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완 방아깨비를 키워본 적 있나요?

전 있어요. 이름은 뿌미.

by 키므네

집에 들어갈 때 붕어빵이나 군밤을 사 오는 아빠처럼 외출했다 돌아올 때 강아지풀을 뽑아 들어갔다.


잎이 몇 개 안 남은 강아지 풀 옆에 새 강아지 풀을 놓아주었다. 바닥에 새로운 똥이 몇 개 더 생겼다. 뿌미가 이 마음을 아는지 조금 폴짝 뛰었다. 진짜 애완 방아깨비 같았다.


어머니께 아무도 방아깨비를 잡지 못해 키우고 있다고 말했다. 우리 중 가장 용감한 어머니가 강아지풀 줄기에 앉은 뿌미를 조심히 옮겨 마당에 풀어주셨다.


원래 있던 곳에 강아지풀 줄기를 휙 던지며 “잘 가라!” 했다. 나무랑 같이 “안녕, 잘 가!” 라며 한참을 손을 흔들었는데 뿌미는 한동안 그 강아지 풀 위에 가만히 있었다.


잠시 후, 남편이 주차장이 너무 지저분했는지 갑자기 이발기 같은 농기계로 잡풀들을 마구 잘라서 깜짝 놀랐다.


“우리 방아깨비 안 잘리게 조심해!”

“괜찮아. 다 보여.”


뭐가 보인다는 건지. 방아깨비랑 풀색이랑 똑같은데. 뿌미가 무사히 잘 도망갔기를 바랬다.


저녁에 화장실에 주인이 사라진 물그릇과 시들해진 강아지풀 줄기를 치웠다. 물호스로 바닥에 물을 쏴아 뿌렸다. 뿌미가 싼 똥들이 물에 떠내려가 배수구에 모였다. 휴지로 배수구를 훑어서 변기에 버렸다. 화장실이 깨끗해졌다. 방아깨비 같은 건 산 적이 없던 것 같은 평범한 화장실이 되었다. 어쩐지 나는 신분세탁한 것 같은 찝찝한 기분이 들었다. 살인 용의자가 방의 핏자국을 모조리 없앤 완전범죄 현장도 떠올렸다.

이 모든 일을 글로 써놔서 참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적지 않으면 이렇게 말끔하게 아무것도 남지 않으니까.


난 방아깨비를 화장실에서 키워본 적이 있다. 이름은 뿌미였다.


방생 직후. (뿌미를 찾아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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