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케터 이로운
세상에는 수없이 많은 마케터가 있어요. 그 많은 마케터를 둘로 나눈다면? ‘마케팅에 정답은 없지’라고 말하는 마케터와 ‘그래도 더 나은 답은 있을 거야’라고 믿는 마케터. 명확한 답을 구할 순 없더라도 도망치지 않고 끝까지 더 나은 답을 찾는 마케터가 바로 ‘더 나은 마케터’일 거예요.
소비도 두 부류로 나눌 수 있어요. ‘나를 위한 소비’와 ‘우리를 위한 소비’. ‘나’는 ‘우리’와 분리할 수 없단 걸 인식하는 사람들이 공동체까지 생각하며 실천하는 생산적 소비가 바로 ‘더 나은 소비’겠죠.
다행스러운 일은, ‘더 나은 소비’를 이끌어내기 위해 ‘더 나은 마케터’가 되기를 꿈꾸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다는 거예요. 키뮤스튜디오(이하 키뮤)에서 ‘이로운 마케터’로 활약하는 이로운 님을 포함해서요.
반갑습니다, 로운 님! 키뮤의 마케터로서, 어떤 일을 하고 계신지 소개해 주세요.
브랜드마케터로 일하고 있어요. 주변에 멋진 것을 전파하는 스피커 같은 역할이죠. 프로젝트마다 목표에 따라 전하는 이야기는 각기 다르겠지만요.
이전에는 어떤 일을 하셨나요?
광고대행사에서 일했어요. 드라마 ‘미생’을 보면, 다크서클이 턱 끝까지 내려앉은 오 과장이 나오잖아요. 저도 거의 그런 상태였어요. 똑같은 일을 그렇게 3년 반복하니 힘들더라고요. 더는 견디기 힘들어 그만두겠다 마음먹던 차에, 키뮤 채용 공고를 보곤 ‘이거다!’하고 지원했어요. 무엇보다 좋아하는 일을 하고 싶었거든요.
키뮤에서는 좋아하는 일을 할 수 있겠다고 생각하신 거군요?
디자인 업무를 하는 친구들이 주변에 많았던 터라, 저도 그들처럼 크리에이티브한 분야의 일을 하고 싶다는 마음이 있었어요. 그러다 키뮤의 아트웍들을 봤는데, 예쁘더라고요. 디자인 때문에 키뮤를 선택한 거죠. 그 그림들을 특별한 디자이너들이 그린 거란 걸 나중에 알게 됐어요. 아, 키뮤에서는 발달장애인 디자이너들을 ‘특별한 디자이너’라고 부릅니다.
키뮤의 SNS를 보면, 발달장애인들의 그림이란 걸 전면에 내세우지 않더라고요. 의도하시는 건가요?
맞아요. 키뮤에서는 사람들이 선입견 없이 작품을 바라봐 주길 바라거든요. ‘이 아트웍 마음에 드는데? 어, 그런데 이게 발달장애인이 그린 거라고?’ 이런 알아챔을 통해 세상과 발달장애인들의 경계가 허물어지기를 원하는 키뮤의 마케팅 전략이랍니다.
이로운 님에게도 키뮤의 전략이 통했던 거네요? 그렇지만 마케터로서는 어려운 일인 것도 같아요.
제게 주어진 숙제이긴 해요. 특별한 디자이너의 존재를 강조하면 브랜드 각인이 조금 더 쉬울 것 같은데, 그걸 일부러 하지 않는 거니까요. 우리의 철학과도 맞으면서 브랜드 인지도를 높일 수 있는 더 나은 방법을 찾기 위해 부단히 고민하는 게 제 일이라고 생각해요.
진행했던 프로젝트 중 기억에 남는 프로젝트를 소개해 주세요.
커피캔들이요. 매년 135만 톤씩 버려진다는 커피 찌꺼기를 활용해서 만든 업사이클링 제품이에요. “나 사실 커피였어”하고 커피캔들이 고개들에게 말을 거는 콘셉트로 마케팅을 진행했어요. 커피콩이 캔들이 되기까지의 과정을 스톱모션으로 보여줬고요. 반응도 괜찮았고 스스로도 만족스러웠던 프로젝트라 기억에 남아요.
마케팅이 사회적 가치와 연결된 좋은 사례였던 것 같네요. 그렇게 사회적 가치를 담아내는 마케팅에서 더 신경 써야 하는 게 있을까요?
소셜이슈를 전하는 동시에 브랜드 자체의 가치도 함께 챙겨야 한단 걸 잊지 말아야 해요. 고객들이 이 브랜드를 경험할 때 특별해진다는 느낌을 갖게 하는 게 중요하거든요. 스포츠 브랜드 파타고니아가 이걸 가장 잘하는 것 같아요. 환경과 사람을 우선시한다는 브랜드 철학을 담아내면서도, 모든 제품과 마케팅적 행보가 힙하니까요.
그럼 로운 님이 마케터로서 특별히 노력하는 점으로는 무엇이 있나요?
경험하기. 아마 모든 마케터가 비슷할 거예요. 팝업 스토어가 열린다, 이벤트가 있다, 어느 브랜드가 뭘 시작한다고 하면 가장 먼저 가서 경험해보는 게 마케터의 중요한 소양인 것 같아요. 가령, 요즘 서울에서 가볼 만한 곳으로 꼽히는 ‘더현대 서울’ 같은 곳은 무조건 가보는 거죠. ‘더현대 서울’은 백화점이면서도 ‘새로운 여행지’라는 콘셉트를 가지고 있어요. 그만큼 공간 구성과 디자인, 입점 브랜드 등을 독창적으로 구상했다는 거겠죠. 이런 곳에 가면 마케터로서 풍성한 인사이트를 얻을 수 있어요. 소비자의 입장이 되어 경험해보는 것도 큰 배움이고요.
또 하나는, 기록하기인데요. 기록이 기억보다 강하다고 하잖아요. 새로운 걸 경험하며 얻게 되는 아이디어, 감정들을 어떤 방식으로든 기록하려고 해요. 필름 사진도 곧잘 활용하고요.
마지막으로, 덕질하기입니다. 마케터는 자신이 마케팅하는 브랜드를 진심으로 좋아해야 더 나은 마케팅을 할 수 있다고 믿거든요.
노력이 결실을 맺어, 키뮤도 파타고니아처럼 사랑받는 브랜드가 되리라 생각해요! 그런데 ‘덕질’ 이야기를 하시니, 로운 님은 평소 어떤 취미를 즐기시는지 궁금해지네요.
‘필름 낭비’라는 인스타그램 계정을 운영하는데, 여기에 평소 경험하는 걸 필름 사진으로 찍어 올려요. 음악 서비스 스포티파이에서 플레이리스트를 만들어 공유하기도 하고요. 또, 유튜브 콘텐츠도 기획 중이고, 취미 삼아 음악도 만들고 있습니다.
아니, 음악을 취미 삼아 만드는 게 가능한 일인가요?
그냥 하고 싶어서 하는 거예요. 음악을 정말 좋아하거든요. 고등학교 땐 소울 컴퍼니라는 힙합 레이블 서포터스로, 대학교 땐 흑인음악 동아리 멤버로 활동했어요. 대학 졸업 후에 공연기획 일을 하기도 했고요.
‘필름 낭비’ 말고 또 다른 인스타그램도 운영하시나요?
인스타그램은 취미에 따라 여러 개 운영하고 있어요. 팔로워 수와 좋아요 수를 늘리는 게 게임 캐릭터 레벨을 올리는 느낌이에요. 사실 저는 인생도 게임 같단 생각을 해요. 게임에서 퀘스트를 깨면 보수를 받고, 그걸로 장비를 맞추고, 또 더 난이도 높은 퀘스트를 깨고 하는 게 인생과 비슷한 것 같아요. 일을 할 때도 게임 레벨 올린다 생각하고 하고요. 어차피 평생 해야 하는 일, 조금이라도 더 재밌게 하고 싶거든요.
경험 그 자체를 즐긴다는 게 느껴지네요.
영감을 얻겠다는 목적을 가지고 전시회에 가는 것과, 그냥 전시회를 즐기기 위해 가는 것에는 큰 차이가 있다고 생각해요. ‘여기서 뭘 얻어야지’라고 생각하면, 그것밖에 안 보이거든요. 처음부터 목적을 정해놓으면 다른 선택지는 안 보여요. 무언가 경험할 때는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는 게 중요해요.
이렇게 다양한 취미를 즐길 시간이 어떻게 생기는 건지 궁금한데요?
취미를 가볍게 건드는 게 있고, 깊게 파는 게 있으니까요. 제 취향과 가까운 것들은 깊게 파는 편이에요. 그런데 그렇다고 해서 좋아하는 걸 깊게 파는 데 시간이 많이 소요되는 건 아니에요. 예를 들어 저는 음악 플레이리스트 만드는 걸 무척 좋아하는데, 평소 음악을 자주 듣고 음악에 관심이 많다 보니 1시간 정도 되는 플레이리스트를 구성하는 데 10분이 채 안 걸려요. 말하자면 취향에서 취미로 조금씩 업그레이드하면서, 잘 맞는 취미 조각들을 일상의 패턴 속에 끼워 맞추는 셈인 거죠.
재밌게 잘 들었어요. 그럼 마지막 인사 부탁드립니다.
모빌스 그룹이 쓴 책 『프리워커스』를 인상 깊게 읽었는데요. 거기 나온 문장을 마지막 인사로 갈음할게요. 저처럼 사회적 가치를 위해 일하거나, 혹은 사회적 가치를 생각하며 소비하는 모든 사람에게 격려가 될 문장이라 생각해요. “나무를 많이 심을수록 숲은 더 짙은 빛을 낸다고 합니다. 우리의 작은 행동들이 모이면 더 선명한 변화를 만들 수 있지 않을까요?”
<키뮤 매거진>은 키뮤스튜디오의 안과 밖 이야기와 더불어, 사회를 긍정적으로 변화시키는 브랜드와 사람, 사회문제 해결을 위한 인사이트를 담아내는 키뮤의 브랜드 매거진입니다. 키뮤스튜디오는 '특별한 디자이너'와 함께 콘텐츠로 세상의 경계를 허무는 유니크한 소셜벤처입니다.
인터뷰 정리·편집 - 유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