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국 현지인들의 휴양지 '꼬 시창'을 아시나요?

현지인들이 사랑하는 섬 꼬 시창(koh Sichang) 방문기

by 김유례

3번의 방콕 단기 여행 후 3달 간의 방콕 장기 여행을 결심한 한량. 이전에는 대학로에서 공연하는 연극배우였고 잡지사 기자였고 방송 작가였으나 잔 우물만 파다가 31살을 맞이했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당분간 생업 전선 근처에도 가고 싶지 않다는 오기가 발동해서 돌연 방콕 장기여행을 결정했다. 까놓고 말하면 도피이나 긍정적인 사고를 발휘해 40세부터 살고 싶은 나라 태국을 미리 공부한다고 과대 포장하는 솜씨를 발휘하는 중.


내게 '꼬 시창(Koh Sichang)'은 밀린 숙제 같은 존재였다. 언젠가 꼭 가야 한다는 걸 알면서도 쉽게 용기가 나지 않아서 내내 망설이기만 했다. 하지만 장기 여행의 기한이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알아챈 순간 나는 개학을 앞둔 학생의 심정으로 꼬 시창으로 가는 법을 검색하기 시작했다. 전날 밤 버스 타는 위치와 동선 정도만 파악해두고 나머지는 전부 운에 나를 맡긴 채 여행을 시작했다.


오전 8시 30분 에까마이 동부터미널

나는 꼬 시창으로 향하는 롯뚜(미니 벤) 표를 타기 위해 에까마이 동부터미널로 향했다. 이곳은 모칫 북부터미널과 달리 에까마이 역과 바로 근접해 있기 때문에 따로 툭툭이나 오토바이 등을 이용하지 않아도 된다. 꼬 시창은 시라차 지역에서 12km 떨어진 곳으로 배로만 이동이 가능한 섬이기 때문에 우선 100밧(한화 3,400원)에 시라차행 표를 구입했다. 16번 승차장에서 롯뚜에 탑승한 후 드라이버에게 꼬 시창에 갈 것이라고 말했다. 약 2시간여를 달려 마침내 시라차에 도착! 이후 툭툭을 타고 꼬 시장으로 들어가는 항구로 향했다.


오전 11시 30분 꼬 시창으로 가는 보트 탑승

롯뚜에 사람들이 다 차기를 기다리느라 생각보다 꽤 많은 시간이 지체됐다. 툭툭을 타고 항구에 도착한 후 50밧에 꼬 시창으로 들어가는 배편을 구입하고 배가 출발하기 전 30분 정도를 더 기다려야 했다. 세 시간 정도 예상했던 이동시간이 길어지자 조바심이 나지만 이 또한 여행이라며 참을성 없는 자신에게 응원의 메시지를 스스로 보냈다. 배에는 태국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역시 현지인들의 휴양지 다운 면모였다.


오후 12시 50분 드디어 꼬 시창에 도착

12시에 출발한 배는 약 50분여를 달려 꼬 시창에 도착했다. 처음 배에서 마주한 섬의 모습은 그다지 낯설지 않았다. 아기자기하고 아담한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있는 사랑스러운 모습이 마치 우리네 시골마을을 닮아있었다. 항구에 내리자마자 대여가 가능한 오토바이가 줄을 서있었고 툭툭 아저씨들이 반갑게 맞아주었다. 나는 원동기를 다룰 줄 모르고 도보로 다니기엔 꽤 넓은 섬인 것 같아 3시간 동안 4군데 정도를 둘러보는 투어에 250밧을 지불하기로 툭툭 아저씨와 협상을 했다.


오후 1시 10분 꼬 시창에서의 첫끼

첫 번째 목적지는 지인이 소개해준 꼬 시창의 카페 Flower blue coffee&bistro. 이 섬에서 유일하게 에어컨이 나오는 식당 겸 카페이다. 주인 내외에게 'MR 정'의 소개로 이곳에 왔다고 하니 더욱 밝아지는 표정들. 맛있는 밥과 타이티로 지친 몸을 달래고 이 가게의 여 사장님 촘푸 아주머니와 함께 우리들의 연결고리 '정'에게 보내줄 사진을 찍었다.


오후 1시 40분 아쿠아리움 방문

카페 바로 인근에 위치한 곳. 아쿠아리움이라는 표현이 처음엔 어색했지만 상어부터 니모까지 다양한 어종들을 입장료 없이 볼 수 있어 가볍게 둘러보았다.


오후 2시 국왕 라마 5세에 의해 지어진 왕실 여름궁전 유적지 방문

태국에 10년 넘게 거주했던 친구 '정'이 강추했던 곳. 긴 길을 따라가면 한없이 펼쳐진 바다가 그림같이 걸려있는 풍경을 마주할 수 있다. 한참 동안 앉아 멍하니 바라보아도 전혀 지루하지 않은 건 청량한 바다색과 파도 소리 때문일 것이다. 이곳에서 웨딩촬영 중인 커플들도 여럿 보았다. 꽤 넓은 공간이지만 워낙 아름다운 경관인지라 천천히 걸으며 음미할 수 있었다.


오후 2시 50분 탐 팡 비치

다음 목적지는 탐방 비치. 사실 예전에 꼬사멧에 갔을 때 기대가 너무 컸던 걸까. 그리 맑지도 푸르지도 않은 바닷물에 실망을 적잖게 했었는데 탐방 비치는 그 모든 아쉬움이 잊힐만한 풍경이었다. 에메랄드 빛 바다가 어찌나 드넓은지 보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후련해지는 기분이었다. 곳곳에 가족들이 자리를 잡고 사진을 찍거나 음식을 먹으며 여유로운 섬 여행을 즐기고 있었다. 당장이라도 물에 뛰어들고 싶었지만 아직 리조트에 짐도 풀지 못한 상황이라 발만 담갔다가 다시 툭툭으로 돌아갔다.


오후 3시 20분 Chong khao khad 방문

꼬 시창에 대한 정보가 워낙 부족했던지라 툭툭 아저씨에게 의지했던 투어였는데 훌륭한 뷰포인트였기 때문에 이곳에서 더운 날씨에 지친 피로를 잠시나마 풀 수 있었다. 길게 뻗은 다리를 따라 해변을 둘러볼 수 있는 게 마치 부산 해운대의 동백섬을 떠올리게 했다.


오후 3시 45분 중국 사원

꽤 높은 곳에 위치하고 있어 사원과 꼬 시창의 풍경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는 명소이다. 트램이 언덕길을 오고 가긴 하지만 직접 계단으로 오르내렸는데 방콕에서 자주 봤던 사원들과는 확연히 다른 모습이었다. 좀 더 동양적이고 신비로운 느낌의 신상이 인상적이었다.


오후 4시 20분 숙소 도착

꼬 시창에 도착해서야 Rubtawan Sichang Resort에 예약했다. 오고 갈 이동수단이 툭툭과 오토바이밖에 없는지라 시내와 가까우면서도 바다가 보이는 숙소를 원했는데 직접 와보니 이곳이 제격인 것 같아서 어플로 바로 숙소를 확정했다. 리조트라고 하기엔 작은 방에 화장실 하나 있는 게 전부이지만 사진보다 더 멋진 오션뷰에 흡족했다.


오후 5시 동네 구경

방에서 잠깐 쉬고 다시 나와 동네를 직접 걸어보았다. 숙소가 시내 쪽에 있어서 별다른 이동수단 없이 마켓과 인근 식당 등을 구석구석 돌아볼 수 있었다. 또 거리에 남녀노소 모여 간단한 공놀이를 즐기는 이들의 유쾌한 모습도 만날 수 있었다.

이곳은 파타야나 방센처럼 여행자들을 위한 공간이 따로 마련되어 있는 관광지가 아니어서 다소 지루할 수 있지만 그래서 확연히 다르다. 유명 관광지가 주말 같은 곳이라면 이곳은 마냥 평일 같은 곳. 신나고 화려하지 않다 하더라도 '살아간다'는 점에 있어서 그 어떤 하루의 가치가 전혀 퇴색될 필요가 없지 않은가. 나는 이토록 평범한 휴양지를 만난 것에 감사하며 내게 주어진 커피 한잔을 가뿐하게 비워냈다.


오후 6시 빤앤데이빗에서 저녁 식사

꼬 시창에 유일하게 하나 있는 세븐일레븐에서 과자, 빵, 주스, 맥주 등을 구입한 후 '정'이 추천했던 레스토랑 '빤앤데이빗'으로 향했다. 다른 가게들보다 가격대가 높은 편이어서 잠시 주춤했지만 매우 신선한 새우가 들어간 팟타이를 먹으며 금세 행복해졌다. 그러나 제아무리 150밧 팟타이라 해도 우리 집 앞 45밧짜리 팟타이의 맛을 따라올 수가 없다. 집 앞 팟타이가 그리워졌다. 여행의 묘미는 일상을 그리운 대상으로 만들어 버린다는 것 아닐까 싶었다.



오후 7시 숙소

해가 질 무렵 숙소에 도착해서 이후로 쭉 방에서 나오지 않았다.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옆집 개가 큰 소리로 짖으며 뒤꽁무니까지 쫓아오는 바람에 잔뜩 겁에 질린 탓에 밖에 나가고 싶지 않았다. 방에서 바다를 바라보다가 음악을 듣고 SNS를 하며 시간을 보냈다. 편의점에서 데려온 과자, 맥주, 주스, 땅콩 제군들이 빛을 발한 순간!

8시쯤에 툭툭 아저씨에게 오전 9시까지 와줄 것을 부탁하고 잠들었다.


다음날 오전 8시 기상

새벽에 비가 꽤 내렸는데 다행히 날이 화창했다 탐방 비치에 갔다가 바로 방콕으로 돌아가야 하기 때문에 대충 짐을 챙겨 놓고 리조트에서 제공하는 빵과 커피로 아침을 해결했다. 처음 시라차에 도착했을 때 오랜만에 맡는 짠내가 어색했는데 벌써 떠날 시간이라니. 아쉬운 마음에 이 풍경을 더욱 눈에 담으려 애썼다.


오전 9시 탐방 비치 재방문

방콕 장기여행을 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점은 시간 약속을 잘 지키지 않는 태국인들의 느긋함 때문이었다. 과연 나의 툭툭 드라이버 끽 아저씨는 어떨까 궁금했는데 약속시간인 9시보다 3분 전에 도착한 그를 보고 만세 삼창을 외치고 싶었다. 그래 합리화는 역시 좋은 방법이 아니다. 아무튼 시간 개념 철저한 끽 아저씨 덕분에 기분 좋게 탐방 비치에 도착했는데 새벽에 내린 비 때문인지 멀리서부터 바다 상태가 별로 좋지 않음을 알 수 있었다. 전날과 확연히 다른 바닷물에 아쉬운 마음이 컸지만 또 한 번 탐방 비치를 만날 수 있었다는 것으로 만족하기로 했다. 나름 노래를 들으며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고 숙소로 돌아와 씻고 나갈 준비를 했다.


오전 11시 방콕으로 출발

1박 2일간의 짧은 여행을 마치고 꼬 시창에게 안녕을 고했다. 다음에 오거든 낚시도 할 수 있는 끽 아저씨의 방갈로에 머물러야지. 다음엔 사랑하는 이들과 함께 와서 한없이 늘어져 봐야지. 이 여유롭고 넉넉했던 기억을 자주 떠올려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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