 똥 개수가 늘어났다.



밤에 나무가 곤충도감을 찾아서 읽었다. 우리집 화장실에 있는 여치를 찾는데 놀랍게도 여치가 아니었다. 방아깨비였다. 나무가 화장실에 도감 책을 들고 가서 방아깨비를 한번 보고 책 사진 한번 보고 말했다.


“진짜 똑같네? 며치 똑같다!”


나무에게 여치가 아니라 방아깨비였다고 말해줬지만 여전히 아니야, 며치야.라고 말했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 화장실에 갔는데 방아깨비가 여전히 있다. 화장실 한쪽 구석에서 내 쪽을 바라보고 있다. 어제까진 그래도 힘이 넘쳐 보였는데 이제 똥 개수도 안 늘어나고 힘이 없어 보인다. 안쓰럽다. 용기를 내 살살 잡아서 풀어주려고 휴지를 양손에 가득 들고 다가갔다.


“괜찮아. 풀어주려는 거야.”


했는데 조금 움찔거린다. 이러다 펄쩍 튀어 오를 것 같다. 휴지를 내려놓고 방아깨비 먹이를 검색했다. 백과사전 방아깨비 사진이 죽은 표본을 핀으로 찔러 놓은 사진이라 조금 끔찍하다고 생각했다. 방아깨비가 뭘 먹는지가 알고 싶었는데. 누가 그런 걸 알고 싶어 하냐는 듯이 메뚜기목 메뚜기과라던가, 크기와 서식지 따위만 보인다. 블로그를 찾아봤더니 아이들이 잡아와서 곤충채집통에 넣고 키운 이야기가 있다.


‘벼과의 식물, 강아지풀을 좋아한다.’


강아지풀. 그런 거야 널려있지. 그래서 우리 집이 서식지였구나. 강아지풀을 구하러 가려는데 남편이 비염에 목에 담 걸린 것 같다고 잠을 못 잤다고 주물러달래서 한참을 주물러 줬다.


“여보, 방아깨비 먹이를 줘야 해. 죽을 것 같아.”

“내가 더 죽을 것 같아.”


밤새 또 야구 예능 보다 잔 것 같다.


“그러니까 여보도 건강 챙기면서 몸을 혹사하지 말라고. 어떻게 살라고?”

“바르게…”


잔소리 좀 하면서 조금 더 주물러줬다.


마당에 나왔다. 마당 관리는 하지 않는다. 온갖 잡초들이 정글처럼 주차장을 덥수룩하게 뒤덮었다. 이름 모를 초록 풀들 사이에 보송보송한 강아지풀이 보인다. 기쁘다.


제일 크고 잎이 많이 달린 강아지풀을 하나 뽑았다. 제법 잎이 많이 달렸다. 방아깨비가 얼마나 먹을지 모르겠지만 일단 한 줄기만 가지고 들어온다. 이슬도 먹으니까 강아지 풀에 수돗물도 뿌려줬다. 화장실에 가서 방아깨비 옆에 강아지풀을 벽에 기대 세워줬다.


“방아깨비야, 먹어.”


얼은 것처럼 움찔 만 하고 먹지 않는다. 내가 지켜봐서 그런가 싶어 자리를 피해 줬다. 화장실 불은 안 보일까 봐 켜두었다.


먹었을까? 글 쓰다 확인하러 갔는데 일단 잎 위에 올라가 있는데 또 일시정지다. 방아깨비 너 예민하구나.


방아깨비를 잡을 때 다리를 잡으면 방아를 찧는 것처럼 움직여서 방아깨비라는데, 아까 블로그에 보니 다리를 잡으면 부러진다고 절대 다리를 잡지 말라고 쓰여 있다. 아까 어설프게 잡지 않아서 다행이다. 방아깨비의 조상 대대로 사람을 만나면 다리를 못쓰게 되었다. 이름까지 방아깨비라니 인간 참 잔인하다. 봄이가 붙여준 뿌미라고 부르는 게 낫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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