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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콕에서 고교 동창을 두 번 만날 확률

오랜만에 만난 동창과 방콕 에까마이 맛집에서 또 다른 추억을 쌓았다

by 김유례

졸업 후 고등학교 동창 태용이를 다시 만난 건 그가 살던 광명도, 학교가 있는 안양도 아니었다. 2016년 여름, 나 홀로 방콕 여행 첫째 날을 마무리 하며 그날 찍은 사진을 개인 SNS에 업로드했는데 당시 방콕에서 <난타>라는 공연에 출연 중이었던 태용이가 나의 여행 사진을 보고 연락해온 것이었다. 그렇게 우리는 졸업한 지 꼭 10년 만에 그의 숙소가 있는 RCA 근처 작은 펍(Pub)에서 만나 조촐하지만 나름 이색적인 둘만의 동창회를 열었다. 그간 따로 연락을 하고 지낸 건 아니었지만 고등학교 1학년 때 3개월 간 함께 땀 흘리며 연습하고 공연을 올린 적이 있는지라 어색함이란 찾아볼 수 없었다. 덕분에 나의 첫 방콕 여행은 태용이가 거의 반할을 차지하고 있다.


2016년 10년만에 태용이를 방콕에서 만난 날 함께 갔던 장소


그로부터 정확히 3년 후 2018년에 우리는 또다시 만났다. 물론 방콕에서. 이번에는 내가 방콕에서 장기 여행 중이었고 태용이는 휴가 겸 놀러 온 것이었다. 약속 장소는 까이양(구운 닭)이 맛있기로 소문난 사바이짜이. 사전에 오리지널 가게 옆에 상호명까지 똑같이 따라한 식당이 있다는 것을 알고 갔는데 불행히 태용이는 후자에서 날 기다리고 있었다. 다행히 원래 가게로 안내하는 아주머니의 도움으로 우리는 오지리널 사바이짜이-이전한 주소는 87 soi Ekkamai3이다-의 명성을 맛볼 수 있었다.


사바이짜이에서 맛본 음식들 (왼쪽부터)까이양, 푸팟퐁커리, 새우볶음밥


한국의 옛날 통닭을 꼭 닮은 까이양, 양은 적지만 맛은 일품이었던 푸팟퐁커리, 맛있고 양도 많았던 새우볶음밥으로 배를 든든하게 채운 후 우리는 에까마이의 'SANG SOM'이라는 펍(Pub)으로 자리를 옮겼다. 몇 개의 큰 조명을 제외하곤 불빛이 거의 없는 가게 한쪽에서 라이브 밴드가 연주를 하고 있었고 20대 초반의 앳되어 보이는 젊은 남녀들이 삼삼오오 모여 'SANG SOM(태국의 대표적인 술)'을 나눠 마시고 있었다. 손님이 많아 시끌벅적했던 사바이짜이와 달리 비교적 넉넉하고 여유 있는 풍경이었다. 우리는 야외석에 자리를 잡고 비 내리는 에까마이의 풍경에 한껏 취해 고등학교 시절부터 3년 전 방콕에서의 일화까지 주섬주섬 꺼내보았다.


태국의 대표적인 술 이름을 딴 에까마이의 가게 'SANG SOM'

졸업한 후에 통 연락 한번 한 적 없는 친구와 방콕의 한가롭기 짝이 없는 펍에 마주 앉아 나누는 이야기는 소재를 불문하고 매번 흥미롭고 애틋했다. 문득 비록 미래적인 가치를 따질 수도 없고 손에 쥘 수도 없는 것이 추억이겠다만 이것이 우리가 만난 유일한 이유라면 과거를 두고 단지 희미한 잔상 같은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싶어 졌다. 안주도 없이 맥주 두병을 나눠 마시며 또 다른 추억을 쌓아가던 중에 이제 태용이를 빼고 에까마이를 논하긴 어려워졌다는 것을 나는 직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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