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콕 장기여행자가 관찰한 태국만의 식문화 리뷰
우리 집 앞에는 저렴한 가격에 맛까지 보장하는 로컬 식당이 몇 개 있는데 그중 단연 독보적인 건 벤츠 아저씨네 가게이다. 이 식당은 밤낮 할 것 없이 손님들로 문전성시를 이룬다. 덕분인지 아저씨는 자동차 값이 유난히 비싸기로 소문난 방콕에서 독일차 '벤츠'를 끌고 다닌다. 허름한 가게에서 한 끼에 겨우 2000원 남짓한 식사를 제공하면서 하루에 50만 원 이상의 매출을 올리는 데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다. 방콕의 대부분의 식당은 오전 장사 또는 오후 장사로 나뉘는 편인데 아저씨네 가게는 24시간 중 오직 4시간 정도만 빼고 항시 영업 중이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나는 오후 가장 더운 몇 시간을 제외하고는 언제든, 심지어 새벽 4시에도 아저씨네에서 식사를 해결할 수 있는 것이다. 때문에 가끔 성조 없이 태국어로 메뉴를 주문하는 내게 짜증 섞인 눈짓을 보내도 아저씨네 가게에 꼬박꼬박 출석할 수밖에.
실제로 방콕은 24시간 먹거리를 즐길 수 있는 미식의 도시이다. 우리 동네의 경우 아침부터 초저녁까지 장사하는 가게들이 문을 닫고 나면 저녁부터 새벽까지 영업하는 가게들이 그 자리를 대신한다. 한 번은 태국의 핫하다는 클럽에서 실컷 놀고 집에 가려는데 새벽 4시가 넘은 시간에 태국인 친구가 밥을 먹으러 가자고 했다. 나는 24시간 영업하는 맥도널드나 식당을 상상했지만 택시에서 내린 곳은 평범한 방콕의 도로 옆 인도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방콕에 처음 여행을 왔을 때 늦은 새벽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지나가는 거리마다 작은 포장마차들로 북적였던 것이 아마 이 때문이었을 것이라. 수레처럼 바퀴가 달려 이동이 가능한 미니 식당이 여럿 줄지어 있었고 꽤 많은 손님들이 이른 새벽부터 식사를 즐기고 있었다. 그날 태국인 친구 덕분에 처음 먹어본 태국식 죽은 정말로 맛있었다.
태국 사람들은 일 년 내내 더운 날씨의 영향인지 모계사회의 전통 때문인지 정확히 이유는 알 수 없으나 집에서 요리하는 일이 드물다고 한다. 한국의 경우 새집에 들어갈 때 인덕션이나 가스레인지가 미리 구비되어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태국은 예외이다. 물론 집에서 밥을 지어먹는 가정들도 있지만 확실히 부엌 공간에 대한 니즈가 적은 편인 것 같다. 길거리엔 각종 반찬을 비롯해 찐 밥을 판매하는 전문 가게들까지 따로 있을 정도이니까. 덕분에 꼭 시내에 나가서 유명 식당에 가지 않고도 나는 동네에서 태국 음식을 충분히 즐겼다. 새벽같이 일어나서 오전 7시면 문을 닫는 닭고기덮밥을 먹고 낮에는 팟타이를 사 먹고 출출해지는 야심한 밤엔 느지막이 나가서 귀여운 두 모녀의 고기국수를 먹는다. 방콕에서만 즐길 수 있는 즐거움이니 불어난 뱃살은 당분간 모른척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