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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나뇽과 레옹을 사랑하는 디자이너

특별한 디자이너 채이서

모든 시선은 고유해요. 누구나 자기만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죠. 산책하며 마주하는 풍경에서도 누군가는 포슬포슬한 흙을, 다른 누군가는 고단한 노동으로 심긴 꽃을, 또 누군가는 산책길 끝 마당 넓은 집을 그려내요. 발달장애를 가진 ‘특별한 디자이너’들이 반짝, 하고 빛나는 이유 중 하나도 ‘시선’이에요. 어른의 가면으로 감추지 않은 순수한 마음, 규칙도 제한도 없이 뻗어 나가는 상상, 그리고 스케치북 너머를 바라보는 특별한 시선. 키뮤스튜디오와 의류브랜드 아이디룩에서 디자이너로 일하는 ‘특별한 디자이너’ 채이서 님의 시선을 스케치북과 그림, 일상이란 키워드로 옮겨 전해드립니다.




스케치북   평소에도 스케치북을 들고 다니는 이서 님. 그 속에 좋아하는 만화와 영화 속 인물과 소품을 정성스레 담아냅니다. 간결한 선과 꼼꼼한 채색으로 완성된 그림에서 인물에 대한 깊은 애정을 엿볼 수 있습니다.



채이서 디자이너의 스케치북



이서 님은 언제부터 스케치북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나요?

언제부터인지는 기억이 안 나요. 스케치북의 개수도 정확히는 몰라요. 스무 권이 넘을 수도 있어요. 하지만 그림을 그리며 제 상상력이 풍부해진 건 확실해요. 그림에 대한 흥미도, 해내고 싶은 ‘이상(理想)’도 계속 늘어나는 기분이었어요. ‘해내고 싶은 이상이 늘어났다’는 건 ‘많이 그려보고 싶은 마음이 커졌다’란 의미예요.



채이서, <레옹과 마틸다>, 2021



스케치북을 보니 ‘레옹’ 그림도 있네요. 그 영화는 몇 번이나 보셨어요?

두 번이요. 마틸다와 레옹이 교감하는 장면들이 인상적이었어요. 마틸다를 구한 레옹이 스탠스 필드 형사를 죽이기 위해 자폭하는 장면도 기억에 남고요. 이상하다고 생각한 부분도 있어요. 영화 초반 마틸다가 레옹의 집에서 잘 때, 레옹이 마틸다를 총으로 쏘려고 하잖아요. 하지만 레옹은 분명 ‘여자와 아이는 죽이지 않는다’는 룰을 가지고 있었는데, 왜 그랬을까요? 혹시 그 룰이 거짓말이었던 걸까요?


마틸다로 인해 자신이 위험해질 수도 있다는 생각에 룰을 어기면서까지 죽이려 했던 게 아닐까 싶어요. 이서 님은 인물의 행동과 동기를 유심히 보시네요. ‘레옹’에서 가장 흥미로웠던 인물은 누군가요?

스탠스 필드요. 부패한 형사이자, 마틸다의 가족들을 살해한 범인이에요. 이기적인 욕쟁이고요. 스탠스 필드를 연기한 게리 올드만은 ‘다크 나이트 트릴로지’에서 청렴한 경찰청장 제임스 고든을 맡은 배우인데요. 같은 인물이 악당 연기를 얼마나 잘 소화해낼 수 있는지 제대로 보여주는 것 같아서 좋았어요.   

  


채이서, <망나뇽의 진화 과정>, 2021



‘포켓몬스터’ 캐릭터들을 그린 후 옆에 캐릭터 설명들을 적어서 하나의 도감을 만드셨네요. 이서 님이 가장 좋아하는 캐릭터는?

‘망나뇽’이라는 드래곤 포켓몬이요. ‘포켓몬스터’ 초창기 유일한 드래곤 캐릭터예요. 포켓몬의 진화 과정을 크게 신경 써서 그림으로 나타냈어요.  


이서 님이 앞으로 스케치북에 담고 싶은 그림이 있다면?

로봇과 연예인이요. 옛날 인기 많았던 애니메이션 중에 ‘무적 캡틴 사우르스’가 있는데, 그런 로봇 만화 속 캐릭터를 제 시선을 담은 저만의 그림으로 그려서 포스터로 만들고 싶어요.



채이서, <로키>, 2019 / 채이서, <블랙팬서>, 2019




그림, 그리고 일상   긴 시간에 걸쳐 자신만의 그림 스타일을 찾아 이제는 디자이너로 활동하는 이서 님의 그림과 일상 이야기를 들어봤습니다. 이서 님은 충분한 침묵 속에서 자신의 생각과 마음을 표현해내기에 가장 알맞은 단어들을 선택하며 대화를 이어나갔습니다.      





디자이너가 되기까지의 과정이 궁금해요.

고등학교 졸업식 발표용으로 인물 초상화를 그린 적이 있어요. 학생들과 선생님들을 그려주고 싶어, 직접 찾아가 허락을 구한 다음에 그분들의 초상화를 그렸어요. 그걸 계기로 고등학교를 졸업하면서부터 미술학원에 가 그림을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2018년부터 2020년까지 회사에서 그림 그리는 일을 했는데 그곳이 문을 닫아(이서 님은 2018년을 ‘열여덟 해’, 2020년을 ‘스무 해’라고 표현했어요), 새로운 회사를 알아보다가 키뮤스튜디오에서 일하게 됐어요.     


그림은 매일 그리시나요?

월요일과 금요일엔 아이디룩이나 키뮤스튜디오에 출근해서 그림을 그려요. 지난번에는 사라지고 있는 제주도 해녀들을 기록하기 위해 해녀들을 그렸어요. 오늘은 시작장애인과 휠체어를 타고 다니는 분들을 그렸어요. 그림을 그려서 장애인 분들을 위로하려고 했던 것 같아요. 화요일부터 목요일까지는 충현복지관에서 예술을 배워요. 그림도 배우고, 비누공예나 마술 같은 색다른 것도 배웁니다. 주말엔 그림을 미뤄두고 쉽니다. 편안하게 있고 싶어서요.


인물 그리는 걸 좋아한다고 들었어요.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잘생긴 인물을 스케치북에 담고 싶어서예요. 그림 그리려고 상상 중인 인물도 있어요. 제가 직접 만든 인물들이죠. 일단 모자를 쓸 거고요, 가방을 멜 거예요. 뒷모습도 그릴 거예요. 멋지게 나왔으면 좋겠어요.     


그림 그릴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요소가 있다면?

공간을 배분하는 거요. 특정 부분을 너무 크게 그리면 나머지 부분을 그릴 공간이 부족하고, 그렇다고 그림을 종이 구석에 그리면 번거로워지니까요. 그래서 전 사람 두 명을 그릴 땐 종이를 가로나 세로로 나눈 후 그려요.


기호와 기술이 확고하네요. 이서 님의 생각과 시선 모두 일상의 영향을 받은 걸 텐데요. 뉴질랜드에서 특별한 일상을 보낸 적도 있죠?

열 살부터 열세 살까지 뉴질랜드에서 살았어요. 한국과 환경이 아주 달랐어요. 뉴질랜드에서는 딱 하루 동안만 눈이 왔거든요. 엄청 추운 날이어도 눈이 잘 안 왔어요. 그곳에서 영어도 익혔어요. 알파벳부터 낱말까지 다요. 예의범절도 배웠고요. 그리고 제가 고도비만이어서 살을 빼기도 했는데, 성공했습니다.     


좋은 기억으로 간직하고 있겠네요. 또 다른 기억들에 대해서도 묻고 싶어요. 반려동물을 키워본 경험도 있나요?

초등학생 때 꽤 오래 붕어를 길렀어요. 붕어가 갑자기 죽었을 때는 무척 우울했고요. 친가 쪽에서 기르는 개와 “물어와!” 놀이를 한 것도 기억나요. 재미있었어요. 거북이도 길러봤는데, 거북이답지 않게 움직임이 빨라서 신기했습니다.


오랜 시간 이야기 나눠주셔서 감사합니다. 마지막 질문이에요. 지금 가장 함께 시간을 보내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연극학원을 같이 다녔던 김연재요. 저희는 함께 인형극을 했는데, 그 애는 쉬는 시간에 요가도 했어요. 그리고 치과에서 이에 다는 거, 그걸 달고 있었어요. 열 해 이상 탄산음료를 못 마셨고요. 제 추측인데, 강아지를 좋아하는 것 같았어요. 얌전하고 섬세한 친구였는데, 지금은 못 보니까 생각이 나네요.




<키뮤 매거진>은 키뮤스튜디오의 안과 밖 이야기와 더불어, 사회를 긍정적으로 변화시키는 브랜드와 사람, 사회문제 해결을 위한 인사이트를 담아내는 키뮤의 브랜드 매거진입니다. 키뮤스튜디오는 '특별한 디자이너'와 함께 콘텐츠로 세상의 경계를 허무는 유니크한 소셜벤처입니다.


인터뷰 - 이현수 │ 정리 - 이현수 │ 편집 - 유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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