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콕 장기여행 중 사원에서 있었던 일을 기억하며 적는 글

by 김유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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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콕 장기여행 중 맞이한 한가로운 토요일 오후, 이전에 후알람퐁 기차역을 지나가다 본 사원에 방문했다. 뾰족뾰족 화려한 외관에 눈길이 간 탓인데 젖소가 있는 사원으로 현지인들에게는 물론 관광객들에게도 유명한 곳이었다. 목적지에 도착해 택시에서 내리자마자 희뿌연 향 연기가 얼굴을 덮었다. 사원은 부처상 앞에서 향을 들고 기도하거나 소원을 적어 벽면에 붙이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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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이방인들이 그러하듯 나는 가만히 그들을 관찰했다. 그들의 기도에는 일정한 순서가 있었고 매사 신중하고 엄숙한 모습이었다. 나는 뜨거운 햇빛을 피해 법당에 들어갔다. 그곳은 그런대로 서늘했다. 대리석 바닥에 앉아 부처의 얼굴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언제나 그의 얼굴에선 아무 감정이 드러나지 않아 보였다. 활짝 열린 창문 사이로 바람이 오고 갔고 창문 너머로 깔깔 거리는 소녀들의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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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당에서 기도하는 사람들 중 나의 시선이 한 여인의 등에 머물렀다. 그녀의 회색 티셔츠는 땀에 젖어 얼룩져있었다. 그러나 그의 기도는 쉽사리 끝나지 않았다. 잔뜩 움츠러들었다가 다시 일어나는 행동을 계속해서 반복했다. 순간 나는 흠뻑 젖은 하늘색 셔츠를 보고 눈살을 찌푸리거나 비웃었던 일들이 떠올랐다. 법당을 가득 채운 정적의 크기만큼 나는 한없이 부끄러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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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땀의 가치를 완전히 잊고 있었다. 아니 누군가 쉴 새 없이 흘린 땀으로 나라는 사람이 일구어진 것을 모르고 애써 땀의 의미를 퇴색시키려 했다. 간절히 바라는 바를 이루기 위해 자신의 수고를 아끼지 않는 모습이 왜 하찮고 부질없는 것이라 생각했을까. 정작 부끄러워할 것은 보여주기에만 바빠 그 가치를 잊고 무엇이든 쉽게 얻으려 했던 나의 게으름이었는데. 창문 사이로 바람이 불어올 때 법당 안 습한 냄새가 코끝을 스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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