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을 그릴 수 없는 웹툰 작가의 슬픔

완벽주의는 지우개 똥만 한 움큼 쌌다

by 키므네

만화를 그리고 싶은데 그리기 싫었다.

줄곧 만화로 삶을 그려왔다. 학교와 직장을 다니며, 결혼하고, 두 아이를 낳고 키우면서.

계속 그렸던 건 그게 내가 하고 싶고, 잘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라 믿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만화 한 편을 완성해 올리는 건 뱃속에 알을 품었다가 낳는 일 같았다. 수년간 알을 낳는 과정은 점점 더 길고, 고통스러워졌다. 선 하나도 맘에 들 때까지 열 번이고 스무 번이고 다시 그어야 해서? 아니, 차라리 그리는 건 나았다. 나에게 가장 어렵고 오래 걸리는 일은 ‘뭘 그릴 지를 정하는 일’이었다. 그릴 게 없는 게 아니었다. 오히려 소재는 넘쳤다. 일상툰을 그리는 사람에게 사는 일은 실시간으로 소재를 쌓는 일이었다.


인스타 피드에는 재밌는 만화가 쉴 새 없이 쏟아졌다. 세상에 나보다 잘 그리는 사람은 차고도 넘쳤다. 단위를 셀 수도 없는 좋아요가 부러웠다. 나는 지금보다 더 완벽하고 재밌는 만화를 그려야 했다. 내 안에 자기 검열자는 점점 더 엄격해졌다. 아무거나 그릴 수가 없었다. 만화가 될지도 모르는 내 삶의 이야기마다 야박한 예상 점수를 매겼다. 뭘 그릴지 정할 때의 나는 겉으로 보면 그냥 노는 것 같았다. 하지만 머리로는 겪은 일들을 수십 번씩 그려보고 있었다. 머리가 아프고, 손도 아팠다. 손은 그림 때문이 아니었다. 현실 도피하느라 휴대폰을 오래 해서 손목터널증후군이 종종 왔다.


뭘 그릴 지를 정하고 육아 틈틈이 그렸다. 그런데 속도가 너무 느렸다. 이제 한두 컷 겨우 그린 내 만화는 너무 초라하고 보잘것이 없었다.

“로봇청소기가 뭐라고 그림까지 그리고 있나...”

라며 의욕을 잃기 일쑤였다. 그런 마음의 좌절을 몇 번쯤 이겨내며 겨우 한 편을 올렸다. 그때서야 나는 쉴 수 있었다. 단, 그 하루만. 다음 날 다시 똑같은 괴로움이 반복되었다.


밤에 자기 전엔 숨이 잘 안 쉬어졌다. 꿈에서는 내가 학교에서 시험을 보고 있거나, 예전 회사에서 전혀 준비가 안 된 프레젠테이션을 앞두고 있었다. 왜 자꾸 그런 꿈을 꾸는지 알 수 없었다. 아마 만화 한 편을 올리는 일을 세상에 나를 증명하는 시험처럼 느꼈던 것 같다. '좋아요 수‘가 마치 나의 가치 같았다. 나는 점점 무기력해졌다. 내 삶에서 내가 바꿀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는 것 같았다. 내 안에 질문이 꿈틀댔다.

‘나는 이렇게 살다 죽는 건가?’ ‘죽는 날까지 이렇게 만화를 몇 편이나 그리고 죽을 수 있을까?’ ‘나는 이게 끝인가?’

이렇게 계속 버겁게 만화를 그리고, 아이를 키우고, 나이만 먹어가는 삶. 미래가 기대되지 않았다. 매일 아침 눈 뜨는 게 기대가 되지 않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엄마는 “너는 어릴 때부터 맨날 그림 그릴 걸 가지고 다녔지.”라고 말했다. 작은 수첩과 연필만 있으면 행복했던, 마냥 그림을 그리는 게 좋았던 7살 아이는 어디로 갔을까?

어느 날, 깨달았다. 그 애증의 만화가 코로나 이후 나에게 아무 수익도 가져다주지 않았다는 것을. 억울했다. 나는 만화가가 내 직업이라 생각했다. 근데 즐겁지도 않은 데다 돈까지 못 벌다니!




집에서 컴퓨터로 할 수 있는 일은 다 찾아본 것 같다. 그 가운데 내가 선택한 것은 구글 애드센스.(티스토리 블로그에 올린 글로 구글 광고 수익을 얻는 일.) 영화 리뷰를 보름이상 매일 꼬박꼬박 올려야 했다. 아이들이 모두 잠든 시간이 가장 집중하기 좋았다. 매일 새벽 4시 반에 일어나 내가 봤던 영화의 리뷰를 썼다. 구글 애드센스로 얻은 수익은 없었다. 승인만 받고 더 이상 하지 않았기 때문에. 하지만 수익보다 더 중요한 걸 깨닫게 해 주었다.


‘내가 만화 말고 다른 걸 할 수 있네. 내가 글은 그림보다 시간이 덜 걸리네. 새벽에 일찍 일어나면 내 시간을 가질 수 있네. 내 생각을 글로 쓰는 걸 좋아하는구나. 좋아요가 많지 않아도 충분하구나. 될 때까지 하면 되네.’


그렇게 글을 쓰고 책을 읽으면서 나도, 내 삶도 변할 수 있음을 깨달았다. 나도 누군가에게 좋은 영향을 주는 삶을 살고 싶었다. 잊었던 내가 떠올랐다. ‘교보문고에서 사인회 하는 작가가 되고 싶어.’라는 꿈을 품었던 교복 입은 나를.

아침마다 많은 자기 계발서에서 추천하는 ‘꿈 시각화’를 했다. 눈을 감고 상상했다. 서점 베스트셀러 코너 앞에 서서 내 글과 내 그림이 들어간 책을 보았다. 아무 책이나 펼치고 사인하는 척했다. 사인 문구도 매일 달랐다. 내 맞은 편의 사람이 “작가님 책을 읽고 제 삶이 변했어요.”라고 말하면 같이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감사하고 감격스러웠다. 나는 마침내 내 미래가 기대되기 시작했다. 매일 새벽 5시에 눈 뜨는 게 설렜다.




그런데 내가 글을 본격적으로 써야겠다 마음먹자 아주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아무것도 쓸 수 없었다. 분명 머릿속으로는 괜찮은 글이 될 것 같은 이야기가 있었다. 하지만 막상 쓰고 나면 ‘이게 뭐야?’ 싶었다. 글은 내 생각보다 훨씬 형편없었고, 부끄러웠다. 그건 내가 나의 위대한 꿈에 절대로 닿을 수 없다는 증거처럼 보였다. 글쓰기가 두려웠다. 그림 그리기에서 도망 다니던 나는 다시 글쓰기로부터 도망 다니고 있었다. 결국 가장 하고 싶은 일이 가장 두려운 일이었다.


스스로는 도통 쓰려고 하지 않아 도서관에서 4주간 글쓰기 강의를 들었다. 60분 동안 에세이를 쓰는 시간이 있었다. 계속 썼다 지우기만 반복하다 보니 15분 남았다는 강사님의 말에 화들짝 놀라 겨우 완성만 해서 냈다. 책상 위의 지우개 똥을 다 모으니 한 움큼이었다. 완벽하게 하지 못할까 봐 두려운 마음이 싼 지우개 똥을 참담한 마음으로 치웠다. 그리고 깨달았다.

‘이 완벽주의를 이겨내지 못하면, 나는 만화든 글이든 하고 싶은 건 아무것도 못 하겠구나.’


내가 만든 두려움에서 자유로워지고 싶었다. 마이클 투히그, 클라리사 옹이 쓴 <불완전한 완벽주의자를 위한 책>에서 이런 말이 나왔다.


“당신은 당신이 원하는 일을 뭐든 할 수 있는 상황이 두려운 것이다.”


뒤통수를 맞은 느낌이었다. 그런데 생각할수록 맞는 말이었다. 스스로를 짓눌러왔던 무게가 사라지면 자유가 주어진다. 그러나 그건 그동안 내가 살아온 방식이 아니라 전혀 알 수 없는 미지의 세계이다. 겁이 덜컥 난다. 안전지대에 머물고 싶은 마음이 불쑥 올라온다. 어느 날, ‘굳이 어디 올리지 말고, 그냥 이렇게 혼자 책 읽고 그림 그리고 사는 삶도 괜찮지 않을까?’ 이런 교묘한 생각이 들었다. 그동안 내 안에 타인의 평가를 두려워하는 마음이 얼마나 컸는지 깨달았다. 그 책에 또 이런 말이 나온다.


“자기 친절을 향한 혐오감 속에는 스스로 충분히 훌륭하다 믿고 세상과 교류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자리 잡고 있을 수 있다.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좋아하고 심지어 사랑하는 것이야말로 당신이 그토록 피하고 싶은 위협적인 일인 것이다."


나는 지금, 있는 그대로의 나를 사랑하는 연습을 하고 있다. 두려움을 넘어 진짜 내가 되는 일은 규칙이 없다. 오히려 더 엉망이 된 것처럼 보일 때도 있다. 아직 두려움에서 완전히 자유로워진 건 아니다. 하지만 누군가의 인정이 아닌 나의 인정만으로 충분하다는 편안한 마음이 드는 때가 많아졌다. 그땐 이런 생각이 든다.


'어? 진짜 내 맘대로 살아도 되는 거였어?'


나는 오랜 세월 수족관에 갇혀 있다가 처음 바다에 오게 된 돌고래다. 매일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는 돌고래. 머리와 꼬리, 지느러미의 퍼덕거림과 물살을 느낀다. 용기를 내 내가 머물던 수족관의 크기를 자꾸 조금씩 넘어가 본다. 진짜 바다에서 아무 두려움 없이 완전히 자유롭게 헤엄치는 나를 꿈꾸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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