왠지 억울하고, 쉽게 화가 났다

별로 큰 힘든 일도 없는데 나는 왜 이렇게 지치고 힘들까?

by 키므네

왠지 억울하고, 쉽게 화가 났다.

아이들과 우당탕 하루를 살았다. 밤에도 더 놀고 싶어 하는 두 아이를 겨우 달래서 재우고 나면, 다음 날 내 체력과 정신력까지 다 끌어다 쓴 기분이 들었다. 껍질은 있지만 속이 텅 빈 것 같아, 제일 쉬운 것들로 나를 채워 넣었다. 드라마와 유튜브를 달리듯 정주행 하고, 조금 전까지도 나에게 필요한지 몰랐던 물건들을 주문했다. 수고한 나에게 주는 위로와 보상이라며. 나를 위한 무언가를 하는 것 같은 느낌을 소비했다. 하지만 억울한 마음은 밑 빠진 독처럼 채워도 채워도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았다. 어느 날은 어두운 밤에 밝은 화면을 보다가 잤고, 어느 날은 아예 창밖이 밝아지는 걸 보고 깜짝 놀라서 잤다.

아침은 늘 피곤하고 다급했다. 아이들 등원 시간 좀 전에 겨우 눈을 뜨고, 허둥지둥 아이들을 챙겼다. 지난밤을 후회하고 자책했다. ‘오늘은 꼭 일찍 자야지.’ 하지만 밤이 되면 손가락이 홀린 듯이 움직여 또 어제 같은 밤을 보냈다.

정작 내가 하고 싶은 일이라 생각했던 만화는 외면했다. 그림을 그리는 게 전처럼 즐겁지 않았다. 잘하지 못할까 두려워서 손으로 못 그리고, 머리로만 괴롭게 그렸다.




다들 그렇듯이, 겉보기엔 그럭저럭 사는 것 같았다.

뜸하긴 해도 만화를 올리고 있고, 아이들도 잘 크고 있고, 가끔 식구들과 맛있는 걸 먹고, 가끔 좋은 곳에도 가고. 그리 나쁘지 않아 보였다. 그런데 속으로는 꼭 좀비 같았다. 나는 형체를 알아볼 수 없게 곪아가고 있었다.

‘별로 큰 힘든 일도 없는데 나는 왜 이렇게 지치고 힘들까?’

왜 내가 자주 이유 없이 억울하고, 화가 나는 감정에 휩싸이는지 알 수 없었다.

모든 것에 무기력했다. 내 삶인데 내 힘으로 바꿀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는 것 같았다. 집을 치울 기력도 없었다. 허리를 구부려 바닥에 흐트러진 레고 블록을 주울 힘도 의지도 남아있지 않았다. 관절에 끈적한 접착제라도 붙어있는 것 같았다. 쩌억 쩌억. 무겁게 움직이며 하루를 버텼다. 아이들은 키워야 하니까. 해야 하는 일로만 채워진 낮. 허망한 것을 넘치게 소비하고 후회하는 밤. 어제와 같은 오늘, 오늘과 같은 내일. 이미 결말을 알고 보는 영화처럼 내 미래가 하나도 기대되지 않았다. 내 안에 질문이 떠올랐다.


난 이렇게 살다 죽는 건가?
이게 내 끝인가?


어느 날 아침이었다. 나는 나가기 싫었는데 나무가 아침 산책을 하자고 자꾸 잡아끌었다. 어쩔 수 없이 동네를 산책하다가 이웃집 아주머니를 만났다.

“봄이 엄마, 봄이(첫째)는?”

“어린이집이요. 얘도 곧 갈 거예요.”

내 대답에 아주머니가 깜짝 놀라며 말했다.

“에? 그럼 봄이 엄만 집에서 뭐 해?”

“저야… 일하죠!”

순간적으로 얼굴에 피가 몰리는 느낌이 들었지만, 당황한 기색을 감추며 대답했다.

“무슨 일?”

“만화도 그리고…”

“아, 그래?”

싱겁게 끝난, 아무것도 아닌 대화였다.

하지만 “만화도 그리고…”라고 말할 때, 나는 내 대답이 얼마나 비루한지를 느꼈다. 아주머니가 생각한 ‘일’은 분명 ‘돈을 버는 일’을 말한 것이었으리라. 그 대화로 깨달았다. 내가 만화로 마지막으로 돈을 벌었던 게 코로나 전이었다는 걸.

‘나는 매일 괴로워하면서 만화를 그리고 있는데, 다른 사람에게 일이라고 인정도 못 받다니!’ 짜증이 확 났다.


게다가 그 무렵 남편은 번아웃이 왔다. 남편은 열정적인 교사라 늘 자신을 갈아 넣어 일했다. 주기적으로 힘든 시기가 오긴 했지만 그땐 더 크게 왔었다.

“여보, 나 그만둘까? 너무 힘들어.”

“그... 그래?”

남편의 말을 듣는 순간, 힘들어하는 남편이 안쓰러운 마음보다는 ‘그럼 우린 뭐 먹고살지?’라는 현실적인 걱정이 먼저 들었다. 십 년 전, 남편은 내가 회사 그만두고 본격적으로 만화 그리고 싶다고 했을 때, 그만두라고 바로 말해줬었다. 그런데 시원하게 그러라고 말 못 하는 게 싫고, 또 미안했다.

그때까지 나는 꼭 돈을 벌어야지만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돈을 벌든 못 벌든 내 이야기를 계속 남기는 것도 일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나는 이제 짜증 나고 억울하고 불안해서 ‘돈 버는 일’을 꼭 해야 했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