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국 방콕 황금산 사원(왓 싸켓) 방문 리뷰
나름 방콕 좀 들쑤시고 다녔다고 스스로 자부했던 내가 장기여행 60일이 지나가도록 구글 맵에 '가고 싶은 장소'로만 묵혀둔 관광지가 있었으니 바로 왓 싸켓(GOLDEN MOUTAIN TEMPLE)이다. 일명 황금산 사원이라고 불리는 이곳은 방콕의 유일한 산(?)으로 도시의 전경을 들여다볼 수 있다고 해서 늘 마음에 품고 있었지만 문제는 먼 거리와 교통편이었다. 우리 집은 역사적인 유물이 가득한 구도시와는 정반대에 있는 데다가 구도시는 지상철(BTS), 지하철(MRT) 등이 닿지 않기 때문이다. 그나마 택시, 툭툭을 이용하는 방법이 있지만 비싼 요금도 부담될뿐더러 교통 체증이 심한 방콕에서 장거리는 택시 드라이버에게 바가지 혹은 퇴짜 맞기 일수! 단김에 뺏어야 할 쇠뿔을 너무 오래 끈 건 아닌지 고민만 깊어갈 무렵, 씨암에서 맛있는 영국식 스콘을 먹은 날 무슨 용기가 났는지 나는 구글맵을 켜고 왓 싸켓으로 가는 길을 검색하기 시작했다.
고심 끝에 결정한 이동수단은 바로 버스. 버스 요금은 에어컨이 있는 경우 14밧, 없는 경우 7밧으로 다른 이동수단에 비해 매우 저렴하지만 배차 간격이 15분 이상인 데다가 한국의 버스처럼 마땅한 안내를 받을 수 없어 나에게 버스는 두려움의 대상이었다. 이 정도면 밀가루가 두려움도 물리치는 최고의 명약이 아닐까 싶지만 아무튼 나는 구글맵의 안내대로 씨암 파라곤 맞은편에서 15번, 183번 버스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혹시나 또 다른 정류장이 있는 건 아닌지 불안한 마음에 현지인에게 몇 번씩 물어보고 나서야 안심했다. 드디어 15번 버스가 오는 모습이 저 멀리 보이는데 아뿔싸. 뭔가 허전하다. 창문 없는 버스가 오고 있는 것이었다. 하지만 왓 싸켓의 입장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터라 고민하지 않고 바로 탑승했다. 창문으로 넘어오는 도시의 뜨거운 열기가 얼굴을 스쳐가며 긴 머리를 어지럽히고 물을 마셔도 어쩐지 매연 맛이 나는 듯했다.
태국 방콕의 시내버스는 우리나라처럼 카드 단말기는 없고(요즘 생겨나는 추세라고는 한다) 대신 기사님을 제외한 버스 아저씨나 아주머니가 표를 끊어주신다. 정류장 안내 멘트가 없어 수시로 구글맵을 확인하며 무사히 왓 싸켓과 가장 근접한 곳에서 하차했다. 내린 자리에서 버스 가는 방향으로 조금 걷자 왓 싸켓 표지판이 나를 반겨줬다. 멀리서부터 존재감 확실한 금색의 사원의 꼭대기만 보고 걷기를 5분 정도. 입장료로 50밧을 지불하고 방콕의 유일한 산에서 등산을 시작했다.
입구부터 머리카락이 긴 나무들과 물안개가 연출하는 영롱하고 신비로운 분위기에 절로 숙연해졌다가도 생각보다 먼 거리에 당황하기를 반복하며 마침내 사원에 도착했다. 향을 피우고 꽃을 올리는 현지인들의 기도를 방해하지 않으려 최대한 차분한 모습으로 사원을 한 바퀴 둘러보았다. 나는 사원 곳곳을 둘러보며 내가 다녀온 방콕의 다른 사원들을 떠올려보았고 부다의 표정에서 차분함을 배웠고 기도를 올리는 이들의 평화를 빌었다.
왓 싸켓은 창을 크게 만들어 방콕의 풍경이 잘 보이도록 해놨는데 그 덕에 나는 갓 도시에 상경한 아이처럼 한참 동안 그 앞을 떠날 수 없었다. 루프탑에서 신나는 음악에 맞춰 도시의 야경을 즐기는 것도 흥미로웠지만 사원에서 바라본 방콕의 모습은 또 달랐다. 바람이 불어올 때마다 사원 안을 가득 울리는 풍경 소리를 따라 하늘을 우러러보니 문득 그동안 내가 너무 눈에 보이는 것들에만 열중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꾸미지 않은 담백한 풍경은 큰 소리를 내지 않고도 이런 소소한 가르침을 새겨주나 보다.
마지막으로 황금산을 볼 수 있는 옥상으로 올라갔다. 실제로 보니 황금산의 크기는 매우 웅장했다. 그곳에서 사방이 뚫린 드넓은 야외 공간에서 그곳을 즐기는 사람들의 모습을 기분 좋게 바라보다가 등산의 마무리로 함성 대신 셀카를 찍고 하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