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문소로일기> 첫 북토크 후기
초록색 골지 5부 니트를 입고 밤색 양말을 신었다. 용문산 천년은행나무 같은 노란색 떡볶이 니트 재킷을 입었다. 거울에 비추어보면서 잠깐 생각했다.
‘북토크에서 한 마디도 안 해도 될 정도로 이미 완벽한 용문소로로군!’
북토크는 처음이다. 북토크는 한 번 밖에 안 가봐서 잘은 모르겠지만 이미 <용문소로일기>를 읽으신 분들이 오셔서 읽은 소감을 나눈다는 게 책을 쓴 사람으로서 가장 기대가 되었다. 북토크에 내가 모르던 사람들이 내 책을 읽고 모였다. 내가 책을 쓰게 된 계기와 독립출판 과정에 귀 기울였다. 몇 분이 용기와 위로를 얻었다고 말했다. 게다가 내 책에 빼곡히 붙인 인덱스 스티커까지 보게 되다니! 정말 감동이었다. 책을 쓰지 않았다면 절대로 일어나지 않았을 일이다.
자신의 이야기를 담은 책의 초초초초초본, 작은 진도 만들었다. 몰입하는 이들. 그 20분 남짓의 적막이 좋았다. 모두 다 하고 싶은 이야기를 품고 있다. 시작하는 방법을 모를 뿐. 자신의 책 초본을 발표하며 누군가는 생기를 띄었고, 누군가는 눈물을 흘렸다.(사실 모인 사람반 이상이 울었다.)
북토크는 예정된 시간이 한참 지나고 나서야 끝났다. 책 사인회까지 했다. 교보문고에서 사인회 하는 작가까지는 아니어도 북토크에서 사인회 하는 작가는 되었다.
이유 없이 일어나는 일은 없다. 돌아보니 내가 겪은 무기력과 번아웃은 누군가에게 용기와 위로를 주기 위해 꼭 필요한 일이었다. 나도 그래, 나도 그랬어의 힘. 나만 겪는 게 아니라는 사실이 삶의 무게를 줄인다. 눈물에 눈물을 더해 삶의 온도를 높인다. 우린 기쁨만이 아니라 더 많은 좌절과 슬픔을 공유해야 한다. 그럴수록 사람은 약해지는 것이 아니라 더 강해진다. 책은 그런 연대를 만들기 아주 좋다. 책을 읽는 것만으로 혼자가 아닌 우리라는 연대가 생긴다.
한 북토크에서 ‘언젠가는 저도 제 책을 쓰고 싶어요.’라고 말했던 23년 봄의 나는 알지 못했다. 그로부터 6개월 뒤에 책을 낼 줄. 1년 반 뒤엔 북토크를 하게 될 줄. 내 책으로 용기를 주는 사람이 될 줄. 오늘 이 자리의 누군가도 이렇게 전해받은 용기로 책을 쓸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면 가슴이 벅차다.
‘아, 책 쓰길 정말 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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