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로팅 클롱 뱅 루앙(Floating Khlong Bang Luaug)
3번의 방콕 단기 여행 후 3달 간의 방콕 장기 여행을 결심한 한량. 이전에는 대학로에서 공연하는 연극배우였고 잡지사 기자였고 방송 작가였으나 잔 우물만 파다가 31살을 맞이했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당분간 생업 전선 근처에도 가고 싶지 않다는 오기가 발동해서 돌연 방콕 장기여행을 결정했다. 까놓고 말하면 도피이나 긍정적인 사고를 발휘해 40세부터 살고 싶은 나라 태국을 미리 공부한다고 과대 포장하는 솜씨를 발휘하는 중.
방콕 장기여행 51일 차 아침. 동네 길거리 음식으로 배를 든든하게 채우고 서둘러 방와역으로 향했다. 현재 거주하고 있는 푼나위티 역에서 목적지까지 편안하게 이동하길 원했으나 예상 택시비가 280밧 이상이라고 검색돼 대중교통을 이용하기로 했다. 결론적으로 방와역에서 목적지까지의 택시비가 50밧 정도였기 때문에 편도 120밧으로 이동이 가능했다.
씨암 역에서 방와행으로 열차를 갈아탄 후 방와역에서 택시를 탔다. 미리 검색해둔 구글 지도를 보여줬으나 어쩐지 자신 없어 보이는 택시기사님의 뒷모습. 엉뚱한 곳에 내려주긴 했지만 다행히 마을 곳곳에 붙어있는 안내판을 보고 어렵지 않게 찾아갈 수 있었다.
매일 번듯한 방콕 시내를 돌아다니다가 아기자기한 마을을 보니 더욱 가뿐해지는 발걸음. 그저 이 풍경을 보는 것만으로도 오길 잘했다고 생각했다,
사실 이 형형색색의 도트 무늬가 나를 인도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물론 안내표지판이 있었지만 이 무늬를 따라만 가면 목적지에 닿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내 마주하게 된 풍경들. 조용한 마을에 운치 있게 보트가 오가는 모습들이 복잡하거나 번잡하지 않아 더욱 마음에 들었다.
일명 떠있는 시장에는 레스토랑과 카페들이 즐비해 있었고 외국인 관광객들이 주를 이뤘으나 그 수가 많지 않았다.
오후 2시에 '아티스트 하우스'라는 카페에서 인형극이 있다고 해서 그전에 끼니를 때울 생각으로 일단 식당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가격대는 우리 동네 음식 값과 비슷해서 이곳이 아직까지는 관광객이 많이 드나드는 곳이 아님을 알아챌 수 있었다.
때때로 보트를 타고 지나가며 손을 흔드는 이들에게 같은 마음으로 눈인사를 건네며 밥 한 그릇 뚝딱. 가끔 보트가 세게 달릴 때는 물이 튈 수 있기 때문에 주의해야 하지만 이미 풍경 자체로 그만인 곳.
식사를 마친 후 아티스트 하우스를 찾아 조금 더 안쪽으로 들어가 보았다. 혹여 핸드폰이 떨어지지 않을까 조마조마해하며 담은 풍경들. 태국의 전통 목조 건물들을 비롯해 곳곳에 각종 그릇, 옷, 소품 등을 판매하고 있어 보는 재미가 넉넉했다.
뻥튀기같이 생긴 물고기 밥을 사서 던져주는 아이들
그리고 마침내! 인형극이 열리는 아티스트 하우스(Artist House)에 도착!
하지만 아쉽게도 화요일인 오늘은 공연이 없다고 했다. 수요일, 금요일, 토요일, 일요일 이렇게 일주일에 4번 열린다고 했으나 이 카페의 주인은 미리 페이스북 페이지를 통해 확인하고 올 것을 추천했다.
아쉬운 마음을 뒤로하고 목이라도 축일 겸 타이 밀크티를 주문했다. 그리고 1층과 2층으로 나뉜 아티스트 하우스 곳곳을 둘러보았다. 특히 2층은 갤러리로 꾸며져 있는데 무언극으로 진행되는 인형극에 쓰일만한 소품들이 가득했다. 각종 탈이며 인형이며 그 색과 표정이 너무나도 선명해서 더욱 생생한 기억. 이밖에 미술 작품들도 전시되어 있어 차분히 둘러보기에 좋았다.
주문한 타이 밀크티를 마시며 바깥 풍경을 구경하고 있는데 주인아저씨가 조용히 페이스북 주소를 적어 내미신다. 코쿤 카! 이후 또 한참 동안 멍하니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 어떤 커플이 들어오더니 귀여운 흰색 코끼리를 어디서 집어왔다. 기념품을 구입한 줄 알았는데 가만 지켜보니 그 위에 색을 덧입혔다. 그 순간 동시에 주인아저씨와 눈이 마주쳤는데 따라오란다.
갔더니 아직 채색되지 않은 각종 모양의 장식품들이 진열되어 있었다. 가격대도 나쁘지 않아 원하는 모양을 골라 주인아저씨에게 건넸다.
나는 달을 좋아하니까. 당연히 달! 아저씨가 정성스럽게 짜준 물감이 담긴 팔레트, 붓, 물통이면 준비 끝이다.
오랜만에 즐기는 색칠 놀이에 한껏 들뜬 나. 당연히 노란색 물감부터 콕 찍어 드는 나를 보고 스스로 놀랐다. 아! 나란 사람은 역시 학습된 동물인 건가. 하지만 다시 마음을 다잡고 그냥 마음이 이끄는 대로 칠하기 시작. 눈앞에는 아름다운 운하가 잔잔히 흐르고 내 마음도 같이 고요해지는 듯한 기분이었다.
마침내 완성된 모습! 앞뒤로 열심히 꾸며보았다. 한쪽은 태국을 사랑하는 마음과 자기애를 담아 태국 국기와 내 이름까지 완벽히 새겨보았다.
채색을 마친 후 주인아저씨의 손을 한번 더 거쳐서 작품이 된다. 칠을 하고 말리는 작업을 반복 중인 주인아저씨. 한 5분 동안 동일한 작업을 반복하셨다.
이렇게 펜으로 그리는 소품도 있다고 보여주시는 센스! 물감이 옷에 튈 수 있는 어린아이들에게는 좋은 체험이 될 것 같다.
비록 인형극은 볼 수 없었지만 나름대로 멋진 경험을 할 수 있어 뜻깊었던 시간. 이미 명소, 맛집이 즐비한 방콕이지만 클롱 뱅 루앙(Khlong Bang Luaug) 또한 결코 헛되지 않을 여행 명소라고 자신한다. 방콕 속 작은 운하에 이토록 오래 머물 줄 몰랐던 나였기에.
택시 잡기가 어려운 위치라 걱정했는데 운 좋게 마을로 들어온 오토바이를 타고 역까지 갈 수 있었다. 좁을 골목골목을 누빈 덕분에 끝까지 이 조용하고 아름다운 마을을 두 눈에 가득 담을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