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나사이의 간격, 두려움

장기 여행 중 깨달은 두려움에 관한 고찰

by 김유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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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안 방콕에서 함께 지내다가 다시 한국으로 돌아가는 친구를 배웅하기 위해 공항으로 향하는 길이었다. 택시 안에 흐르는 무거운 정적을 서로 모른 척하듯 묵묵히 창밖만 보고 있는데 이 길을 여러 번 오갔던 한 친구가 먼저 한마디 건넸다. “여기가 야경 때문에 꽤 유명한 데이트 장소래.” 과연 그럴만한 풍경이었다. 드넓은 활주로 위엔 곧 이륙을 준비하는 비행기가 반짝이고 있었고 깜깜한 풍경 너머에는 형형색색 밝고 작은 점들이 무수히 빛났다.


내가 어렸을 때 우리 가족은 공항 근처에 살았다. 어른들은 수시로 지나는 비행기 소음 때문에 집값이 오르지 않을 것이라고 낙담했다. 학교 수업 시간엔 건물 위로 날아가는 비행기 굉음에 선생님 목소리가 아득해지는 일도 잦았다. 때로 비행기 굉음이 온 교실 바닥을 울릴 때에도 나는 비행기가 밉지 않았다. 구름을 마주한 사람들의 들뜬 표정을 상상하며 손톱보다 더 작은 모습으로 멀어지는 비행기를 넋 놓고 바라보곤 했다.


나는 지금 태국 방콕에서 장기 여행 중이다. 시간에 쫓길 일 없이 두 다리로 마음껏 보고 걷는다. 예정되지 않았던 곳에서 한참을 머물며 여유로운 시간을 즐긴다. 하지만 이따금 파란 하늘에 새하얀 비행기 발자국이 길어질수록 또는 그것이 깊은 밤 까만 어둠 속으로 사라질 때 나의 가슴 한편은 자주 먹먹해졌다. 처음엔 가족과 친구가 그리운 탓이라고 생각했지만 실상은 이렇게 멀리 떠나왔지만 두려움의 문제를 스스로 해결할 수 없다는 사실에 절망했기 때문일 것이라.


멀리 떠나는 것이 꼭 슬픈 일이라고 단정할 수 없다. 먼 길을 향하면서도 설레는 표정을 감출 수 없는 이들의 미소가 이를 대변한다. 분명 다시 돌아올 곳이 있다는 안도감은 두려움을 충분히 덜어주지만 두 팔 가득 벌려 나를 안아 줄 곳이 있음에도 나는 여전히 나 자신과 다정하질 못해 서먹서먹하기만 했다. 나는 두려움에 휩싸인 것을 책망하다가 친구가 떠나던 그날 밤 택시 안에서 찍은 공항 사진을 뒤적여보았다. 그리고 나는 깨달았다. 나는 이곳에 처음 도착하던 날의 기대감으로부터 너무 멀어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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