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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콕에서 딱 한 곳만 갈 수 있다면

태국 방콕의 새벽 사원, 왓 아룬 [Wat Arun] 방문기

by 김유례

혹 누군가 내게 태국 방콕의 명소 중 딱 한 곳만 추천하라고 한다면 나는 주저하지 않고 '왓 아룬'이라고 답할 것이다. 일명 '새벽 사원'으로 불리는 왓 아룬(Wat Arun)은 태국의 10밧 동전에 그려진 방콕의 대표적인 명소. 또한 밤이 되면 은은한 불빛으로 짜오라프야 강과 어우러진 멋진 야경을 선사하기로 유명한 곳이다.

사실 나는 3번씩이나 방콕을 방문하는 동안 한 번도 왓 아룬에 가보지 못했다. 애석하게도 그 기간 내내 왓 아룬은 보수 공사 중이었던 것. 또 하나 더 솔직한 이유를 대자면 대부분의 관광명소는 그 안에 있을 때보다 멀리서 보는 것이 더 가치 있다는 나의 이상한 고집 같은 핑계 때문이었을 것이라.

다행히 나는 2018년 7월의 마지막 날 방콕 4번째 여행 때 왓 아룬에 처음 방문했고 70일 가까운 여행 기간 동안 2번을 더 방문했다. 대게 우연적인 만남이라는 것이 그러하듯 처음 왓 아룬에 간 날 나는 집에서 대충 시간을 보낼 참이었다. 그런데 그저 볕이 좋아 걷다 보니 역 앞에, 정신 차리고 보니 수상보트를 타는 사판탁신 역에 있었다. 어쨌든 나는 모든 정류장에 다 정차하는 오렌지 보트에 탑승하고 나서야 불현듯 새벽사원을 떠올렸고 바로 몇 번 선착장인지 검색하기 시작했다.

IMG_3269.jpg 수상보트를 타고 왓 아룬으로 향하는 길. 짜오프라야 강

왓 아룬으로 향하는 수상보트에 대한 정보가 제각각이었다. 알고 보니 원래 있던 선착장이 공사를 시작하면서 따로 갈아타지 않고도 새벽사원에 바로 닿을 수 있게 된 것. 나는 이동시간이 긴 오렌지 보트에 앉아 따사로운 햇살을 맞으며 꾸벅꾸벅 졸기도 하다가 7번 타티엔 역에서 내렸다. 그리고 드디어 눈 앞에 펼쳐진 왓 아룬의 풍경은 강한 빛으로 어둠을 밀어내는 아침 같았다. 눈이 부실듯한 새하얀 탑에 반짝이는 형형색색의 자기들, 바람이 부는 방향대로 몸을 좌우로 흔들며 소리를 내는 풍경들까지 모든 것이 훌륭했다. 설레는 마음으로 50밧에 입장료를 내고 입장하려는데 저런. 애초에 새벽사원에 올 계획이 없었기 때문에 찢어진 청바지가 문제였다. 다행히 위에는 반팔을 입고 있었기 때문에 치마만 렌트해서 무사히 입장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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왓아룬 입장 티켓

그렇게 나는 더운 땀을 흘리면서도 1시간여를 넘게 그곳에 머물렀다. 처음엔 계단을 오르내리며 건물에 새겨진 자기의 문양을 세세하게 관찰했다. 탑의 맨 꼭대기에 있는 '프라 쁘랑'이 반짝이는 것을 바라보다가 인적이 드문 계단 위에 앉아 쉴 새 없이 부딪히는 풍경 소리를 들었다. 이후엔 그 주위를 뱅 돌아보았다. 만약 새벽사원에 방문할 계획이 있는 이라면 가까이서, 또 한 번은 멀리서 새벽사원을 천천히 관찰하는 것을 추천한다. 보는 각도에 따라 매번 다른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한 공간에서 여러 풍경과 감동을 느끼는 데는 시간과 정성을 쏟는 이를 당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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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웅전까지 둘러본 후 아쉬운 마음을 뒤로하고 4번 선착장에서 강 건너편까지 데려다주는 보트를 탔다. 그곳에서 한국뿐만 아니라 여러 아시아 나라를 여행해온 영국인 윌리엄을 만나 새벽사원이 마주 보이는 레스토랑에서 맥주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눴다. 저 멀리에서도 아름답게 빛나는 왓 아룬을 바라보며 감히 게으름 때문에 저곳에 직접 가보지 못했다면 얼마나 불행한 여행자가 되었을까 상상해봤다. 왓 아룬의 낮과 밤의 모습을 모두 담기 원했으나 일몰 시간에 맞춰 미리 뷰가 좋기로 소문난 이 레스토랑을 예약한 손님들에게 자리를 내어주고 가게를 빠져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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