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국의 '츠렌'에 대해
내가 72일간의 방콕 장기 여행을 결심했을 때 주위 몇몇 사람들은 그다지 탐탁지 않아 했다. 과연 방콕이 그 정도의 시간과 돈을 소비할 만큼 가치가 있는 곳인가에 대해 의아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라. 물론 여행 중 점점 줄어드는 통장 잔고를 마주해야 할 때면 허전한 기분을 감출 수 없었지만 그건 잠깐 뿐이었다. 그 당시 나는 스스로 피폐하다고 느꼈기 때문에 나 자신을 회복하고 바로 돌아보는 시간이 더 간절했다. 잠시 동안이었지만 삶의 무게를 훌훌 털고 떠나온 여행자로서 방콕 그리고 그곳을 이루어가는 사람들을 관찰하면서 나는 자신감, 감사하는 마음, 긍정적인 사고 등 그동안 잃었던 것들을 다시 되찾을 수 있었다.
그밖에 내가 좋아하는 명소나 맛집에 언제든지 방문할 수 있었던 점도 자랑할 만하지만 어쨌건 '외국인'이라 감수해야 하는 불편한 일들도 빈번했다. 만약 현지 친구들의 도움이 아니었다면 외로움, 소통불가, 문화적 이질감 등의 갈등을 스스로 해결할 수 없었을 것이다. 다소 내성적인 성격 때문에 인관 관계가 썩 넓은 편은 아니지만 단지 내가 '외국인'이라는 이유로 먼저 나를 사랑해준 태국 친구들 덕분에 나는 좀 더 진취적이고 능동적으로 방콕을 여행할 수 있었다.
예쁜 눈망울만큼 마음씨까지 순수했던 '뽀', 매일 아침부터 저녁까지 쏨땀을 만드느라 쉴 새 없이 절구를 빻는 중에도 내가 오고 갈 때마다 밝은 얼굴로 반겨준 '똠', 시크하고 차가운 겉모습과 달리 마음이 매우 여렸던 '램', 내게 인생 소고기 수프 집을 소개해준 '뷰', 누구보다 한국을 사랑하는 '리', 아유타야가 고향인 '브엣', 웃는 모습이 매력적인 '홉', 나보다 어리지만 왠지 옆집 언니 같은 '웨이', 내가 심심할까 봐 본인이 더 걱정했던 '꿍', 인형 같은 외모의 '패티', 치앙마이 최고의 셰프 '후코', 내게 무슨 일이 생기면 가장 먼저 발벗고 나서준 '랑' 등 감히 내 여행의 원동력이었다고 고백하고 싶은 이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나는 여전히 내 태국 친구들의 이름을 모른다. 내가 알고 있는 건 그들의 닉네임이 전부이기 때문이다.
만약 페이스북이 아니었다면 나는 지금까지 친구의 이름도 제대로 모르는 무례를 행할 뻔했다. 대부분 한, 두음 절로 끝나는 태국 친구들의 이름이 꽤 간편하고 귀엽기까지 하다고 생각하던 어느 날 태국 친구로가 요청한 페이스북 친구 신청을 보고 나는 아주 잠시 혼란스러웠다. 분명 내 친구가 맞는데 이름을 도저히 읽을 수가 없었다. 성도 이름도 길어도 너무 길었다. 뽀에게 왜 너의 이름이 'porpong thitipat'이냐고 물었더니 그가 대답했다. "태국인들은 웬만하면 닉네임을 갖고 있어. 이름이 길고 발음하기 어렵거든. 실생활에서도 ‘별명’을 사용하기 때문에 친구들끼리도 본명을 아는 경우는 극히 드물어."
본명이 아닌 닉네임으로 부르고 불리는 이것을 일명 ‘츠렌’ 문화라고 하는데 나름 문화, 역사적인 이유들이 있었다. 그 옛날 태국은 왕족이나 귀족들을 제외하고는 딱히 성(family name)이라는 것이 없었는데 1926년 이후로 종교적 의미가 담긴 팔리어를 사용해 가족 이름을 만들기 시작했다고 한다. 당시 태국에 거주하는 중국인들이 중국식 이름을 태국식으로 바꾸는 과정에서 이름이 길어졌는데 긴 이름이 부자가 되게 해준다고 생각한 태국인들은 그들을 따라 이름을 길게 짓게 됐다고 한다. 그러다 보니 이름이 너무 어려워져서 가명을 지어 짧게 부르게 된 것이 츠렌의 시작이었다. 거기에 사람의 이름에 영혼이 있다고 믿어 직접 본명을 부르는 것을 불경하게 여기는 태국인들의 문화 또한 츠렌이 발전된 이유라고 볼 수 있다. 이후 시간이 흐르면서 태국 사람들은 자신의 특색을 담거나 자신이 불리고 싶은 가명을 스스로 짓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부모님이 정해주는 것이 일반적이라고 한다.
우리나라에서 '별명'이라 하면 자신의 약점이 담긴 우스꽝스러운 단어이거나 인터넷 용으로 지은 아이디(ID) 정도가 전부인데 평생을 가명으로 불리는 태국인들의 삶이라니. 처음엔 당혹스러웠지만 태국의 '츠렌'이나 아기가 태어나면 철학관에서 돈을 내고 이름을 짓는 우리나라의 문화나 어떤 존재에 대한 애정과 관심은 결국 일맥상통(一脈相通)하는 것이 아닌가 싶어 그냥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은 비록 멀리 떨어져 있어 이전처럼 그들의 이름을 직접 부를 수는 없지만 가명이든 애칭이든 별명이든 어떤 한 단어, 그 이상의 의미가 내 삶에 새겨졌다는 사실만으로 참 감사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