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번 맛보면 멈출 수 없는 태국 음식의 단짝 찬양설
방콕 여행이 더 즐거워지기 시작할 때를 되짚어보면 아마도 간단한 문장들을 태국어로 말할 수 있을 즈음부터였던 것 같다. 문장이라고 해봤자 식당이나 대중교통에서 자주 사용하는 명사, 형용사, 동사 몇 개가 전부이지만 그럼에도 어눌한 나의 질문에 답해주는 이들이 있어 가능한 일이었다.
하지만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헷갈리는 단어가 있는데 ‘물’과 ‘피시소스’이다. 물은 ‘남 쁠라 오’ 피시소스는 ‘남 쁠라’라고 발음하는데 내 성조가 어색한 탓인지 내 주문을 들은 태국인 점원은 늘 갸우뚱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무안해지는 나는 태국어 말하기를 포기하고 다시 영어로 주문하곤 했다.
비록 나를 주뼛주뼛하게 만들지라도 물과 피시소스가 없는 태국 여행은 상상할 수 없다. 처음엔 저렴한 가격이긴 하지만 매번 식당에 갈 때마다 물을 따로 주문해 먹는 일이 익숙지 않았다. 하지만 여행하는 동안 식당에서 주문한 생수 한통을 열심히 들고 다니면서 그때그때 수분을 공급하며 더운 날씨를 이겨낼 수 있는 힘의 근원이 되었다. 대부분의 식당에서 물을 공짜로 먹을 수 있는 고국에 대한 감사한 마음이 생겨나는 것은 덤이었다.
식당에서 달짝지근한 콜라의 유혹을 가까스로 참아내고 물과 음식을 주문한 다음 뒤적이는 건 다름 아닌 소스통. 중국집에서 테이블 위에 식초, 간장, 고춧가루 세팅이 기본이듯 태국의 대부분의 식당에서도 설탕, 고춧가루, 피시소스, 땅콩가루 등이 담긴 소스통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사실 방콕을 3번이나 방문하는 동안 나에게 소스통은 그저 어떤 한 식당의 장식물이나 다름없었다. 새로운 것에 대한 두려움도 있었지만 사실 어떤 음식에 무엇을 넣어야 할지 몰랐기 때문이었다. 만약 태국에서 오래 산 친구가 피시소스에 프릭(태국식 고추)을 쫑쫑 썰어 넣은 소스를 밥에 뿌려 먹으며 “난 이 소스가 없으면 이제 밥을 못 먹겠어”라고 말하지 않았다면 나는 여태 태국의 맛도 모른 체 방콕 여행의 겉만 핥는 안타까운 여행자가 됐을지도 모르겠다.
태국 음식을 더 맛있게 즐기는 나의 팁을 몇 가지 공유하자면 우선 라이스 종류의 음식에는 프릭 남쁠라(태국식 발효 어장)가 필수다. 피시소스에 잔뜩 졸여진 프릭, 프릭 향이 강하게 배어있는 피시소스 중 무엇이 우선이랄 것 없이 밥에 조금 덜어 함께 먹으면 된다. 대부분의 태국 음식이 간이 세고 짠 편이라 더 이상의 양념이 필요 있겠냐 말할 수 있겠다마는 프릭 남쁠라가 뿌려지는 순간 그 음식은 완전 다른 맛을 자랑한다. 매콤하면서도 향긋하게 감칠맛이 도는 그 순간은 도전하기를 두려워하지 않는 자만 누릴 수 있는 황홀경이라 표현하고 싶다.
태국식 쌀국수인 꾸어이 띠여우를 먹을 땐 두 가지 방법이 있는데 하나는 국물에 피시소스를 넣고 기호에 따라 고춧가루를 첨가하는 것이고 나머지 하나는 설탕, 고춧가루, 피시소스를 한 대 섞어 양념장을 만들어 거기에 면과 고기를 찍어먹는 식이다. 사실 이건 야식을 먹으러 자주 찾는 우리 집 앞 고기 국숫집에서 어깨너머로 배운 관찰 해서 알게 된 비법인데 시원하고 진한 국물 맛에 지금까지 먹은 꾸어이 띠여우들에게(?) 사죄하고픈 정도였다. 여태껏 고추냉이 없는 초밥, 쌈장 없는 고기쌈, 탕수육 소스 없이 눅눅해진 고기 튀김을 먹은 기분이었달까.
무엇하나 의미 없는 관계가 없고 실패가 없듯 멀뚱히 제자리를 지키는 소스통의 이유는 참으로 분명한 것. 부디 많은 여행자들이 태국 음식 앞에 비율도 맛도 모르지만 일단 소스를 넣고 보는 '괜한 짓'을 시도해보길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